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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Dec 20. 2023

손톱깎이

20231219

 방에 쌓여있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쓰던 자잘자잘한 물건들. 버리라고 할 때는 죽어도 말을 듣지 않을 것만 같아 스트레스였는데 막상 내가 가져보니 아무것도 버릴 수가 없다. 당신이 쓰던 향수를 뿌리면 아직도 당신의 향이 나는데 뿌려진 곳은 허공이라 나는 아무것도 안을 수가 없다. 허공에서나마 당신을 붙잡고 싶어 헛손질을 해본다.


 버리려고 전부 꺼냈는데 당신이 그리웠나보다. 아무것도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고 나는 물건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추억하기만 한다. 당신이 쓰던 향수, 스킨과 로션, 립스틱 같은 당신의 향이자 색인 모든 것들이 내 앞에 있는데 당신은 없다.


 거울을 보지 않은지 너무 오래였다. 우리가 같이 고른 샴푸와 린스를 써서 씻었다. 우리의 냄새가 났다. 내가 귀엽다고 고집해 산 고양이 그림의 손톱깎이로 오랜만에 손발톱도 깎았다. 아직도 당신의 목소리가 귀에 들린다. 혼자선 잘 자르지도 못하면서 굳이 골라도 그런걸 고르냐고. 당신은 실용성 있는 걸 추구했던지라 한숨을 푹 쉬었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걸 계산대에 올리도록 내버려뒀었다. 그리고 매번 내 손발톱을 깎아줬다. 그래서일까, 지금 피가 나는건.


 나는 아직도 혼자 손톱도 발톱도 제대로 깎지 못한다. 꼭 한 번씩 피가 나기 일쑤다. 늘 내 손발톱을 깎아주던 당신 탓이다. 나는 아직도 계란후라이를 한 번에 뒤집지 못한다. 나이를 그만큼 먹어놓고 그거 하나 못하냐며 타박하던 당신 목소리가 들리는 탓이다. 그냥 이 모든 게 당신 탓이다.


 나는 요즈음 당신이 쓰던 향수를 뿌리고 다닌다. 당신이 쓰던 립스틱을 바르고 다닌다. 당신이 쓰던 스킨 로션을 바른다. 당신이 들고 다니던 가방에 내 짐을 넣어 다닌다. 당신이 타고 다니던 차를 타고 다닌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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