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되던 날, 주변에서는 축하가 쏟아졌다.
“이제 진짜 자리 잡았네.”
“이제 걱정 없겠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은행을 거쳐 외국계 대기업, 공기업까지 다니며 옮겨 다닌 시간들이 그제야 정리되는 것 같았다. 마흔 중반에 7급 공무원이 되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 해피엔딩의 결말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나는 흔히 말하는 ‘도전적인 사람’은 아니다.
이직을 많이 했다고 하면 주변에서 모두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편했다. 표면적으로는 용기 있는 선택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늘 불안하고 안주하지 못해서 움직였다.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물지 못한 이유는 성장에 대한 갈망보다는, 이곳에 계속 있어도 괜찮을까?, 나만 뒤쳐지는 건 아닌가라는 질문 때문이었다. 그 질문은 직장을 옮겨도, 직함이 바뀌어도 따라왔다.
공무원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다.
안정이라는 말이 나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안정은 나를 보호해주기보다, 오히려 다른 질문이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지금 이 선택이 맞는지”, “선택이 이미 늦지 않았는지”를 더 자주 계산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아무 변화 없이 60이 된 내 모습.
그 상상은 이상할 만큼 구체적이었고, 그래서 더 무서웠다.
유학을 결심한 건 거창한 꿈 때문이 아니었다. 새로운 분야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루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다만 이 질문만은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싶은 사람인가?
그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하게 될까 봐, 그게 더 두려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확신은 없다.
다시 공부한다고 해서 인생이 명확해지는 것도 아니고, 늦은 선택이 언제나 보상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안정에 매달렸던 시간보다, 불안을 인정하고 움직이기로 한 지금이 조금 더 편안하다.
이 글은 성공담이 아니다.
늦은 시작을 미화하려는 기록도 아니다.
다만 여러 번의 선택과 방향 전환 속에서, 내가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오해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아직도 배우고 있는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를 알아가 보고 싶다
혹시 지금,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질문을 미뤄두고 있다면. 그게 정말 멈춤인지, 아니면 익숙해짐인지만은 한번쯤 생각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