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작에 대하여

by 프로이직러

"지금 시작해도 될까?”

이 질문은 내 인생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시험을 준비할 때도, 공무원이 되었을 때도, 다시 공부를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질문의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핵심은 늘 같았다. 지금이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표가 있는 것 같다.
스무 살에는 좋은 대학, 서른 즈음에는 결혼과 성장, 마흔에는 안정, 쉰에는 유지 등 그 순서에서 벗어나면 어딘가 잘못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아무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사회적 시간표가 있다는 걸.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마흔 중반에 7급 시험을 준비한다는 건, 어떤 이에게는 도전으로 보였겠지만, 내게는 계산의 연속이었다. 합격까지 걸리는 시간, 합격 후 남은 근무 연수, 연금, 승진 가능성. 도전이라기보다는 늦지 않았다는 증명을 하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데 합격 이후에도 “늦지 않았다”는 확신은 오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늦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들과 마주쳐야 했다. 주변의 속도와 비교할 때, 이미 누군가는 더 멀리 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늦었다는 판단은 결과를 기준으로 한다.
이미 성공한 사람의 서사는 언제나 빠르고 정확한 선택처럼 보이고. 그 과정에 있던 망설임과 계산, 두려움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남의 완성된 시간을 보고, 나의 진행 중인 시간을 재단하고 있었다.

쉰을 넘겨 유학을 결심하였을 때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사회적 시간표에서 한참이나 멀어져 있던 내가
쉰을 넘겨 새로운 학문을 배우겠다고 말하는 일은, 스스로에게도 설명이 필요했다. 커리어에 도움이 될지,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투자 대비 효율은 어떤지. 엄청나게 많은 계산들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했다.
늦었다는 이유로 멈추면, 나는 이제 어떤 시작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확신이 없다.
이 선택이 어디로 이어질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모른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늦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늦은 시작이라는 걸 알면서도 행동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시작에는 적절한 나이가 없는지도 모른다.
다만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시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점이, 나에게는 지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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