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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한 삶이 좋아 May 16. 2023

너 그립고 보고 싶었다

장미, 장미 한 송이~

이번 주말부터 장미축제 기간이라기에 인파가 몰리기 전 내가 먼저 꽃마중 하러 나선 길,

그리하면 한가로이 장미 향연을 만끽하리라는 깜찍한 착각이 나의 발보다 앞선다.


부랴부랴 걸음을 재촉하며 다다르고 보니 아뿔싸 사람의 물결이 크게 일렁인다.

간교한 나의 잔꾀는 진작에 들통이 난 모양이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을 탓할 수 없는 일이고

가까이서 장미가 피었으니 잠시 들렀다가는 사람을 가로막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고요하게 장미와 소통하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허망하게 산산이 흩어 뿌려지고,

꽃보다는 사람 소리가 넘실넘실 넘쳐나고 있다.


사람 소리로 시끌거리는 곳에서 나도 같이 시끌거린다. 


방문한 시각,

땡볕의 방해가 이만저만 아니라서 더워 죽을 지경이다.

맞닥뜨린 뜨거움 아래 있자니 당혹스러운 후회가 밀려든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집을 나선건지 원 참.  



해마다 가시장미에 현혹되지 말자고 다짐해 왔건만 어쩌자고 헤까닥해서 생고생을 자초했을꼬.

이유는 하나.

장미가 그립고 많이 보고 싶었다.


어른 남자의 주먹만한 장미를 만났다.

만개하려면 시간이 더 지나야 하는 꽃망울도 만났다.


활짝 핀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아서 감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는 사람 소리로 남아 있던 알량한 감흥까지 사그라진다. 

그립고 사무치던 마음, 이제는 다해버렸다.

첫 만남의 설레임 안고 달려온 길 위에서 

나의 고백은 짧고 애달프게 끝나버렸다.


섭씨 27도.

정오가 갓 지난 거리는 벌써 여름으로 접어드는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 화들짝 열린 채 들들 끓고 있다.


축제를 앞두고 망가진 인도를 보수하고 있는 곳이 서너 군데.

보행이 다소 불편하다.

직선거리를 빙 돌아가야만 한다.

공사 구간 보행자를 위한 리딩 라인을 따라 무심히 걸어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소수는 대놓고 불평을 한다.

상춘객 놀이에 방해가 된다고 공사판을 향해 독설을 늘어놓는다.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에 여념이 없는 남자.

그의 노고가 다하는 순간 길은 레드카펫이 되겠지.

그래서 빙 돌아가야만 한다. 

나는 다수의 행렬에 끼어서 묵묵히 걷는다.


망가진 걸 그냥 놔두면 방치한다고 투덜,

보수 작업을 하면 보행에 불편하다고 투덜. 어쩌라는 건지.



경쾌했던 나의 걸음은 서서히 속도가 줄더니 이내 그늘로 실내로 파고든다.

그늘에서 누리는 지금의 시원한 호사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한 낮은 30도에 가까워지고 코 앞에서 축축한 여름 내음이 난다.


진짜 여름의 소소한 그늘은 농염한 더위로 점령당할 것이고

고놈이 과격하게 힘을 후리기라도 한다면 사람은 맥없이 무릎을 꿇을 것이다.

우리의 맷집이 해를 거듭할 수록 더 견고해진다.

그래도 거북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해마다 겪어 내는 계절의 매운맛에 아직도 적응 중이다. 아 더워 더워.

이마로 콧등으로 목덜미로 모근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물 먹은 솜처럼 다리가 천근만근,

터벅터벅 버거운 소리를 낸다.


그럼에도 

내가 나선 것은 

아직 나의 근처엔 어여쁜 니가 없어 그랬다.

그리워서 손꼽고 기다리다

멀리 니가 와 있다는 소식 듣고 급히 달려갔다.

어수선한 통에 반갑다는 말도 못 하고 되돌아와선

많이 섭섭하고 많이 아쉽더라.


그래서  부탁한다.

너 거기에 오래오래 머물렀으면 한다.


내 언제 다시 너를 찾아 가려한다.


곧 너를 닮은 것이 가시 달고 내 가까운 데 올 테니 슬퍼하진 않을 거다.

그땐

우선 이 말부터 하려 한다. 곱고 화려한 장미에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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