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진짜 피해자는 누구일까?

11년 차 경찰관이 마주한 가정폭력 사건

by 마인드 무장 경찰

가정폭력 범죄는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고 있다. 뉴스와 각종 인터넷 기사에서조차 자주 언급되니 말이다.




가정폭력 사건은 폭행, 협박, 상해와 같은 형법에서 다루는 범죄를 가족 구성원 사이에 발생했을 때 해당된다. 물론 다른 범죄 또한 해당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폭행 등의 처리와 다르게 출동한 경찰관 또는 수사하는 경찰관에 의해 임시 조치라 일컫는 '접근금지'까지 할 수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법적 장치가 마련된 것을 볼 때 국가에서도 그 심각성을 깊게 바라보고 있다. 경찰 조직 또한 '가정폭력'이란 유형의 사건을 따로 분류하고 해당 범죄를 수사하는 부서를 만들 정도로 중대하게 본다.



가정폭력 범죄 역시 다양한 이유와 유형이 있는데 그간 내가 마주한 사건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 남편이 아내를 폭행


- 아내가 남편을 폭행


- 부모가 자식을 폭행

(이 경우 아동학대 처벌법으로 처리하기도 함)


- 자식이 부모를 폭행




주된 원인을 보면 돈 문제, 술 문제, 남편 또는 아내의 외도 문제 등이 있었다. 술 취한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에게 맞았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했다. 가해자인 남편은 술 취해 인사불성. 아내는 서러웠는지 울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분리한 후 각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눈이 작은 방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조그마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방에서 한 여자아이가 달려 나왔다. 6살 된 내 아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대부분의 술 취한 가해자가 그러하듯, 그 남편 또한 다르지 않았다. 무슨 잘못이 있냐고 따지는 것이다. 술 취해 아내와 어린아이를 향해 욕설과 고함질까지 했는데 모든 상황을 아내의 탓만 하고 있었다.




반면에 아내는 남편의 잦은 술 문제를 말하며 이혼 문제를 운운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두 사람 모두 물리적인 싸움은 없었다. 이 경우 가능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것으로 처리하곤 한다. 경찰이 집을 나가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가정폭력 사건처럼 두 사람을 분리조치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바로 내 아이와 같은 또래인 여자아이였다. 겨우 5살 정도 된 것 같았다. 제복 입은 나를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했다. 같은 또래에 비해 언어 습득도 빠른 편이었다. 내가 묻는 모든 말에 대답까지 척척 했으니 말이다.




"아빠가 나한테 욕했어요."




아이가 나에게 일러바친 내용이다. 아이의 말을 들은 내 마음은 어땠을까?


만약 여러분이었다면 아이를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간혹 나의 행동과 말로 아이가 상처받는 경우가 있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이 사건 가해자인 남편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을까? 애석하게도 당당한 그의 태도에선 미안한 마음 따위 이미 쓰레기통 한쪽에 쌓인 소주병처럼 버려진 것 같다.






밤이 깊은 시간, 아이는 잠을 자다 부모의 다툼 때문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비록 나에게는 밝은 표정이었지만 속으론 불안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이 가정에 가정폭력 사건으로 출동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또 다른 가정폭력 사건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맞았다는 내용이다. 이상한 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아내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다.


아내가 남편에 대한 법적 처벌을 원하지 않아 분리 조치하기로 결정했다. 술 취한 아내를 밖으로 내보내기엔 걱정되어 가해자인 남편에게 아내가 진정할 동안만이라도 나가도록 권유했다. 남편 역시 나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비록 가해자였지만 충분히 대화가 되는 사람이었다.



남편을 내보내자 방에 숨어 있던 여자아이가 나왔다. 중학생 정도로 보였다. 나에게 할 말이 있어 보여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경찰 아저씨.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내보내면 안 될까요? 엄마가 술을 마셔서 아빠가 화가 나서 때렸어요. 엄마는 매일 같이 술만 마셔요."



당황한 나는 아이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어떤 이유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켜본 아이의 말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어쩌면 아이가 본 것이 진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남편이 아내를 때렸지만 그 원인이 무조건 가해자인 남편에게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누가 봐도 명백한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 피해자를 구별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가해자를 단호하게 처벌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현장에서 체포까지 이루어진다.


하지만 부모의 잦은 다툼 때문에 아무 말 못 하고 숨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이의 심정은 어떠할까?





가정폭력 사건.




심각한 폭력 행위가 있다면 상대방이 당연히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잦은 다툼 때문에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을 아이들 역시 가정폭력 사건의 명백한 피해자이다.


나를 포함한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한 번쯤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부모의 다툼으로 큰 상처받을지 모를 아이의 마음을. 부모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화를 내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그 안의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다면 자신이 진짜 가해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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