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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Dec 21. 2023

경찰은 당신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닙니다.

경찰과 공무집행방해, 그리고 조울증이란 정신병

지구대 순찰팀에는 한 명이나, 많으면 두 명까지 여자 경찰관이 있다. 나도 최근까지 김순경이란 여경과 근무했었다. 김순경은 독특한 구석이 있었는데, 내가 질문하면 항상, “넵!” 하고 씩씩하게 말했다. 실실 웃어대기까지 했다. 아마 내가 편하니까 그랬나 보다, 생각한다.



김순경은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써도 웃음기가 가려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밝아 보이는 그런 미소의 경찰관이었다.(내가 김순경을 좋아한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그런 김순경에게 의외의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이빨 드러내고 웃는 장난기 가득했던 표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2022년 여름, 아니 여름에서 가을로 막 넘어갈 때인 것 같다. 야간 근무 중에 있던 일이었다. 나는 1호 순찰차를, 김순경은 2호 순찰차를 타고 근무했다.

자정이 막 넘어서 순찰차 2호로부터 지원 요청받았다. 가정폭력 현장인데 형제끼리 심한 다툼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현장까지는 끝에서 끝. 멀어도 너무 멀었다. 10km가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내가 있는 지구대가 관할하는 지역이 넓었다. 나는 김순경이 있는 곳으로 바로 출발했다.



사이렌을 울리고,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해도 한계가 있었다. 차가 많은 곳은 오도, 가도, 못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한 중간쯤 갔을 때 다시 나를 찾는 무전 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빨리 와주세요. 여기 난리 났어요!”


김순경 목소리였다. 선배 경찰 소리도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고함과 욕설하는 소리까지, 이건 누가 들어도 다급한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더욱 속력을 냈다.



사실 몇 년 전에도 나와 친한 직원이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는 범인과 대치하던 중, 애타게 동료를 찾았었다. 애석하게도 너무 늦어버렸다. 이미 크게 다쳐 이마가 피범벅이 되고야 말았었다. 나는 김순경에게 두 번의 무전을 더 받고 나서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층 오피스텔 건물 앞에 먼저 도착한 순찰차가 보였다. 현장은 오피스텔 11층.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더디게 내려왔다.

이윽고 11층에 올라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눈앞에 진풍경이 펼쳐졌다. 벌거벗은 남성이, (그는 무에타이 반바지만 걸치고 있었다) 얼굴은 피투성이가 된 채, 우악스럽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오피스텔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의 김순경과 선배는 피투성이 남자를 제압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어질어질했지만, 곧 정신 차리고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온몸이 근육질인 피투성이 남자는 수갑 채우기도 만만치 않았다. 나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했지만, 그와 나는 질적으로 달랐다. 나는 관리 차원의 운동이었고, 그는 진짜 운동선수 같았다. 어쩌면 내가 한 번쯤 만들고 싶었던 그런 몸매의 소유자였다.


영화 <어벤저스>에서 우람한 팔뚝을 자랑하는 '토르'처럼 보였다. 물론 하는 짓은 영웅이 아닌 빌런이었지만. 이렇게 자기 관리 철저한 남자가 어쩌다 피투성이가 되었을까? 4명의 경찰관은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수갑 채웠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더운 날씨였다.


 “폭행죄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후.”


숨이 찼는지 선배는 다시 숨을 고르고,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변명의 기회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피투성이 남자는 듣지 않고 우리를 향해 원망과 비난을 쏟아냈다. 바락바락 대드는 꼴이 보기 싫었는지 그의 여동생조차 제발 좀 데려가라고 애원했다.


김순경은 바닥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일어나세요. 체포됐으니 경찰서 가야 합니다.” 그러자 남자가 김순경을 향해 고개를 추켜올렸다. 그러고는 새빨간 눈을 부라리기까지 했다. 무시무시한 토르를 본 나는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 왔다.


 “너 방금 나한테 욕했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순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팔이 묶여도 의지만은 멈출 수 없었나 보다. 침까지 튀기며 소리쳤다. 아니 입 안에 묻은 검붉은 피가 튀었다. 좀비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언제 욕했어요?”

 “나한테 X팔이라고 했잖아!”


오만가지 설득의 기술이 있다지만, 그에겐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순경은 기죽지 않았다. 또박또박 말하며 그를 설득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여경 중에 가장 배포가 컸다. 김순경은 그런 경찰관이었다.


나는 김순경을 돕기 위해 나섰다. 남자를 향해 강한 경고성 멘트를 날렸다. “언제 욕했다는 건가요? 자꾸 반항하면 죄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피투성이 남자는 분노를 나에게 쏟아냈다. 어차피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한 터라, 나도 지지 않았다.



그를 강제로 데려가기로 했다. 나와 김순경이 양팔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갔다. 아니 사실상 끌고 갔다. 남자는 지지 않으려고 두 다리를 쩍 벌려 엘리베이터 좌우 벽에 갖다 댔다. 민망한 모습이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두 다리에 불끈 힘을 줬다. 벽에 다리가 박힌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두 명의 경찰이 더 달라붙어 다리를 붙잡았다. 그는 이번엔 온몸에 힘을 줬다. 소리까지 지르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버텼다. 우리는 간신이 남자의 두 다리를 오므리고 엘리베이터에 구겨 넣었다.


나는 너무 힘을 썼는지 고질병으로 앓았던 허리디스크 신경통이 저릿하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제 거의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1층에 내려가 순찰차에 태우기만 하면, 그리고 나의 필드인 경찰서로 가면 됐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피투성이 남자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 엘리베이터 안에서 2차전이 시작됐다. 좁아터진 곳에서 소리 지르니 더욱 쩌렁쩌렁했다. 그러다 카악. 퉷. 바닥에 침을 뱉었다. 진득한 피와 침이 섞인 액체가 나왔다.


“침 뱉지 마세요!” 참다못한 내가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나에게 욕설까지 하며 또다시 침을 뱉었다. 그러나 이번엔 바닥이 아니었다. 그의 입은 내 얼굴을 향해 있었다.






김순경과 그곳에 있던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나도 나를 쳐다봤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다. 피를 봐서 그런 건가? 모욕감과 수치심이 올라왔다.

그간 내 멱살을 잡은 놈, 나를 밀친 놈, 뒤에서 구둣발로 걷어찬 놈, 내 소중한 그곳을 건드린 놈 등 다양한 놈이 있었지만 이건 처음이었다.


“너 지금 나한테 침 뱉었어?” 내 말을 들은 피투성이 남자는 어떻게 했을까?


나를 조롱하며 또 침을 뱉었다. 이번엔 더 많은 양이었다. 내 얼굴과 가슴까지 피로 물들었다. 순간 그를 향해 퍼붓고 싶은 온갖 욕설이 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때 남자의 여동생이 나섰다. 나에겐 사과를, 남자에겐 혼을 냈다. 간신히 분을 참은 나는 그에게 공무집행방해죄를 추가했다.

경찰이 범인과 똑같이 행동할 순 없었으니. 나에겐 이게 최선이었다.  

    






“경찰관님 제가요. 조울증이 있어요. 정신병입니다.”


남자는 경찰서로 가는 내내 순찰차 안에서 떠들어댔다. 피 묻은 이빨을 드러내며 계속 주절거렸다.


“저 차라리 죽을게요. 자살할 테니 이거 풀어주세요. 그냥 죽고 싶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서 진심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심리학 박사 빅터 프랭클이 말했던 ‘집행유예 망상’은 아닐까 생각했다. 사형선고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 집행유예 받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망상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풀어줄 거라, 기대했을지도.


김순경은 남자 옆에 앉아 동행했다. 돌발 행동이 염려돼서 자진해서 앉았다. 남자의 말을 듣자니 짜증도 났겠지만, 김순경은 그를 자극하지 않았다. 아마 차에서까지 소란 피우는 건 막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운전하는 나를 배려하려고 한 것일 수도.

어쨌든 그녀는 남자의 주정을 받아줬다. 경찰서 가는 15분 동안이나.



그래도 나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남자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속으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때 경찰서에 도착했다. 형사과 앞에 차를 세운 뒤, 그가 앉은 좌석 문을 열었다.


“야 내려, 경찰서 다 왔어!”

“저 죽고 싶다니까요. 경찰서는 왜 와요. 이 경찰관님 또 이상하게 말하네.”


그는 다시 비딱하게 굴었다. 조울증 증세가 보이긴 했다. 하지만 조울증이라고 해서 감정을 마음대로 풀어도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남자의 조울증을 받아주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니까 말이다.


조울증이 있어 술 마시고 사람을 폭행한다?


다른 사람은 공감할지 몰라도 최소한 나에게는 핑계에 불과했다.



나는 그의 팔을 잡고 차에서 끌어내렸다. 김순경이 옆에서 그를 붙잡았다. 형사과로 걸어가는 그를 보며,


“야. 네가 싼 똥은 네가 치워.”


당황해하는 그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어디 무책임하게 죽겠다는 거야. 네가 저지른 일은 책임져야 할 거 아냐!”


경찰관으로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소심한 복수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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