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 두 영웅의 대화

해방 직후 이승만과 김구가 단둘이 마주 앉아 나누는 허구의 대화를, 당시 역사적 사실과 두 사람의 실제 성향을 살려 짧은 대본 형식으로 구성했습니다.


[가제] 1947년 겨울, 두 영웅의 대화


서울 종로, 한옥 사랑채 안. 초겨울 찬 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든다. 석유난로가 희미하게 붉은빛을 내뿜고 있다. 이승만과 김구가 마주 앉아 있다. 두 사람의 눈빛은 날카롭지만, 그 깊은 곳엔 나라를 향한 동일한 열망이 숨어 있다.


이승만
김 주석,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그 성명을 읽었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동이지, 눈물로 호소하는 이상이 아니오.

(잔을 내려놓으며) 김 주석, 우리는 시간 없습니다. 소련이 북에서 군사력을 키우고 있소. 남과 북이 함께 총선거? 그건 공산주의에게 나라를 내주는 길이오.


김구
(가만히 웃음 지으며) 이 박사, 나는 단 한 번도 공산주의를 믿어본 적이 없소. 그러나 민족은 하나요. 우리 백성은 반으로 잘려 살아선 안 됩니다. 미국과 소련이 그어놓은 3.8선은 우리 땅의 상처요.

이 박사, 나는 평생 조국의 완전한 독립만을 꿈꿔왔소. 3.8선이라는 칼날이 우리 민족의 심장을 가르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소.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내가 추구해 온 '나라'의 모습이오.


이승만
이론으론 그렇지요. 하지만 현실을 보시오. 모스크바 3상 회의, 신탁통치안... 그들의 의도는 자주독립이 아니오. 나는 미국을 설득해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세울 것이오.


김구
자유... 좋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반쪽짜리라면? 북의 동포를 포기한 자유라면, 그것이 과연 완전한 나라요? 나는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겠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확인하겠소.


이승만
(단호히) 그건 함정이오. 김일성은 이미 소련의 꼭두각시요. 당신이 가면, 그는 평화를 말하며 시간을 벌 것이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남쪽의 기반도 못 다질 것이오.

남북 총선거? 그건 공산당에게 나라를 내주는 셈이오. 북은 이미 소련의 군대와 김일성 체제로 굳어지고 있소. 미국도 그것을 알기에 남쪽만이라도 정부를 세우자 하는 거요.


김구
이 박사, 박사께서는 늘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말하시오. 맞습니다, 강대국의 계산 속에 우리가 있소. 그러나 나는 역사의 기록 속에 남고 싶소. ‘분단을 막으려 몸부림친 사람’으로 말이오.


이승만
(잠시 침묵) 그렇다면 '나라' 없는 통일이오? 소련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북쪽의 현실을 보시오.

여운형 선생도, 좌우합작을 부르짖다 결국 암살당하지 않았소? 공산주의자들은 통일을 말하는 척하며 결국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오. 지금은 남쪽만이라도 정부를 세워 자유를 지키고, 그 힘으로 훗날을 도모해야 하오.

그리고 나는... ‘이 나라를 세운 사람’으로 남을 것이오. 분단은 비극이지만, 나라 없는 통일은 더 큰 비극이오.


김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가겠군요.

여운형 선생의 죽음은 좌우 모두의 비극이오. 그러나 나는 그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소. 좌우를 아우르려 했던 선생의 뜻처럼, 나는 분단이라는 비극을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몸부림칠 것이오. 김규식 선생과도 논의했소. 38선을 넘어 평양에 가겠소.


이승만
평양이라니! 그건 위험한 도박이오. 김일성에게 이용당할 뿐이오. 그는 통일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방해하려는 구실을 찾고 있을 뿐이오. 미국과의 협상도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오.

주석, 나는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소. 미국은 우리에게 영원한 친구가 아니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소련을 견제하는 것이고, 우리가 힘을 보여줘야만 그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소.


김구

(고개를 저으며) 나는 외세의 힘으로 세운 반쪽짜리 나라의 지도자로 역사에 남고 싶지 않소. 그들의 계산 속에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소. 내 몸이 38선을 베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통일된 조국을 위해 평양으로 가겠소.


이승만

(잠시 침묵하다가) 주석의 뜻이 그렇다면... 멈출 수는 없겠구려. 그러나 나는 이 나라의 시작을 지키기 위해 이 길을 가야 하오. 나라를 세운 후에, 분단의 비극을 극복할 힘을 키우는 것, 그것이 나의 소명이오. 우리는 다른 길을 가겠지만, 결국 우리 두 사람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에 있음을 잊지 마시오.

그렇지만, 우리 둘 다 같은 곳을 보고 있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말이오.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김구는 1948년 봄 평양으로 향했고, 이승만은 워싱턴과의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그들은 끝내 생각이 달랐지만, 두 길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닿으려는 길이었다.



[대화극 2부] 38선의 겨울에서 5월의 봄까지


장면 1 – 평양행을 앞둔 김구


시기: 1948년 4월 초
장소: 경교장
김구는 평양행 준비를 하고 있다. 김규식, 여운형의 옛 흔적이 떠오른다.


김구
(비서에게) 북행 준비를 서두르시오. 김일성이든 누구든, 만나서 통일을 이야기하겠소.
(혼잣말) 이 길이 실패로 끝나도… 나는 조국의 온전함을 위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리.


장면 2 – 이승만, 미국과의 협상


시기: 같은 시기, 서울 미군정청
미군 고문단과 이승만이 회의 중이다.


이승만
(영어로) “If we delay, the Communists will take over the whole peninsula. We need elections in the South now.”
(통역 후) … 북은 이미 소련의 군사·정치 조직 아래 들어갔소. 남에서 정부를 세워야 나라의 뿌리를 지킬 수 있소.


미군 장교
박사, 남쪽만의 선거는 분단을 고착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승만
분단이 두려워 정부를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노예가 될 뿐이오.


장면 3 – 두 번째 만남


시기: 김구가 평양에서 돌아온 직후
김구의 표정은 무겁다. 이승만이 찾아온다.


이승만
주석, 북에서 무슨 얘길 들었소?


김구
그들은 통일을 말했지만… 그 속엔 자유가 없었소. 소련의 그림자가 짙더이다.


이승만
그래서 말했잖소. 이제라도 남쪽 선거에 함께하시오.


김구
아니오. 나는 남쪽 단독 선거를 인정할 수 없소. 비록 북이 불가능해도, 역사 앞에 분단을 받아들인 서명을 남기고 싶지 않소.


이승만
(한숨) 주석, 역사는 ‘나라를 세운 자’와 ‘세우지 못한 자’를 다르게 기억할 것이오.


장면 4 –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선거일


이승만은 경성 중앙청에, 김구는 경교장에 있다. 라디오에서 개표 소식이 들려온다.


라디오 방송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투표율은 95%를 넘겼으며…”


이승만
(조용히) 이제 시작이오. 이 나라를 지키는 싸움이.


김구
(멀리서 혼잣말) 분단의 시작이오. 통일의 길은 점점 멀어지고 있구나.


장면 5 – 마지막 교차 장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에서 같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승만의 방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준비’ 문서가, 김구의 방엔 ‘통일운동 계획안’이 놓여 있다.


이승만
나라가 있어야 통일도 있소.


김구
통일 없는 나라는 반쪽이오.


화면이 어둡게 전환되며 자막: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그러나 그 해 9월 9일, 북한에서도 정부가 수립되며 한반도는 완전히 갈라진다.


이승만의 말에는 냉정하고 차가운 현실이, 김구의 말에는 뜨거운 민족애가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의 나라를 위하는 생각은 같았지만 방향이 달라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국가와 국민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만약,

남쪽만의 선거가 아닌 남북이 함께 총선거를 치렀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통일 정부”라는 외형을 가졌더라도 실제는 북한 주도의 공산 정권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 이유는

1. 당시 남북 정치·군사력의 불균형

북한: 이미 1946~47년 사이에 소련의 지원으로 김일성 중심의 권력 구조를 완전히 장악했고, 조선인민군 창설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남한: 미군정하에서 좌우 정치 세력이 혼재했고, 경찰력 외에는 군사 조직이 미비했다.

또한 남로당(남한 공산당)도 지하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즉, 선거를 한다 해도 북한은 ‘무력·공포·조직력’으로 표를 통제할 수 있었고, 남쪽은 이를 막을 장치가 거의 없었다.


2. 소련식 선거 모델의 가능성

소련이 점령한 동유럽 국가들(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에서 진행된 선거는

“다당제” 외형을 띠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산당이 장악한 ‘통일전선 명부’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북한도 1946년 11월 “북조선 인민위원회” 선거를 같은 방식으로 치러 김일성이 100% 권력을 쥐었다.
남북 선거를 하면, 북은 ‘통일전선 명부’를 밀어붙이고,

남쪽 좌익 세력과 연합해 표를 모을 가능성이 높다.


3. 남한 내 좌익 세력의 동원력

남로당은 당시 남한 농촌과 노동자 조직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경찰과 우익 단체가 이를 견제하긴 했지만, 전국 단위 선거에서 좌익의 선전전과 폭력, 선거 방해는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통일 정부”라는 이름 아래 공산 세력이 과반을 차지하거나, 최소한 정부 내 핵심 권력을 장악했을 가능성이 큰 것은 자명한 일이다.


4. 미국·소련의 의도 차이

소련: 선거를 명분으로 한반도 전체를 친소 정권 아래 두려는 전략.

미국: 남쪽만이라도 자유 진영으로 묶어두려는 전략.

공동 선거는 미국이 원치 않았고, 설령 합의했다 해도 '소련이 제시하는 방식(=공산당 주도 선거)'을 수용해야 하는 구조였을 것이다.


5. 가능한 시나리오

공산 정권 탄생 시나리오

김일성·김구·여운형계 좌우합작 정부 수립,

실제 권력은 김일성 중심으로 장악.

곧 소련식 일당 독재로 전환.

내전 조기 발발 시나리오

선거 과정에서 좌우 무장 충돌 확대 등 1950년이 아니라

1948~49년쯤 내전 발발 가능성.

국제 분할 통치 지속 시나리오

선거 자체가 무산되거나, 결과를 미국·소련이 서로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분단이 장기화.


*결론

남북 공동 선거가 치러졌다면 ‘형식적 통일’은 가능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가 한반도 전체를 지배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승만이 주장한 “남쪽만이라도 자유민주 정부를 세우자”는 노선은,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절반을 공산화에서 지켜낸 셈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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