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가는 음악이 아니라 삶이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이 짧은 노래 한 줄에 한국어의 결, 어머니의 숨결, 그리고 한글의 품위가 담겨 있다.
이 글은 자장가라는 가장 일상적인 언어에서, 우리가 잊고 지낸 말의 아름다움과
삶의 철학을 돌아보고자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많이 들어와 있다.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러 오든지, 일을 하러 오든지, 결혼해서 정착을 하던지,
이제 길에서 외국인을 마주치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 들 중에는 유투버로 나서 한국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을 영상으로 공유하는 이들이 많다.
그 영상 속에는 한국어를 배우며 느낀 놀라움, 또 한글의 독창성에 대한 감탄이 자주 등장한다.
통번역을 하는 유투버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으면 한글과 한국어를 번역하기가 너무나 힘들다고 한다.
한글은 독특하고 다양한 언어의 사용에 그들의 언어에는 없거나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단순한 의미 전달을 넘어서, 한국어에 담긴 정서와 결을 이해하고 옮기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글을 처음 배우는 외국인들은 글의 체계에 놀란다.
문자 하나하나가 소리의 원리를 품고 있으며, 모음과 자음이 짝을 이뤄 만들어지는 체계적인 구조는
다른 어떤 언어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로 감탄하는 건, 그 문자 안에 담긴 정서와 말맛이다.
한국어는 '뜻'만 전달하는 언어가 아니라, '마음'을 함께 전하는 언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자장가가 떠올랐다.
우리가 아기에게 들려주는 노래.
외국의 자장가와 우리나라의 전통자장가가 있다면 어떻게 비교될까?
태어나 처음 듣는 음악이자, 엄마의 심장소리를 대신하는 말 없는 위로.
그런데 이 단순하고 짧은 노래 속에, 각 나라의 문화와 언어, 삶의 정서가 깊게 녹아 있다면,
자장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외국의 자장가들은 대개 서양 고전음악의 전통에서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브람스의 《자장가(Wiegenlied)》나 슈베르트의 《Lullaby》는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좋은 밤", "천사의 보호", "장밋빛 꿈" 같은 이상적이고 서정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피아노 반주에 어울리는 3박자의 왈츠풍 리듬도 낭만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 자장가는 사뭇 다르다.
누가 작곡한 것도 아니고, 악보로 남겨진 것도 아니다.
무대 위에서 연주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논에서 돌아온 엄마가, 젖을 물린 아이를 품에 안고,
한 손에 바늘을 들고 바느질을 하며,
작은 한숨처럼 흘러나오는 말들이 바로 한국의 자장가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도련님 잘도 잔다
아버지는 논매러 가고
어머니는 바느질한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얼른 자라 도와다오"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따뜻하다.
현실적이고,
그러면서도 슬픔이 잔잔히 배어 있다.
자장가는 아이를 달래는 동시에, 엄마 자신 스스로에 위안을 주는 주문과도 같다.
서양의 자장가가 '평화롭고 이상적인 꿈'을 약속한다면,
한국의 자장가는 '고단한 오늘의 현실'이 녹아있다.
그 안엔 '한(恨)'과 '정(情)'이 공존한다.
이 정서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면,
'도련님 잘도 잔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my baby sleeps well’이 아니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아이에 대한 존중과 귀함, 정서적 거리를 동시에 담고 있는 말이다.
‘자장자장’이라는 의성어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소리를 넘어 정서적 리듬이다.
리듬도 의미도 모두 번역하기 힘들 것이다.
이건 언어가 아니라 감각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배웠던 우리가 부르는 ‘잘자라 우리 아가’ 같은 노래의 멜로디는
사실 브람스나 슈베르트의 곡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
하지만 가사는 전혀 다르다. 직역도 의역도 아닌 전혀 다른 이야기다.
왜 그럴까?
서양의 자장가를 한국어로 옮기려 하면,
한국어의 정서와 박자, 운율이 그 외국 선율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억지로 번역한 말은 어색하고, 아이를 달래기는커녕 오히려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결국, 멜로디만 남기고, 가사는 한국 엄마들의 방식으로 다시 쓴 것이다.
결국, ‘한국의 자장가’가 된 셈이다.
외국인 통번역사들이 한국어 번역에 애를 먹는 이유는
단어의 뜻 때문이 아니다.
말에 들어 있는 마음의 결, 말맛, 말의 무게감 때문이다.
한국어의 말끝의 흐름, 존댓말 체계, 높임법과 낮춤법,
그리고 한 마디에 담긴 정서는 언어 이상의 것이다.
한국 전통의 자장가도 그렇다.
그건 그저 노래가 아니라,
한글로, 한국어로, 엄마의 삶이 흘러나온 소리다.
그건 시(詩)이고, 속삭임이며, 위로다.
엄마가 아이에게 전하는 노래이지만,
그 안엔 엄마 자신이 견디고 있는 하루하루도 함께 실려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는 노래를 들으며 잠든다.
하지만 그 노래에 담긴 마음은 다르다.
한국의 자장가는 그래서 특별하다.
노래라기보다 ‘속삭임’이고, 음악이라기보다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낼 수 있었던 건,
한글이었고, 한국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