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없는 무대에서

2026년 1월 3일 일기

주말 저녁, 아내의 저녁식사로 아구찜을 만들어 바치고 간단히 아내와 한잔하고 나만의 공간으로 2차를 옮겼다.

주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혼술을 할 수 있고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긴 하지만 다음날 하루 쉰다는 토요일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진다. 투명한 술잔 속에 소주와 맥주가 섞여 포말을 일으키는 그 시작적 묘미가 맛 이전에 가지는 의식같이 보인다.


친한 친구 외에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얘기하지 않는다. 특히 sns에서는 한 번도 나의 일을 발설한 적이 없었다. 오늘 이 순간 처음으로 고백? 한다. 남 앞에 드러낼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업에 종사하시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20년... 남의 집을 사고파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세월이다. 말하자면 공인중개사이고 옛날 말로는 복덕방이다.

직업은 직업이고 요즘 글을 쓰는 재미가 소소한 취미가 되었다.

오늘은 국민의 재산 7,800억이 날아갔다는 뉴스를 보다 울컥한 마음에 풍자 대본 하나를 써 내려갔던 글을 꺼내 보았다.

대학 시절, 연극 무대 위에서 뿜어내던 그 뜨거운 조명이 그리웠던 걸까. 나는 스마트폰 녹음기를 켜고 혼자 1인 다역을 ㅎㅎㅎ, 혼자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지검장님, 항소 보고서입니다!" "그거... 그냥 접어."

비열한 윗선의 목소리를 낼 때는 입안이 썼고, 정의를 외치는 검찰팀장의 목소리를 낼 때는 가슴이 뛰었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다시 들어본다. 아, 내 안에 아직도 이토록 많은 인격이, 이토록 뜨거운 갈망이 숨 쉬고 있었구나. 60대 중반의 공인중개사라는 껍데기 아래, 무대를 갈구하던 청년이 여전히 소리치고 있었다.

페이스북에 이 영상을 올려보려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제길, 안 되네..." 혼잣말을 내뱉으며 반쯤 비어있는 잔을 들이켠다. 기계는 서툴고 세상은 빠르지만, 내가 쓴 대본 속의 진심만은 낡지 않았음을 믿고 싶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늘 '오늘 같은 밤'으로 객석의 흥을 돋우곤 했다. 하지만 혼자 남은 이 밤, 내 입술 끝에 맺히는 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다. 나는 이 노래를 '예순 즈음에'라고 고쳐 부른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세월은 어느덧 나를 이만큼이나 데려다 놓았다. 하지만 슬프지만은 않다. 오늘 처음으로 내 안의 목소리를 밖으로 꺼내 보았으니까. 비록 관객 하나 없는 거실에서의 독백이었지만, 나는 오늘 다시 배우가 되었고 작가가 되었다.

누군가 "그 나이에 무슨 연기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 술잔을 비우며 답하리라. 인생이라는 연극에 은퇴란 없다고. 이제 막 2막의 가장 강렬한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을 뿐이라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능숙하게, 나의 진심을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올려보려 한다. 예순 즈음의 오늘 밤, 잠은 오지 않고 꿈만 자꾸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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