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불행한 제로섬게임

by 전영칠

1. 시상대 위에서 느끼는 서늘한 불안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하나의 진리만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승리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교실 뒷벽에 붙은 성적표부터, 직장 내의 인사 고과,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부의 축적 게임까지 우리는 단 한 명의 승자가 되기 위해 서로를 밟고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다. 치열한 사투 끝에 마침내 시상대 꼭대기에 올라선 승자가 마주하는 것은 찬란한 영광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곳에서 승자가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의외로 '안도'와 뒤섞인 '오만'이다. 내가 저들보다 우월해서 이곳에 왔다는 착각, 그리고 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근원적인 공포가 오만이라는 가면을 쓰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경쟁이라는 환상이 설계한 첫 번째 덫이다. 승자는 승리하는 순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를 잠재적 적대자나 무능력자로 규정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아래 넷플릭스의 시례를 보자.




'그저 그런' 성과자는 즉시 내보내는 넷플릭스의 문화 :

넷플릭스의 '키퍼 테스트(Keeper Test)'와 그 이면



넷플릭스에는 최고의 성과자에게 최고의 보상을 주지만, '그저 그런' 성과자는 즉시 내보내는 문화가 있다.

넷플릭스는 성공했지만, 그 안의 구성원들은 "내가 내일도 승자일 수 있을까?"라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린다. 승자의 자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공포가 오만을 넘어 '번아웃'과 '인간관계의 도구화'를 부추긴다. 최근 K-문화, K- 드라마 성공에 힘입어 넷플릭스에서 대한민국 드라마가 상한가를 치고 있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승자를 우대하고 패자와는 관계를 끊는 넷플릭스의 냉혹한 칼날이 언제 대한민국 드라마 세계에 내릴지 마무도 모른다.


2025년 현재 넷플릭스가 여전히 업계 선두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경영학계에서는 이 모델을 '고성과를 유지하는 혁신적 시스템'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심리적 안전감'의 결여가 창의성을 장기적으로 저해할 수 있다는 경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2. 패배라는 낙인이 남긴 화상(火傷)


반대편을 보라. 시상대 아래, 혹은 경기장 밖으로 밀려난 이들에게 사회는 '패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제로섬 게임에서 패배는 단순히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가치를 부정당하는 경험이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졌다는 논리, 네가 부족해서 밀려났다는 차가운 시선은 패자의 가슴속에 슬픔 대신 '분노'를 심는다. 이 분노는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향하다가, 결국 시스템과 승자를 향한 증오로 번진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저 사람이 가졌다"는 박탈감은 공동체의 유대감을 밑바닥부터 갉아먹는다.

패자는 패배를 인정하는 대신 시스템의 불공정을 탓하고, 승자는 그 불공정조차 실력이라 치부한다. 이 지점에서 대화는 단절되고, 사회는 거대한 심리적 내전 상태에 돌입한다.

아래의 실험을 보자.



제로섬 게임이 어떻게 멀쩡한 개인들을 괴물로 만드는가 :

'로버스 케이브' 실험


제로섬 게임이 어떻게 멀쩡한 개인들을 괴물로 만드는지 무자퍼 셰리프의 '로버스 케이브' 실험을 보면 알 수 있다.


평범한 22명의 소년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캠프를 열었다. 처음에는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아이들에게 축구, 야구 등 '이겨야만 보상을 얻는' 경쟁적 상황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켰다.

그 결과, 불과 며칠 만에 아이들 사이에서는 상대 집단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 깃발 소각, 기물 파손 등 극심한 적대감이 분출됐다.


"적대감은 개인의 인격 결함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두고 싸우게 만드는 '구조'에서 탄생한다"

패자의 분노가 단순히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강요한 생존 본능인 것이다.



3. 제로섬 게임


우리가 믿는 경쟁 시스템은 대개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파이의 크기는 정해져 있고, 내가 한 조각을 더 먹으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접시에서 뺏어와야 한다. 이 구조 안에서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나의 기회로 여기게 된다.

동료의 실수는 나의 진급 기회가 되고, 라이벌 기업의 위기는 우리 기업의 호재가 된다. 겉으로는 상생과 협력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상대의 몰락을 기도하는 이 기괴한 이중성은 제로섬 게임이 낳은 괴물 같은 부산물이다.


문제는 이 게임이 계속될수록 전체의 효용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승자는 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어 비용에 에너지를 쏟고, 패자는 복수를 꿈꾸거나 아예 게임을 포기해 버린다. 창의적인 혁신이나 인류애적 협력은 이 '뺏고 뺏기는' 긴장감 속에서 질식해버리고 만다. 결국 모두가 합산하면 '0'이 되는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감정적 비용을 따지면 우리는 모두 '마이너스'의 늪에 빠져 있다.

MS의 아래 사례를 보자.




승자의 오만과 내부 경쟁이 어떻게 조직을 망치는가 :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택 랭킹(Stack Ranking)' 사례


승자의 오만과 내부 경쟁이 어떻게 조직을 망치는지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실패 사례이다.

MS는 직원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워 하위 10%를 퇴출하는 '스택 랭킹' 제도를 운영했다.

그 결과로 직원들은 혁신보다는 '살아남기'에 혈안이 되었다. 동료의 프로젝트를 방해하거나, 유능한 동료와는 한 팀이 되지 않으려 했다. 결국 MS는 모바일 시대로의 전환기에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구글과 애플에 뒤처지게 됐다.


"내부의 제로섬 게임은 조직 전체를 마이너스 섬(Minus-Sum)으로 만든다"


사티아 나데라 회장이 부임 후 이 제도를 폐지하고 '성장 마인드셋(협력)'을 강조하면서 MS가 다시 부활했다.



4. 모두가 불행한 결말


오만한 승자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편집증에 시달리고, 분노한 패자는 냉소와 무기력에 빠진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경쟁 사회'의 민낯이다. 승자는 왕관의 무게에 짓눌려 행복을 유예하고, 패자는 다시는 도전하지 않는 법을 배우며 삶의 활력을 잃는다.


부유한 나라의 자살률이 높고, 풍요 속에서도 우울증이 만연한 이유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이 환상에 속아왔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이기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 저 사람을 이겨야만 내 존재가 증명될 것이라는 거대한 착각 말이다.

우리는 사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승자의 오만은 패자의 분노를 자극하고, 그 분노는 다시 승자의 안녕을 위협하는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범죄율의 증가, 계층 간 갈등,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는 모두 우리가 제로섬 게임의 규칙을 충실히 따른 대가로 지불하는 청구서들이다.



5. 환상에서 깨어나기 위한 질문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게임의 판을 바꿀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경쟁이 본능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인간의 역사에서 진정한 진보는 경쟁보다는 협력과 공생의 순간에 더 크게 일어나지 않았던가? 타인을 짓밟고 얻은 성취가 과연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가?

승자의 오만을 내려놓고 패자의 분노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하는 이 게임이 '환상'임을 깨닫는 것이다. 파이는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키우는 것이며, 타인의 성공이 나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아래의 실험을 보자.



인간은 공정성에 목숨을 건다 :

'최후통첩 게임' 실험


인간이 단순히 이익만을 쫓는 존재가 아니라 '공정성'에 목숨 거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실험이다.

A에게 1만 원을 주고 B와 나누라고 한다. B가 제안을 거절하면 둘 다 한 푼도 못 받는다. 논리적으로는 B가 100원만 받아도 0원보다는 이득이지만, 현실에서 B는 A가 7:3이나 8:2로 불공정하게 배분하면 차라리 '둘 다 망하는 길'을 택한다. 현실은 그렇다.


패자가 느끼는 '분노'는 경제적 손실 때문이 아니라 '불공정한 대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제로섬 게임이 위험한 이유는 패자가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려는 유인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 맺음말


이제 시상대에서 내려와 광장으로 모여야 할 때다. 위아래로 나뉘어 서로를 증오하던 시선을 거두고, 옆에 선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아야 한다. 경쟁이라는 환상이 드리운 짙은 그림자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사람' 그 자체였음을 고백해야 한다.

성공의 정의를 다시 쓰자. 승리는 타인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행복은 1등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는 모든 이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제로섬 게임의 끝은 파멸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승자가 되는 마법이 아니라, 아무도 패자가 되어 버려지지 않는 따뜻한 연대다. 경쟁은 환상이다. 그 환상을 깨부순 자리에만, 비로소 진정한 인간의 품격이 싹트기 시작할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승자가 되어 모든 것을 가졌다고 믿는 순간, 당신은 가장 소중한 동료를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패배의 쓴맛에 잠 못 이루는 당신,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잘못 설계된 게임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 이제 이 지독한 게임을 멈출 때가 되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