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원에 대한 묵상' 시리즈는 묵상하고 살면서 문득 스치는 느낌(생각)들을 쓴 것입니다.
요즘 보는 넷플릭스에 '러브 미'라는 드라마가 있다. 줄거리 중에 중학교 아들이 있는 돌싱 진호(남)와 준경(여)과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갑자기 독일에서 16년 만에 전처 윤주가 귀국한다. 윤주는 "몇명 만났지만 당신(진호)만한 사람이 없더라"라며 세사람 사이의 파란을 예고 한다. 당연히 준경은 당황한다.
준경 역시 할말이 많아진다.
갑자기 넷플릭스 드라미를 꺼내는 이유는 세상은 할 말 많은 이들 투성이라는 것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떠 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할 말이 있어지지 않으면 드라마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 갈등 구조가 없으면 드라마는 성립되지 않는다.
세상을 살며 수 많은 갈등구조의 인생들이 장편소설들을 엮으며 사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시간이 평균 얼마나 될까? 1분? 3분? 다 들어주지 못해 중간에 상대방의 말을 끊기도 한다.
사람과 친해지는 비법이 있다.
사람과 친해지려면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면 된다. 말을 잘 들어주는 이에게 사람이 모인다.
침묵이란 무엇일까. 침묵은 또 다른 바다다. 사연 많고 말 많은 세상에서 승패를 떠나 침묵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철학의 영역'이다.
세상의 소음이 멈추고, 머릿속 생각을 멈춘 자리를 잠시 바라보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 적막 속에 생생하게 깨어 있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또다른 세계다. 거대한 세계다.
거기에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우리들의 본래 성품인 근원의 세계가 있다. 그곳으로 내 의식이 침묵의 세계로 이어져 있으면 침묵은 이미 침묵이 아니다.
파도는 자신이 바다와 분리되어 있다고 착각하며 소멸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파도가 부서지는 순간,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잠시 일렁이는 파도 형상이 아니라, 거대한 바다 그 자체다. 그대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다.
내가 죽으면 우주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근원으로 가서 살 뿐이다. 내가 죽는 것은 육신이 죽는 것이다. 영혼은 그대로 존재한다.
이 말은 이론이 아닌 순수한 내 경험이다. 영혼들과 대화도 해보았고 내 육신에서 영혼이탈도 해 보았다. 영혼들은 지상에서 닦은 인격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영혼들은 부와 재산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가지고 간다. 부와 재산보다 인격이 더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나는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다.
내가 죽으면 영혼은 근원에서 산다. 인간은 불멸이다. 나는 파도(육신)가 아니다. 나는 근원(바다)이다.
거울은 꽃이 앞에 있든 똥이 앞에 있든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비춘다. 그리고 대상이 사라지면 그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되 마음에 자국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수행자의 마음이다.
성경 계시록의 '유리(琉璃)바다(계15/2)'는 '거짓 없고 투명한(유리) 세상(바다)'을 뜻한다. 이 구절은 장차 그러한 거짓없고 투명한 세상이 올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