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한정된 자원'과 '줄 세우기'라는 프레임에 갇혀 산다. 옆 사람을 이겨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적자생존의 논리는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종교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기원이라 일컬어지는 단군신화의 핵심 가치,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발견할 수 있다. 경쟁이 본질이 아니라, 서로의 이로움을 극대화하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라는 선언이다.
하늘의 아들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하늘에서 쫓겨났거나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기 위함, 즉 더 넓은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이는 경쟁 논리의 대전제인 '결핍'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경쟁은 언제나 '부족함'을 먹고 자란다. 파이가 작으니 남의 것을 뺏어야 한다는 공포가 경쟁을 추동한다. 하지만 홍익인간의 정신은 '풍요'에서 출발한다. 내가 가진 하늘의 지혜와 다스림을 나누어 인간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발상은, 존재 자체가 이미 충만하며 그 충만함을 외부로 흘려보내는 것이 삶의 진정한 가치임을 시사한다.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문장은 경쟁 지상주의자들에게는 다소 순진하거나 비현실적인 구호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비즈니스와 생존의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이미 증명되고 있다.
독점과 경쟁을 통해 상대를 멸망시키려 했던 기업들은 대개 고립되어 자멸했다. 반면, 생태계를 조성하고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만든 플랫폼 기업들은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나를 이롭게 하는 '이타적 이기주의'의 발현이다.
경쟁은 자원을 나누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일뿐, 생존의 '목적'이 될 수 없다. 홍익인간은 그 현상 너머를 보라고 말한다. 내가 세상에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할 때, 경쟁자는 적이 아니라 협력의 파트너가 되거나 혹은 내가 신경 쓸 필요조차 없는 배경으로 물러난다.
우리는 경쟁이 환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누군가를 이겼을 때 얻는 쾌감은 짧고, 그 뒤에 오는 공허함은 길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롭게 했을 때 얻는 충만함은 영구적이며 확산성을 가진다.
단군신화는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 무한 경쟁의 굴레에서 지쳐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통찰이다. 당신이 오늘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이로움을 더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경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홍익'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경쟁하는 민족이 아니었다. 단군신화에는 우리 한민족의 위대한 DNA (정체성)가 굵은 뿌리로 한반도의 대지에 단단히 박혀 있다.
세상은 뺏고 뺏기는 전쟁터가 아니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빛으로 서로의 어둠을 밝혀주는 거대한 공존의 장이다. 홍익인간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혁명이자 환상을 깨뜨리는 유일한 열쇠다.
단군신화의 '홍익인간' 정신이 어떻게 현실에서 경쟁의 틀을 깨고 승리하는지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기업 세계에서 경쟁은 숙명처럼 여겨지지만, 최고의 기업들은 경쟁자를 죽이는 대신 '모두를 이롭게 함으로써' 시장을 지배했다.
파타고니아는 이본 쉬나드가 1973년 창업한 글로벌 아웃도어(등산용품) 제조업체다. 회사 슬로건은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이다. 파타고니아는 매출의 1%를 환경운동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손익계산서의 당기순이익과 상관없이 매출의 1%이므로 적자가 나도 기부해야 한다.
등반과 모험을 좋아해서 등산용품 사업을 시작한 이븐 쉬나드는 환경 보호에 관한 한 그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확고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1996년부터 모든 면직 의류는 100%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순면으로 제작하고 있다.
2011년에는 ‘이 재킷(파타고니아의 제품)을 사지 마세요’란 광고를 했다. 아무리 친환경 제품이라고 해도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환경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파타고니아는 새로운 제품을 사기보다는 가능한 한 기존 제품을 수선해서 쓰기를 권장하기 위해 이 같은 광고를 활용했다.
파타고니아는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미션 아래, 환경 위기 해결을 기업 운영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환경친화적 아웃도어 기업이다. 1973년 설립 이후 품질, 정직, 환경주의, 정의, 불굴의 의지라는 5대 핵심 가치를 기반으로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제품을 만든다.
파타고니아는 이윤 극대화 대신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 존재하며, 이본 쉬나드 창업주는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고 선언하며 기업 가치 전체를 기부했다.
모든 결정은 환경 위기 해결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며, 재생 가능한 방식을 채택한다.평등하고 반인종차별적인 기업 문화를 조성하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기존 방식에 도전하는 혁신기업을 지향한다.
'지구세 1%' 기부,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캠페인 등 단순한 기부를 넘어 소비자에게 소비를 줄이고 수리하여 입을 것을 권장한다.
이들은 의류 업계의 무한 소비 경쟁에서 벗어나 환경 보호라는 홍익의 가치를 선택했다. "새 옷을 사기보다 고쳐 입으라"라고 광고한 것은 단기적으로는 매출 손해 같았지만 장기적으로 소비자는 이들의 진정성에 응답했다. 경쟁 브랜드들이 가격 할인 전쟁을 벌일 때, 파타고니아는 '지구에 이로운 기업'이라는 독보적 위치를 점하며 팬덤을 구축했다. 경쟁은 환상이고, 가치 공유가 실재임을 증명한 사례다.
2014년 엘론 머스크는 테슬라의 모든 전기차 특허를 무료로 공개했다. 비즈니스 상식으로는 경쟁사에게 무기를 쥐여주는 자살 행위였다. 하지만 머스크의 목적은 '전기차 시장의 확대'라는 홍익에 있었다. 경쟁사들이 테슬라의 기술로 전기차를 만들자 충전 인프라가 깔리고 시장이 커졌으며, 결국 그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테슬라는 압도적 선두가 되었다.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판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이로움임을 보여준다.
테슬라의 특허 공개는 마케팅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2014년 6월 12일,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공식 블로그에 "우리의 모든 특허는 당신의 것입니다 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구체적인 사실 관계 보자.
테슬라는 당시 보유하고 있던 약 240여 건의 특허 전부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전기차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전기 구동 장치, 동력 전달 장치 등 핵심 기술이 대거 포함되었다.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이후 새롭게 개발되는 기술 특허에 대해서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천명했다.
전기차 시장이 전체 자동차 시장의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경쟁보다는 '전기차 생태계 자체를 키우는 것'이 인류와 기업의 생존에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대해 타 기업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핵심 기술을 그대로 가져다 쓴 메이저 기업은 거의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테슬라는 수천 개의 작은 원통형 배터리를 묶어 관리하는 독자적인 방식을 쓴다. 반면 현대차, GM 등 기존 기업들은 파우치형이나 각형 배터리를 선호했기에 기술을 그대로 이식하기 어려웠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기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중시한다. 테슬라의 기술을 그대로 쓰는 순간 '테슬라의 추종자'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중소 전기차 스타트업이나 중국 기업들은 테슬라의 설계 사상을 참고하며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일론 머스크는 "선의를 가지고 우리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특허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다. 이것은 법적 제재를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 '유예'한 것에 가깝다.
테슬라가 소송을 안 거는 대신, 그 기업도 테슬라를 상대로 지적재산권 소송을 걸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적(혹은 명시적)인 상호 불침번 조항이 깔려 있다.
기존 자동차 기업들이 테슬라 특허를 안 쓰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테슬라 특허를 쓰는 순간, 자신들이 가진 방대한 특허 무기를 테슬라에게 휘두를 수 없게 될까 봐 우려한 것이다.
테슬라의 특허 공개는 단순히 "공짜로 다 가져가라"는 자선 사업이 아니었다.
테슬라의 기술이 많이 쓰일수록 테슬라 방식이 업계 표준이 된다. (최근 북미 충전 표준인 NACS가 그 예다.)
전기차 부품 시장이 커지면 부품 단가가 낮아져 테슬라도 이득을 본다.
또한 오픈 소스 생태계를 만들면 전 세계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테슬라의 기술 체계 안에서 놀게 된다.
결국 이 것은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여(전기차 보급), 결국 나(테슬라)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논리가 비즈니스적으로도 매우 영리하게 작동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 사례는 '경쟁은 환상'이며 ‘상생이 실재’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 부도 위기라는 극단적 생존 경쟁의 상황에서 한국인은 이기심이 아닌 홍익을 택했다. 장롱 속 돌반지와 결혼반지를 들고 나온 것은 "나만 살자"는 경쟁 심리로는 설명 불가능한 현상이다. 공동체를 이롭게 하는 것이 결국 나를 구하는 길이라는 '홍익적 자각'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기적을 만들었다.
코로나19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위해 점포 임대료를 낮춰주는 ‘착한 임대인 운동’이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이 운동은 전국 513개 전통시장·상점가 및 개별상가에서 임대인 3425명이 총 3만 44개 점포의 임대료를 인하 또는 동결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팬데믹 초기, 마스크 대란 속에서도 시민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고 자가격리자들에게 구호 물품을 보냈다. 특히 임대료를 깎아준 '착한 임대인' 운동은 경제적 논리(임대 수익 경쟁)를 넘어선 홍익의 실천이었다.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면 사회적 비용이 폭증했겠지만, 서로를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사회적 안전망을 지탱했다.
내 개인의 글쓰기와 삶의 태도는 이랬다.
필자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온 ‘영성(靈性)’ 공부를 통해 체득하여, ‘경쟁이라는 환상’을 깨고 싶었다.
글을 쓰는 행위는 흔히 '베스트셀러'나 '조회수' 경쟁으로 비치기 쉽다. 하지만 내가 공부한 인도 성자들의 이야기나 진리의 조각들을 대가 없이 나누는 순간, 나는 타 작가들과 경쟁하는 '글쟁이'가 아니라 독자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홍익의 통로'가 된다. 내 글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는 댓글을 마주할 때, 조회수라는 수치적 경쟁은 아무런 의미 없는 환상이 된다.
현재 나는 하루 8시간 정상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하루 4시간 일을 하며 남들보다 급여의 절반을 받는 일을 선택했다. 그 시간을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남은 시간은 진리를 탐구하는 데 쓴다.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승진 경쟁에 뛰어들었다면 얻지 못했을 평온을 얻었다. 그것은 일종의 직업적 소명감이다. 내가 가진 시간을 어떻게 이롭게 쓸 것인가에 집중하니, 남보다 뒤처진다는 공포(경쟁의 환상)는 사라지고 삶의 주도권이라는 홍익의 열매를 가꾸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