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교향곡으로 진동한다

by 전영칠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떠난 적이 없다


17화 : 우주는 교향곡으로 진동한다



1.

대학교 초년생일 때 독감으로 한기와 열, 온몸이 들쑤시는 증상 속에서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의 한 구절(내레이션)을 듣고 독감이 순간적으로 나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신묘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레이션 부분을 보자.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내 청춘에 건배



음악에는 케어(돌봄·보살핌)와 치유의 힘이 있다.



2.

교향곡(交響曲)을 뜻하는 영어 Symphony는 그리스어 '심포니아(Symphonia)'에서 유래했다. 이는 '함께'를 뜻하는 'syn'과 '소리'를 뜻하는 'phone'이 결합된 단어다. 즉, '함께 울리는 소리' 또는 '조화로운 울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단순히 소리가 섞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수많은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거대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고요를 '아무 소리도 없는 상태'라 정의하곤 하지만, 영성적(靈性的) 관점에서 '진정한 고요'는 '모든 소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더 이상 거슬리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4시간의 짧은 직장 업무를 마치고 작은 집필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도심의 소음조차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흐르는 것을 느낀다.

멀리서 들리는 전철의 구동음, 자동차의 경적,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의 사락거림.

이 모든 것은 사실 거대한 우주의 교향곡 속에 편입된 하나의 음표들이다.



3.

태초에 진동이 있었다

이 말은 태초에 음악이 있었다 라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성경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다"라고 선언한다.

힌두교의 가장 오래된 경전들은 우주가 '옴(Om)'이라는 근원적인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가르친다. 이 '말씀'과 '옴'은 단순히 입 밖으로 내뱉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가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발생한 근원적인 진동을 의미한다.


현대 물리학의 정점인 '초끈 이론'은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점(點)이 아니라 '진동하는 가느다란 끈'이라고 말한다. 이 끈이 어떤 주파수로 진동하느냐에 따라 전자가 되기도 하고 쿼크가 되기도 한다.


즉, 우리가 보고 만지는 이 단단한 물질세계는 사실 거대한 악기가 연주하는 선율이 응축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내가 매일 관리하는 5층짜리 학원 건물의 벽돌 한 장, 교실의 책상, 그리고 그곳을 오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도 '본질은 모두 춤추는 에너지의 진동'이다.

우주라는 연주자가 거대한 하프를 켜고 있다면, 우리 개개인은 그 줄 위에서 저마다의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고 공명하는 존재들이다. 근원이 우리를 떠난 적이 없다는 말은, 그 연주자가 단 한순간도 연주를 멈춘 적이 없다는 뜻과 같다.


왜 우리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곡이나 가사 없는 교향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가? 그것은 음악이 뇌의 해석을 거치기 전,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진동과 직접 공명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나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고 있을 때, 우리는 '나'라는 개별적인 자아를 잊고 거대한 감정의 파도에 휩쓸린다. 이때 발생하는 현상이 바로 '동조화'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두 진동체가 가까이 있으면 결국 하나의 리듬으로 합쳐지는 현상이다.

다름 말로 표현해 '공명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는 이유는, 우리 영혼의 밑바닥에 흐르는 주파수가 본래 하나의 악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20대 초년시절, 고단한 재수생 생활을 견디며 낡은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듣곤 했다. 그 선율은 단순히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가운 방 안의 공기를 데우고, 불안으로 떨리던 내 심장 박동을 우주의 고요한 리듬으로 진정시키는 치유의 파동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선율을 통해 내 어깨바닥을 다독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선율로 신은 소리의 형상을 빌려 지친 영혼들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너를 단 한 번도 홀로 둔 적이 없다"라고.


인생을 살다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나 고통을 마주한다. 관리소장으로 일하며 만났던 무례한 민원인들, 억울하게 직장을 떠나야 했던 순간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이런 사건들은 우리 인생이라는 곡에서 날카로운 불협화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음악의 세계에서 불협화음은 실수가 아니다. 위대한 작곡가들은 의도적으로 불협화음을 배치한다. 날카로운 긴장감이 흐르는 불협화음이 있어야만, 뒤이어 나오는 감미로운 협화음이 비로소 완성된 해방감과 희열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통은 우주 교향곡의 낙방이 아니라,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필연적인 긴장이다. 지금 당장은 귀를 찌르는 소음처럼 들릴지라도, 전 생애라는 거대한 악보 위에서 조망해 보면 그 불협화음은 곡의 깊이를 더해주는 신비로운 장치였음을 알게 된다. 진정한 평화는 소음이 없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음을 품어 안아 조화로 승화시키는 지휘자의 마음 안에 있다.


unnamed (3)산맥들의 합창.jpg "저 산맥은 자연이 오선지와 음표로 내게 부르고 있는 노래다"


4.

내가 오랫동안 영성을 탐구하며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죽음조차 이 진동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신이라는 악기가 낡아 부서지면, 그 안에서 연주되던 곡조는 다시 대기와 우주의 배경 복사 속으로 스며든다.

악기는 사라져도 음악은 영원히 남는다.


꺾어진 갈대를 어떻게 할까? 그것으로 피리를 하나 만들자는 말이다. 한 토막 뚫린 피리란 그것이다. 한 토막이다. 유한한 인생이다. 사람의 몸이 영원할 수는 없다. 전환을 해야 한다. 갈대로 영원은 얻을 수 없지만 음악이 되면 영원하다. - 함석헌(「인생은 갈대」)


음악은 예술의 한 장르다.

인생은 유한하나 예술은 영원하다.

(사실은 영혼으로 본 인생은 무한하다. 영혼은 영원을 살기 때문이다.)

우주(대자연)는 예술로 만들어졌다. 우주가 예술에 녹아 있기 때문에 예술이 영원하듯 우주도 영원하다. 우리가 밤이나 낮이나 우주(대자연)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우주(대자연)의 예술(美)을 보기 때문이다.


전편들에서 다룬 도 닦기 좋은 '직책'이나 '먼지'의 비유를 빌리자면, 그 미세한 먼지 하나하나가 사실은 고유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는 작은 방울들이다. 우리는 분리된 섬이 아니라, 서로의 진동이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간섭무늬이다.

당신이 슬플 때 내 가슴이 떨리는 것은 우리가 같은 양자장의 바다 위에서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침묵 속에 앉아 있을 때조차 당신의 세포는 우주의 항성들이 내는 장엄한 소리에 맞추어 진동하고 있다. 당신의 호흡은 대지의 맥박과 연결되어 있고, 당신의 심장 소리는 태초의 '옴' 소리를 계승하고 있다.


우주는 그대를 단 한 번도 정적 속에 내버려 둔 적이 없다.

'단 한번도 내버려 둔 적이 없다'는 것과 '영원하다'는 말은 이문동의어(異文同義語)이다.



5.

음악의 3요소는 리듬, 선율, 화성이다.


리듬은 음의 길고 짧음이 반복되는 시간적인 흐름이다. 박자와 장단이 여기에 속한다. 음악의 심장 박동과 같아서 곡의 기초적인 골격을 형성한다.

선율은 음의 높낮이(음정)가 리듬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소리의 흐름이다. 흔히 '가락'이라고도 부르며, 사람들이 노래를 기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부분이다.

화성은 높이가 다른 두 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리는 상태를 말한다. 여러 음이 층을 쌓아 풍성한 울림을 만들어내며, 곡의 분위기와 깊이를 결정한다.


우주의 교향곡을 구성하는 3요소를 보자.


우주는 거대한 리듬이다. 행성의 공전, 계절의 순환, 그리고 당신의 가슴속에서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은 우주가 새긴 시간의 지문이다. 리듬은 소음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고, 혼돈 속에서 생명의 흐름을 만든다. 당신이 숨 쉬는 매 순간은 우주의 엔진이 내뿜는 규칙적인 진동과 완벽하게 박자를 맞추고 있다.


그 리듬 위에 당신이라는 선율이 흐른다. 기쁨의 높은 음자리와 슬픔의 낮은 음자리가 교차하며 오직 당신만이 연주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생의 가락을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화려한 독주를 하고 누군가는 고요한 소곡을 연주하지만, 우주라는 거대한 악보 위에서 가치 없는 멜로디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삶은 그 자체로 근원이 쓴 가장 아름다운 노래다.


나와 타인, 인간과 자연이 만날 때 비로소 화성이 탄생한다. 혼자서는 낼 수 없는 풍성한 울림은 서로의 진동이 겹쳐질 때 완성된다. 때로는 삶에서 불협화음이 들려올 때도 있다. 그러나 거대한 교향곡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불협화음은 다음 장의 찬란한 전조(轉調)를 위한 필수적인 장치일 뿐이다. 우주는 결코 당신의 연주를 홀로 두지 않으며, 모든 존재와 어우러지는 웅장한 화음으로 당신을 감싸 안는다.


내가 청소를 할 때, 설거지를 할 때 힘들지 않고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리듬을 타고 하는 것이다. 리듬이 깨지면 힘이 들어간다. 리듬을 타면 물 흐르듯 청소와 설거지가 자연스럽고 쉽게 이어진다. 운전도 마찬가지이고 일도 마찬가지이다. 리듬이 깨지면 그 때부터 힘들어진다.


또한 하루의 시작이나 하루를 마치는 때에 잠간이라도 '모든 소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더 이상 거슬리지 않는 상태로 하루 전체가 공명으로 빠짐없이 전환될 수 있도록' 명상과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오늘 퇴근길에 잠시 이어폰을 빼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길 바란다. 바람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 멀리서 들리는 기적 소리... 그 모든 소음의 밑바닥에 흐르는 고요한 저음을 느껴 보라.


그것은 우주가 기초를 세운 리듬이며, 그 위를 수놓는 당신이라는 선율이고, 우리 모두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거대한 화성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을 단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근원의 연주이다.

당신은 그 연주에 맞추어 생(生)이라는 무대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는 주인공이다.

음악은 분리된 개인이 우주의 리듬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대자연의 모든 소리와 고요함은 당신을 단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근원(根源)의 연주(演奏)이다."

(2026.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