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18

죽음은 없다, 늙어감은 빛으로의 귀환이다

by 전영칠



18화: 죽음은 없다, 늙어감은 빛으로의 귀환이다



1.

내가 20대 후반에 후배들 몇몇과 방 5개짜리 2층 개인주택에서 낮에는 각자의 생활대로 살다가 저녁 때는 성경공부를 함께 하던 때의 일이다. 전세비용을 나누어 마련한 주택으로 이사 온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내 방은 2층에 있었다.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려고 방에 누워 잠이 들까 할 무렵, 비몽사몽간에 내 머리 옆에 50대 초반 아주머니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분명하게 그 아주머니가 보였다. 평범한 웃옷에 몸빼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누구지? 왜 내 옆에 서있지? 그러면서 내가 눈을 감고 있는데?라는 생각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어 나는 내 앞에서 떠나 달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 대화는 텔레파시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녀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습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내가 자꾸 '이곳에서 나가라'라고 계속 말하자 그녀는 마침내 내 곁은 떠나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아쉬운 모습으로 등을 돌렸다. 문은 우측에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문쪽으로 가지 않고 그대로 직진해 벽을 통과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 후배들이 있는 방을 두드려 방금 어떤 아주머니를 보지 못했는가를 물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했고, 오히려 내가 꿈꾼 것 아닌 가고 묻기도 했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경이었다. 분명히 꿈은 아니었고, '사실'이었다.

그 후에 본격적인 '영성(靈性)의 세계'에 대한 공부와 경험을 통해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1) 인간은 육신(肉身)으로 지상에서 100여 년을 살고, 육신은 죽음이라는 형식(사망)을 통해 육신에 함께 거하던 영신(靈身 / 靈魂이라고도 함)으로 또 다른 세계인 영계에서 살게 된다. 영신은 죽음이 없다.

2) 영신은 육신과 똑 같이 생겼다. 육신에서 살던 그대로의 인격이 있다.

3)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 동장이나 이장이 있듯, 영계도 마친가지의 기본 조직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는 지상에서 어떤 인연으로 관련된 영신이 있는 경우가 많다.(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텃신'이라 했다). 그런 '텃신'들은 핸드폰 대신, 신의 세계 '중계(꿈, 영감, 비몽사몽, 스치는 생각 등)'를 통해 집에서 사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협조한다. 일종의 수호신 역할이다.

4) 텃신은 텃신의 부분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그 것은 '신'이 내게 해주고 싶은 내용을 '중계'해주는 중계탑 역할이다.

5) 새로 이사 온 곳에서 '텃신'이 나타나는 것은 나를 협조하기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거나, 이루지 못한 것을 부탁하기 위함이다.

6) 그런데 이런 원리를 모르고 '텃신'을 쫓아내고 대화를 거부하면 복이 화가 된다. 텃신이 중계해 주는 신의 가호를 막아버리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텃신이 부탁하는 내용을 해결해주면 텃신은 반드시 보답한다.


이 일후에 함께 있던 주택과 후배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 몇 달 만에 이 공동체는 와해되고 나는 그 집을 나오고 말았다.


과연 이런 것이 있을까? 육신이 전부이지 영계, 영혼은 다 뭐야?라는 분들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면서 이 세상을 사는 것은 분명 아니다. 영혼을 부정하는 분들은 천천히 살면서 알아보면 된다.




2.

거울 속의 장년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적당한 주름의 골짜기가 내 생의 길이를 더 정직하게 말해준다. 젊은 날의 육체는 단단한 성벽 같았다. 무엇이든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았고, 이 몸이 곧 ‘나’라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육신은 서서히 나이에 대한 표를 보인다. 사람들은 이것을 '쇠락'이라 부르지만, 나는 이제 이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것은 '투명해짐'이다.


며칠 전, 내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가끔씩 만나는 팔순 후반의 노인을 만났다. 굽은 등에 의지해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미래를 본다. 나이를 먹고 걸음이 더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몇 달 전 8층에 살던 40대가 스스로 투신해 사망했다. 단 한마디 말을 섞은 적은 없었지만 그도 한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던 이웃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탄 노인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깨닫는다. 육체라는 것은 결코 영원한 집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이 이 지상이라는 학교를 잠시 다니기 위해 빌려 입은 외투이자, 우주적 의식이 잠시 머물다 가는 성전일 뿐이다. 그러나 외투가 낡았다고 해서 그 안의 주인이 낡은 것은 아니다. 성전의 기둥에 금이 가고 단청이 바랜다고 해서 그 안에 깃든 신성이 훼손되는 것 또한 아니다.


우리는 평생 이 육체를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근육이 빠지고 기력이 쇠하는 것을 마치 존재 자체가 소멸해 가는 비극으로 받아들인다. 육체적 상실감은 우리를 우울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우울증, 조울증 등 다양한 질병으로 오기도 한다. 질병이 깊어지고 거기에 죽음의 공포가 겹처져 자살을 하기도 한다.

영계와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공부하고 체험해 우리는 한시라도 이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야 한다.

사실 그것은 돈 버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다.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영성적 시각에서 노화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육체의 밀도가 낮아지는 과정이다.

젊은 시절의 육체는 견고하고 빽빽해서 내면의 빛이 밖으로 새어 나오기 어렵다. 자아라는 외벽이 너무 두껍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육체의 물질성이 점차 옅어지면, 비로소 그 틈새로 영혼의 빛이 투과되기 시작한다.

노년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형언할 수 없는 평온함이나, 깊은 눈동자 속에 담긴 우주적인 고요함은 바로 그 빛의 증거이다. 육체가 허물어질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빛의 존재'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육체는 우주가 우리에게 준 가장 정교한 선물이다. 우리는 이 몸을 통해 사랑을 나누고, 고통을 느끼며, 대지의 질감을 만끽한다. 그러니 낡아가는 몸을 가여워하거나 미워할 필요가 없다. 낡은 옷은 그만큼 우리가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았다는 훈장이다. 옷감이 얇아져 속이 비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옷 너머의 본질을 본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끝'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하지만, 그것은 육체라는 무거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원래의 빛으로 돌아가는 귀환의 과정일 뿐이다. 40대에 떠난 아파트의 그 남성도, 지금 내 곁에서 숨을 고르는 80세의 노인도, 그리고 우리들도 결국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단지 외투를 벗는 시점과 방식이 다를 뿐이다.


나는 거울을 보며 내 몸에 새겨진 흔적들을 살펴본다. 눈가의 잔주름은 내가 지었던 수많은 웃음의 기록이고, 이마의 깊은 주름은 내가 견뎌온 고뇌와 인내의 흔적이다. 주름은 우주가 내 몸에 새긴 삶의 지도이자, 본향으로 돌아가는 이정표이다. 이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육체라는 성전의 문을 열고, 찬란한 빛의 바다로 흘러 들어갈 날이 올 것이다.


상실감에 젖어 있는 동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무릎이 아픈 것은 지상의 중력을 그만큼 오랫동안 견뎌냈다는 거룩한 증거이며, 당신의 눈이 침침해지는 것은 이제 겉모습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우주의 배려이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투명해지고 있다. 육체의 밀도를 덜어내고 영혼의 무게를 늘려가는 이 과정이야말로 생의 가장 아름다운 절정이다. 몸이라는 성전이 낡아갈수록 그 안에서 타오르는 등불(영혼)은 더욱 선명해진다. 늙어감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한 빛으로 돌아가기 위한 장엄한 준비이자, 우주적 의식과의 재회를 앞둔 설레는 기다림이다.


오늘도 나는 나이 들어가는 나의 성전을 여전히 사랑하며,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빛을 즐긴다. 돌아갈 새로운 집을 알려주는 몸의 신호들을 감사히 받아들인다. 나는 너를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는 신의 음성이, 이 낡은 육체의 골조 사이로 바람처럼 부드럽게 감돌고 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흙'은 118가지의 원소이고 '생령'은 영혼이다. 신은 오랜 시간 동안 진화적 창조를 거쳐 우리 육신을 만들었다. 우리 육신이 태어날 때 신으로부터 준비된 '생기(영혼)'가 '코(육신 정수리)'에 부여되어 우리는 비로소 영육 아우른 만물의 영장이 되어 태어나는 것이다. 태몽이란 영혼을 탄생시킨 신이 알려주는 것으로, 장차 이 아이가 지상에서 해야 할 사명(일)이 그 꿈에 숨어 있다.

죽음은 없다. 죽음이라는 형식만 있을 뿐이다. 우리들은 신은 자식이다. 자식은 부모를 닮기 마련이다.

신은 빛으로 존재한다. 육신은 죽음이라는 형식을 통해 땅으로 가고, 그 속에 숨어있던 영신(영혼)은 점점 빛을 닮아 간다.


생(生)이란 점점 신(神)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2026.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