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미송숲의 어머니 나무(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연안- 수령백년)
가이아(Gaia)는 본래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을 뜻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지구가 생물과 무생물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를 조절하는 하나의 거대한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가이아 가설’을 의미한다. 이 정의를 가슴에 품고 강화의 갯벌에 서면, 풍경은 단순한 자연을 넘어 내 몸의 확장으로 다가온다.
강화도 전등사 뒷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아래로는 아득한 갯벌이 펼쳐지고 시선 끝에는 염하(鹽河)의 줄기가 흐른다. 바다와 강이 만나 소용돌이치는 그 물길은 마치 가이아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혈관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흔히 피부를 '나'와 '타자'를 가르는 절대적인 경계선이라 믿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 경계는 지극히 허술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공기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과 물질을 교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하며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주인공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의 산림 생태학자 수잔 시마드다. 그녀는 숲이 단순히 나무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자원을 나누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공동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냈다.
이러한 '생태적 합일'은 이제 시적 상상력을 넘어 과학적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다. 산림 생태학자 수잔 시마드는 숲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수치로 밝혔다.
수잔 시마드의 핵심 주장은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1997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숲속의 나무들이 지하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균근(곰팡이와 뿌리의 공생체)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나무들은 이 네트워크를 통해 탄소, 질소, 물, 그리고 위험 신호까지 주고받는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그늘에 가려 성장이 더딘 어린나무에게 영양분을 보내주는 식이다.
숲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는 네트워크의 중심 허브 역할을 한다. 시마드는 이를 '어머니 나무'라고 불렀다. 어머니 나무는 자신의 유전자를 공유한 어린나무(자식 나무)를 식별하며, 이들에게 더 많은 영양분을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뿌리가 뻗어 나갈 공간을 마련해 준다.
과거의 생물학은 나무들이 햇빛과 양분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만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시마드는 나무들이 서로 '협력'함으로써 숲 전체의 회복력을 높이고 생태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녀의 연구 인생과 철학이 집대성된 저서는 2021년 출간된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부제: 숲의 지혜를 발견하다)이다.
이 책의 주요내용은 벌목공 집안에서 자란 저자가 숲의 신비에 의문을 품고 과학자로 성장하는 과정, 숲속 네트워크를 발견하기까지의 치열한 실험 과정, 그리고 암 투병 중 깨달은 생명의 순환을 다룬다.
수잔 시마드의 연구팀이 북미의 더글라스 퍼 숲을 조사했을 때, 결과는 경이로웠다. 30m × 30m 정도의 작은 구역 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단 한 그루의 '어머니 나무'가 무려 47그루의 다른 나무들과 지하로 연결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해당 구역 내 나무의 80% 이상이 하나의 망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어머니 나무는 자식 나무를 식별하여 영양분을 우선 공급하고 자신의 뿌리 공간을 양보하며 살고 있음이 확인 되었다. 또한 정보 전달자로써 균근(곰팡이와 뿌리의 공생체) 네트워크를 통해 탄소, 질소, 물 및 위험 신호를 실시간 공유했다.
어머니 나무는 이 지하 고속도로를 통해 매초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전송한다. 숲은 철저한 적자생존의 전쟁터가 아니라, 수천 개의 노드(Node : 거대한 전체 시스템 내에서 데이터나 흐름이 모이고 나뉘는 '연결점')가 촘촘히 얽혀 서로를 돌보는 사회적 공동체인 것이다.
실제로 수잔 시마드가 발견한 숲의 네트워크는 인간의 뇌 구조나 인터넷 망의 연결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나무들은 '균근'이라는 신경망을 통해 위험 신호를 초당 수 밀리미터의 속도로 전달한다. 한 나무가 해충의 공격을 받으면 그 신호는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번지며, 주변 나무들은 즉시 방어 물질을 만들어낸다.
- 미국 오리건주립대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이어진 연구를 통해 는 수잔 시마드는 나무들이 땅속 경로 체계로 연결돼 거미줄처럼 얽힌 채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뜻하지 않게 균근균을 죽이면 나무도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나무를 되살려 내는 진균(眞菌·fungus) 연결 고리의 원천은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었다. 이 크고 오래된 나무들은 모든 이웃을 연결한다.
[출처:중앙일보]
내가 숲에 서서 내뱉는 숨 역시 이 거대한 데이터 전송의 일부다. 내가 내뱉은 이산화탄소를 어머니 나무가 마시고, 나무가 광합성을 통해 내어놓은 산소를 내가 마신다. 식물의 광합성과 인간의 호흡은 하나의 유기적인 연주다. 수잔 시마드의 데이터를 빌려 말하자면, 나의 폐는 저 숲의 나뭇잎들까지 연장되어 있으며, 나의 생존은 숲의 지하 네트워크와 실시간으로 동기화되어 있다.
영화 아바타 영혼의 나무
이 지점에서 영화 <아바타> 속 그레이스 박사의 대사는 더 이상 SF적 상상이 아닌 과학적 예견이 된다. 판도라의 숲을 보며 그녀는 외쳤다.
"나무들 사이의 전기적 신호가 인간 뇌의 시냅스보다 훨씬 많아. 이건 거대한 신경망이야!"
실제로 숲의 네트워크는 인간의 뇌 구조나 인터넷 망의 연결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한 나무가 해충의 공격을 받으면 그 신호는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번지며, 주변 나무들은 즉시 방어 물질을 만들어낸다.
내가 숲에 서서 내뱉는 숨 역시 이 거대한 데이터 전송의 일부다. 내가 내뱉은 이산화탄소를 어머니 나무가 마시고, 나무가 광합성을 통해 내어놓은 산소를 내가 마신다. 식물의 광합성과 인간의 호흡은 하나의 유기적인 연주다. 나의 폐는 저 숲의 나뭇잎들까지 연장되어 있으며, 나의 생존은 숲의 지하 네트워크와 실시간으로 동기화되어 있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보호받는 나무의 숫자는 천연기념물 (식물) 약 170여 건과 보호수 약 13,850여 그루가 있다. 이들중 다수가 '어머니 나무급'에 해당하는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을 포함해 전국 산천의 '어머니 나무들'은 작게는 마을과 읍을, 크게는 한반도를 자연적 생명력으로 네트워크화 한다.
우리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치가 증명하듯,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자기 방어'다. 네트워크의 한 노드가 파괴되면 전체 망의 효율이 떨어지듯, 숲의 파괴는 곧 인간 지각 시스템의 마비를 의미한다.
"숲에 서면 알게 된다. 내가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숲이 나를 통해 스스로를 보고 있음을."
나는 숲이라는 거대한 의식이 세상을 지각하기 위해 내어놓은 감각기관 중 하나다. 내가 느끼는 평온함은 80%의 나무가 연결되어 안정을 유지하는 숲의 항상성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단절된 적이 없으며, 오직 가이아라는 거대한 숨결 안에서 함께 출렁이고 있다.
이 연재의 제목처럼, 숲과 대지는 단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다. 우리가 스스로를 고립된 섬이라 착각하며 문을 걸어 잠갔을 때조차, 어머니 나무는 지하 47개의 연결고리를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생명의 양분을 보내주었다. 우리가 내뱉은 독한 숨을 기꺼이 받아들여 정화된 공기로 되돌려주었다.
가이아의 숨결은 지금도 내 혈관을 타고 흐른다. 내가 들이마시는 이 한 모금의 공기에는 숲의 지혜와 수천 년을 버틴 어머니 나무의 인내심이 담겨 있다. 나무와 나는 오늘 한 호흡으로 묶여 있다. 이 명징한 수치와 과학적 사실 앞에서, 나는 비로소 안심하고 자연이라는 거대한 품에 몸을 맡긴다.
수잔 시마드가 발견한 '47개의 연결고리'처럼, 당신도 오늘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게 생명의 신호를 보내보았는가? 숲을 걷고 나무를 보며, 우리는 이미 그들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큰위로가 된다.
루이 플리카타 어머니 나무에 기대 앉은 수잔 시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