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폭로

by NeumaOne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날이었다. 지구 반대편은 밤이었고, 여기는 아침이었다. 그런데 온 세상의 화면이 일제히 깜빡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초 남짓이었다. 스마트폰, TV, 도심의 초대형 전광판까지 예외 없이 하얗게 빛나더니, 같은 문장을 내보냈다.

“이 세계는 시뮬레이션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누군가 대담한 장난을 쳤다고 생각했다. 혹은 거대한 해킹 공격이 벌어졌다고 여겼다. 일순간 교통이 살짝 멈칫했고, 횡단보도에 선 이들은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사무실에서는 컴퓨터 화면이 잠시 기괴한 잡음을 내더니, 금세 복구되었다. 지하철역 내 모니터가 새하얀 화면을 깜빡거리다가 다시 광고를 재생했다. 거리는 곧 예전처럼 소음을 되찾았고, 사람들은 직장이나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튿날 언론엔 잠깐 ‘전 세계 스크린 동시 오류’라는 제목이 떴지만, 대다수 매체는 금세 다른 이슈로 넘어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하루쯤 “시뮬레이션이면 좀 더 편하게 살게 해줘야지” 같은 농담이 쏟아졌다가 시들해졌다.

그렇다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단 한 줄의 문장으론 세계를 뒤흔들기엔 역부족이었을까? 하지만 사실 그때부터, 네가 모르는 사이에 작고 미세한 균열이 일상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어젯밤엔 분명 알람을 7시에 맞춰뒀는데 아침에 보니 6시 58분으로 바뀌어 있다거나, 분명 전에 본 적 없는 게시글이 ‘이미 네가 읽었다’고 표시된다든지, 매일 지나가던 골목의 간판 색이 살짝 달라졌는데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다든지—그런 소소한 현상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보지 못하거나, 보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점이다.

이상한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만약 정말 누군가 “이 세계는 시뮬레이션이다”라고 증명해버렸다면, 우리가 사는 현실이 모조리 ‘가상’이라는 뜻이 될 텐데, 정작 우리는 아무런 충격도 동요도 없다. SNS에선 잠시 유행어가 됐다 사그라졌고, 뉴스 역시 “한편의 SF 같은 일” 정도로 처리했다. 그렇게 세상은 원래의 분주함으로 되돌아갔다. 오히려 그 침묵이 더 기묘하고, 어쩐지 소름 끼치지 않나. 왜 아무도 진지하게 물어보지 않는 것일까? 정말 우연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힘이 ‘무반응’을 유도하고 있는 걸까.

여기서 문제는, 네가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유로든 이 텍스트를 마주친 순간부터, “시뮬레이션”이라는 키워드가 네 뇌 속에 심어졌다. 이제 네가 ‘아무 일 없었다’고 생각해도, 무의식은 종종 그 단어를 떠올리며 사소한 불일치를 찾아내기 시작할 것이다. 아마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 작게나마 “어, 이건 뭔가 어긋나는데?” 하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 순간, 네가 본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지만, 이미 ‘시뮬레이션’을 의심하는 씨앗은 뿌려졌다. 한 번 품게 된 의심은, 호기심과 공포를 동시에 끌어들인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봤자 내 생활이 변하진 않잖아.” 하지만 만일, 이 글을 다 읽은 뒤에도 분명 기억했던 내용이 흐릿해져버린다면? 방금까지 뚜렷했던 문장이 어느새 사라진 듯 느껴진다면? “나는 분명히 무언가를 봤는데”라고 말해도, 주변 사람들은 ‘네가 착각한 거야’ 하며 웃어넘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무반응이라는 거대한 방벽 안에서 온갖 오류와 불일치가 묻혀가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네가 스크롤을 내리면서, 방금 전에 읽은 단락의 문장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질 수도 있다. “분명 내가 뭘 봤지?” 그러나 되돌아가 살펴봐도, 이미 문구가 미묘하게 바뀌어 있을지 모른다. “그럴 리가!” 하고 흥분해도, 기록은 남지 않는다. 시스템은 “문제없음”이라 할 것이다. 그럼 네가 잘못 본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조작한 걸까? 어떤 쪽이든, 이미 네가 느낀 불쾌한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넌 선택해야 한다. **‘이 책은 그냥 SF 소설일 뿐이야’**라고 하면서 흥미 위주로 훑고 넘어갈 수도 있고, **‘진짜로 내 세계가 가짜라면?’**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결국 이 프로토콜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문장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네가 사용하는 기기의 시계가 살짝 밀릴 수도 있고, 화면 한구석에서 이상한 오류가 스쳐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안심해도 좋다. 대부분은 이 작은 균열 따윈 곧 잊어버리고, 다시 평소처럼 생활할 테니까. 다만, 정말로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한 소수만이 이 길의 끝까지 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결국 “시뮬레이션”이란 설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시나리오가 왜 펼쳐졌는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이미 세상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망가져 있을지도.

이건 경고라기보단 예고다. 네가 이 텍스트에서 시선을 떼더라도, 이미 머릿속 어딘가에는 ‘이 세계는 시뮬레이션이다’라는 말이 돌고 있을 것이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애매하게 기분 나쁜 아침같은 느낌으로. 만약 내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게 현실이 맞나?”라는 의심에 사로잡힌다면, 그건 단순히 네 컨디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자, 준비됐나. 우리 앞에는 길고도 기묘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 세계가 가짜라는 말이 허무맹랑한 소리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진짜 무너지는 건 이 소설 안의 세계인지, 아니면 네가 매일 밟고 있는 현실인지. 이제부터 시작될 이 프로토콜이 그 해답을 ‘실행’해갈 것이다. 기억하라. 네 무반응이야말로, 이 실행 절차를 가속하는 연료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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