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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실종 사건

추측이 일상에 미치는 부작용

by 최환규

몇 년 전 밤 12시가 지나도록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 난리가 난 일이 있었다. 평소 집에 도착할 시간인 11시쯤 딸아이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벨 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갑자기 중간에 끊어졌다. 이후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가입자의 사정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멘트만 들려왔다. 시간이 12시에 가까워지자 걱정은 더욱 커졌고, 급기야 밖에서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에 큰아이와 둘이 밖으로 나갔다. 한 사람은 버스 정거장에서, 한 사람은 지하철역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12시 20분쯤 마지막 지하철이 지나가도 딸아이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버스정거장에서 기다리던 큰아이와 합류한 다음 둘이서 “얘가 배고파 친구들과 군것질하느라 늦게 오는 거야.”라고 애써 합당한 이유를 스스로 찾았지만, 마음 한편은 불편함과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계속 시간이 흐르면서 “얘가 1시까지 버스에서 내리지 않으면 우리가 뭘 해야 하지?”라고 질문을 하면서 1시까지 기다렸지만 역시나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처음에는 ‘정말 오기만 해 봐라, 혼을 내주겠다.’라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제발 나타나기만 해 주라.’라는 생각으로 바뀌면서 화가 나던 마음이 걱정으로 인해 극도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파출소에 가서 실종신고를 해요.”라는 큰아이의 말에 “파출소에 가서 무슨 말을 해? 휴대폰이 켜져 있어야 신고를 하더라도 소재가 파악될 텐데 휴대폰이 꺼져있어 가능할까?”라며 초조한 상태로 계속 기다리던 중 집에서 전화가 왔다. “누나가 자기 방에서 자고 있다.”는 막내의 전화였다. 집에 돌아와 자기 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에 쓴웃음만 나왔다. 가족 모두가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 딸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이 사건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추측’이 문제를 크게 만든 원인이었다. ‘아이가 학원을 갔다’라는 가정 아래에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그다음 날 딸에게서 들은 얘기는 배가 아파 학원을 가지 않고 자기 방에 가서 잤다는 것이었다. 가족 모두는 딸아이가 집에 없을 것이라고 짐작해 딸아이 방을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밖에서만 걱정을 하고 있었다. 누나를 발견한 막내도 ‘설마 누나가 있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누나 방을 열었다가 자기도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추측’으로 인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문제 대부분은 상대방에 대한 추측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추측을 멈추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아마도 상대방과의 대화가 늘어날 것이다. 대화를 하지 않았을 때 ‘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는 걸 보니 OO가 틀림없어.’와 같이 추측하고, 그 추측이 사실이라고 가정을 한 다음 상대방에게 보일 반응을 결정한다.


추측하지 않으면 이유를 직접 그 사람에게 물어보게 된다.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렇게 상대방이 한 행동의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게 된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찾아 대책을 마련하게 된다. 이럴 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점검을 해야 하지만 점검할 항목이 많을수록 시간과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절약 차원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순으로 추측하게 된다. 이런 방법이 적중할 가능성도 크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문제의 원인이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설마 그게 원인이겠어?’라고 생각하면서 점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그 부분을 간과하게 된다. 이러면 다른 곳을 아무리 점검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게 되며 오히려 시간과 인력을 더 많이 낭비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처럼 추측은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추측의 부작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업무를 수행할 때 ‘사실’에 입각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담당자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만이 사실이다. 따라서 힘들고 귀찮더라도 머리로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직접 점검하게 되면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익숙해지면서 업무 효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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