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닥터’는 의사 신분으로 방송 매체에 빈번하게 출연하여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치료법이나 건강 기능 식품을 추천하는 일부 의사를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부 의사나 한의사들은 검증되지 않은 의학 지식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쇼닥터는 ‘의료인’이라고 하는 자신의 역할을 돈과 바꾼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쇼닥터와 같이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있다. 자주 언론에 기사화되는 군납 비리도 마찬가지이다. 금전적 이득을 위해 불량품을 납품받아 구속된 해군참모총장이나 국가보훈처장도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 지도층 중에는 자신의 개인적 이득을 위해 쇼닥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조직원들이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회사는 조직원에게 적정한 권한을 위임한다. 회사에서 조직원에게 권한을 위임할 때는 권한과 책임이 함께 주어진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권한만 받고 책임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위의 사례에서처럼 부하를 야단치는 상사는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리더의 역할 중 하나는 부하 육성이다. 부하가 고의적으로 회사나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면 상사는 부하를 야단치기보다는 부하를 도와주는 것부터 해야 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이 있다. 먼저 A부장의 사례이다. 서해안 관광지에서 부서의 조직 활성화를 위해 부하 한 사람에게 꽃게와 꽃게를 먹을 식당을 예약하라고 지시했다. A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른 B가 “부장님, 지시하신 대로 꽃게 예약을 마쳤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상사가 부하에게 “암게야? 수게야?”라고 되물었고 부하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상사의 입에서 부하를 향한 심한 욕이 튀어나왔다.
또 다른 C전무의 사례이다. 이 사람은 결재 서류에 연필로 결재를 했다. 부하들은 상사의 이런 태도를 보고만 있었다. 어느 날 문제가 일어났다. 자신이 결재한 일이 문제가 되자 그 서류를 다시 가져와 연필로 한 자신의 결재를 지운 것이었다. 상사의 이 모습을 본 부하는 부하대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결재를 받고 난 다음 모든 결재 서류 위에 테이프를 붙여 상사가 자신의 결재를 지우는 것을 사전에 방지했다.
이런 상사는 부하로부터 신뢰를 받기 어렵고 회사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사 A는 부하에게 화를 내기보다 자기반성부터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부하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사 중에는 A처럼 부하가 자신의 바람대로 업무가 흘러가지 않을 때 화를 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 상사는 ‘아무리 화를 내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상사 C의 경우 자신이 한 결재를 지우더라도 온전하게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조직의 리더는 조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문제가 발생하고 난 다음 ‘무능한 부하가 일으킨 문제이다’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상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이다.
상사 A와 C 모두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 부족이 문제이다. 상사 A는 자신의 지식을 미리 부하에게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부하가 자신의 의도대로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상사의 지나친 욕심이다. 물론 부하의 태도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상사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물어보았거나 상인에게 의견을 구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던 문제였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이 될 때 사람마다 반응하는 방법이 다르다. 첫째, ‘화를 내는 것’이다. 상사 A처럼 화내는 것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반응이다. 일반적으로 화를 낼 때 상대방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주려는 의도를 가지게 된다. 화를 내면 인간관계는 깨어지고 문제해결은 멀어지게 된다.
둘째, 책임 회피이다. 어찌 보면 화를 내는 것보다 더 나쁜 상사의 유형일 수 있다. 상사 C와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사와 함께 하는 부하는 상사를 믿지 못하게 된다. 매 순간 ‘상사가 책임을 나에게 돌리면 어쩌지?’라는 의심을 하면서 업무를 하게 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조직에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셋째, 화를 내면서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상사이다.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지?” 혹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이렇게 되었으니 책임져!”와 같이 말하는 상사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엄청난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반응으로 야기되는 더 큰 문제는 상사로부터 상처를 받은 부하는 상사로부터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급적 상사와 멀리 있기를 원한다. 여기서 말하는 거리에는 물리적 거리도 있지만 ‘심리적 거리’도 포함된다. 상사와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상사의 말에 일부러 귀를 막기도 하고, 상사와의 만남을 회피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상사와 부하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할 리가 없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위임한 권한 중에는 부하에 대한 ‘인격 살인’은 없다. 부하가 상사의 지시를 무시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 부하를 벌하는 정당한 방법이 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급여에 대한 불이익이다. 대부분의 회사는 평가를 통해 조직원의 연봉을 결정한다. 이때 부하의 과실에 따라 연봉을 올리거나 내리면 된다.
또 다른 방법은 회사의 규정에 따라 징계 절차를 밟아 징계를 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사는 부하에게 책임을 지라고 소리치면서도 징계까지는 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가 징계 대상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부하에게 욕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비겁한 행동인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조직원의 나쁜 태도 중 하나가 회사 밖의 사람에게 회사를 비난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적합한 속담으로 ‘누워서 침 뱉기’가 있다. 단순하게 자신의 지인에게 상사의 흉을 보는 정도는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와 관계없는 제삼자에게 회사를 공격하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형제간에 벌어진 일들은 최근 불거진 경영진의 경쟁 분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는 자신들의 역할을 망각했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조직원은 자신의 자리에서 조직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회사가 나에게 이렇게 해준다면......’과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나는 무능력하다’고 광고하는 것과 같다. 회사 외부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과 회사를 같게 생각하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 대해 비난할 시간과 에너지가 있으면 그 에너지를 가지고 회사의 발전에 기여할 방법을 찾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회사를 위해 도움이 되는 행동이다.
발전하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의 차이는 조직원들의 자기 역할에 대한 인식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조직이나 사람에 대한 비난은 언제든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직을 발전시키고 서로를 격려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료를 비난하는 대신 지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주변에 누가 있는지 둘러보라.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은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상사도 마찬가지이다. 상사는 부하를 자신의 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상사가 부하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부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면 동료와 대화하는 태도나 방법이 달라진다. 첫째, 대화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형식적인 대화로 일관하게 된다.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보다는 업무적인 내용으로 한정하게 된다. 엄밀히 말해 이런 대화는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 없다. 반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면 대화의 양뿐만 아니라 대화의 질이 높아진다. 조직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질 높은 대화가 필요하다.
둘째, 시의적절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자신이 가진 업무 관련 정보를 동료와 공유하거나 동료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동료와의 개인적인 호불호가 아니라 회사의 발전을 위하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셋째, 정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대화는 말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내 말을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다. 상대방에게 호감이 없으면 ‘그저 전달하는 것’으로 끝내기 쉽다. 이런 대화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제대로 된 대화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가 된다. 조직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인 ‘업무에 도움이 되는 대화’이어야 한다. 쉽게 말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대화일 필요가 있다. 상사가 부하에게 인격살인을 하는 것은 회사의 발전과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직원은 회사의 가장 큰 자원이다. 조직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아낄 때 조직원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이런 조직 분위기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그 조직은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