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상호성이 위험한 이유는?

by 최환규

인간관계는 정서적 교감, 신뢰, 공감 그리고 자발적인 상호성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다. 하지만 이 관계의 영역에 돈과 같은 조건부 대가가 개입되면 인간관계의 순수성은 퇴색하고 여러 부작용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게 된다. 특히 돈은 만능의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관계 속에서는 종종 가장 강력한 독이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인간관계는 물물교환처럼 명확한 대가나 조건을 전제하기보다는 계산적이지 않은 상호작용과 감정의 공유를 기반으로 맺어진다. ‘너라서 좋아’, ‘그냥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와 같은 조건 없는 마음들이 관계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의사나 법관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대상으로 ‘마담뚜’가 조건을 내걸고 중매를 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인간관계의 본질적 특성을 외면하고 ‘조건부 상호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따뜻한 유대 대신 차가운 계산과 실망만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관계는 서로의 내면을 갉아먹고, 관계 자체의 생명력을 위협하게 된다.


조건부 상호성의 가장 큰 부작용은 관계의 본질적 가치를 상실시키고 거래 관계로 변질시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용돈을 올려주겠다”라는 부모-자녀 관계를 보자. 부모의 말은 자녀에게 ‘용돈을 결정하는 것은 너의 존재 자체나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너의 성과다’라는 메시지로 전달된다. 자녀가 공부하는 이유는 공부 자체가 아니라 용돈이라는 보상 때문인 것이 된다. 자녀는 공부를 공부 자체의 즐거움이나 자기 계발이라는 내재적 동기보다는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게 된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앞둔 사람이 “집을 마련하면 결혼하겠다”라고 말했다면 사랑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집이라는 물질적 조건에 종속된 결과이다. 이런 결과는 결혼의 본질인 상호 존중, 사랑, 동반자로서의 신뢰와 헌신보다는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변질한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조건이 맺어준 관계가 된다.

인간관계는 때때로 가면무도회와 같다. 특히 상대의 인정이나 사랑을 갈구할 때 ‘진정한 나’보다는 상대가 좋아할 만한 ‘조건화된 나’를 보여주려 애쓴다. 조건화된 상대와의 관계는 겉으로는 평화롭고 원만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면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소진하는 고통이 숨어있다.


조건부 상호성은 관계 내에서 진정한 신뢰를 쌓기 어렵게 만든다. 상대의 행동이나 표현이 과연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인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너는 나를 사랑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가진 것을 얻기 위해서 이러는 건가?’라는 의심은 진정한 마음을 주고받기 어려운 관계로 만든다. 관계 당사자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연의 모습과 감정을 숨기게 된다. 자신의 약점이나 솔직한 생각은 조건 충족에 방해가 될 수 있기에 숨기고, 끊임없이 상대가 원하는 조건화된 자신을 보여주려 애쓴다. 서로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관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조건화된 나’의 가장 흔한 사례로 결혼식이 있다. 결혼을 앞둔 A가 있다. A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상대 가족에게 안정적이고 능력 있는 배우자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고가의 예물을 준비했다. 무리해 상대와 결혼에 골인한다 해도 결혼 생활 내내 조건화된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부담에 시달려야 한다. 언젠가 진실이 드러나면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신뢰의 손상을 입게 되고, ‘진정한 나’가 아닌 ‘조건화된 나’를 사랑했던 상대와의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상대와의 조건화된 관계의 본질은 ‘내가 너의 기대에 맞추어 주어야만 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어’라는 잘못된 전제에 있다. 상대와 관계를 맺는 동안 한쪽은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의 진짜 모습을 알아볼 기회를 잃게 된다. 조건화된 자신을 보여주는 관계는 어느 한쪽에게도 진정한 만족감이나 행복을 줄 수 없게 되면서 결국은 고갈과 불신 그리고 파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조건이 개입된 관계에서는 ‘상대를 만족해야 한다’라는 심리적 압박과 ‘상대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용돈을 받을 수 있는 자녀는 성적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고, 집을 마련해야 결혼할 수 있는 연인은 경제적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조건 충족으로 인한 압박감은 관계를 즐기거나 안정감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지속적인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다. 만약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관계는 쉽게 흔들리거나 깨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순간 깊은 좌절감과 자존감 하락을 안겨준다.


조건부 상호성은 개인의 내재적 동기를 약화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 자녀가 부모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용돈이라는 외적 보상 때문에 공부한다면, 그 공부는 재미없고 의무적인 행위가 된다. 보상이 사라지면 공부도 멈추는 것이다.


조건이 개입된 관계는 갈등의 씨앗을 품고 있다.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실망감과 비난 혹은 조건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추가적인 조건을 내걸 때의 배신감 등이 두 사람의 관계를 서서히 잠식해 나간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순간 관계는 단절될 위기에 처한다. 조건화된 관계는 문제 해결보다는 조건 재협상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진정한 의미의 갈등 해결로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 조건부 상호성은 관계를 지속시키는 긍정적인 힘이 아니라 관계를 끊어내는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조건화된 관계의 본질은 ‘내가 너의 기대에 맞추어 주어야만 이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라는 전제에 있다. 이 과정에서 한쪽은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의 진짜 모습을 알아볼 기회를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조건화된 자신을 보여주는 관계는 어느 한쪽에게도 진정한 만족감이나 행복을 줄 수 없으며, 결국은 고갈과 불신, 그리고 파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인간관계에서 돈이나 물질적인 조건이 개입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은 상호성이 가진 마음의 교환이 아닌 이해관계의 교환으로 변질한 데서 비롯된다. 진정한 사랑, 존중 그리고 유대감은 결코 조건으로 살 수 없다. 조건부 상호성의 덫에 빠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위한 길인 것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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