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낡은 전단지 뒤에 숨겨진 진심
센터로 돌아온 도혁의 손에는 작은 노란색 천 조각이 들려 있었다. 정민은 조심스럽게 고무장갑을 끼고 도혁이 건넨 조각을 받아들었다. 진료실의 밝은 조명 아래 펼쳐진 그것은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듯 끝이 올풀려 있었다.
“별무늬네요… 요즘 유행하는 세련된 디자인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참 흔하면서도 정겨운 무늬였죠.”
옆에서 지켜보던 수의사 강 원장이 돋보기를 고쳐 쓰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평생을 말 못 하는 짐승들과 보낸 사람 특유의 뭉툭하고 따뜻한 손길로 조각을 살폈다.
“단순히 낡은 게 아니야. 햇빛에 오래 노출되어 색이 날아갔고, 안쪽 섬유가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늘어나 있어. 이건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도 목줄을 한 번도 풀지 못했다는 뜻이지.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와의 연결고리를 목에 걸고 버텨온 거야.”
도혁은 문가에 얌전히 앉아 안쪽을 응시하는 하루를 보았다. 하루는 그 조각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슬픈 기색도 없이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저건 내 것이었다’는 주장보다, ‘저걸 하고 있을 때 나는 사랑받았다’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는 것처럼 보였다.
“목 주변의 털이 유독 짧고 흉터가 남은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뒤에도 이 목줄을 가족과의 마지막 약속처럼 붙들고 있었나 보네요.”
강 원장의 씁쓸한 목소리에 도혁의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그날 오후, 도혁은 하루가 발견되었던 골목길 주변을 다시 찾았다.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왠지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주민센터 앞 게시판, 편의점 구석, 그리고 아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문구점 유리창까지. 도혁의 시선은 낡은 종이 한 장에 멈춰 섰다.
이미 수없이 덧붙여진 홍보 전단지들 사이에서, 테이프가 누렇게 변해 너덜거리는 종이 한 장이 위태롭게 붙어 있었다.
[실종] 우리 집 강아지를 찾습니다.
반 년 전의 날짜였다. 비바람에 씻겨 내려간 연락처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사진 속 강아지만은 선명했다. 깨끗하게 관리된 하얀 털, 장난기 가득한 눈매, 그리고 살짝 접힌 귀끝. 사진 속 아이는 지금의 고단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루… 맞구나.”
사진 속 아이의 목에는 주머니 속 조각과 똑같은 노란 별무늬 목줄이 걸려 있었다. 그 순간, 문구점의 낡은 종이 울리며 사장님이 밖으로 나왔다.
“아이구, 총각. 그 전단지를 왜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어? 그거 벌써 한참 된 건데.”
도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사장님, 혹시 이 강아지 기억하세요?”
사장님은 안경을 고쳐 쓰며 전단지를 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억하고말고.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애지중지 키우던 애였어.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하셔도 이 녀석 산책은 꼭 시키셨거든. 녀석도 참 영특해서 할머니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곤 했지. 근데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요양원으로 가시는 바람에… 가족들이 챙긴다더니 그 난리 중에 길을 잃었나 봐.”
도혁은 전단지 귀퉁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할머니는 지금 어디 계신가요?”
“글쎄, 요양원에 계시다가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근처 큰 병원으로 옮기셨다는데, 그 병원도 경영이 어려워서 문을 닫네 마네 하더라고. 그래서 전단지를 붙이던 조카도 이제는 안 보이네. 참, 사람 팔자나 개 팔자나 안쓰러워 죽겠어.”
도혁은 전단지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종이가 찢어질까 봐 손톱 끝으로 테이프 자국을 살살 긁어내며, 그는 이 종이가 가진 무게를 실감했다. 센터로 돌아오는 길, 전단지 속 하루의 배경을 유심히 살피던 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루가 앉아 있는 등 뒤로 낡은 간판의 일부분이 찍혀 있었다.
[……동물병원]
글자가 반쯤 잘려 있었지만, 그곳은 지금 자신이 하루를 데리고 있는 강 원장의 센터에서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그날 밤, 센터의 불이 꺼지고 정적이 찾아왔다. 거실 한쪽 담요 위에서 잠든 줄 알았던 하루가 몸을 떨며 낮게 낑낑거렸다. 도혁이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자, 하루는 잠결에도 도혁의 손바닥에 얼굴을 부비며 그의 발목 뒤로 파고들었다. 마치 다시는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몸짓 같았다.
도혁은 하루를 달래주다 우연히 탁자 위에 놓인 강 원장의 서류 가방 옆에서 떨어진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붉은색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행정 문서였다.
[시설 폐쇄 및 부지 인도 명령 통지서]
“이게 무슨…”
도혁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강 원장이 낮에 왜 그렇게 어두운 표정으로 하루를 바라봤는지, 왜 목줄 조각을 보며 ‘소중한 증표’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하루가 겨우 마음을 붙인 이 센터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창밖으로 겨울밤의 차가운 안개가 짙게 깔리고 있었다. 하루의 유일한 안식처가 된 이 낡은 병원이 사라진다면, 이 아이는 또다시 그 차가운 골목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도혁은 잠든 하루의 등을 토닥이며, 밀려오는 막막함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