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소설
2화. 노란목줄조각
하루는 도혁의 집 현관에서 멈췄다. 문턱 앞에서 앞발만 살짝 들고, 공기를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뒤, 고개를 돌려 도혁을 봤다. “여기…안전해?”라고 묻는 눈.
도혁은 신발을 벗고 조용히 말했다. “안전해.적어도오늘은.”
거실은 넓지 않았다. 작업테이블이 있고, 스케치북이 쌓여 있고, 바닥엔 종이상자가 몇 개 굴러다녔다. 도혁은 급히 상자를 밀어 벽으로 붙였다.
하루는 천천히 들어와 바닥을 살폈다. 발바닥이 닿는 느낌을 하나하나 확인하듯이. 그리고 소파 옆에 깔아둔 담요 위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앉았지만, 몸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정민이 말했던 “밤새잠못자요”라는 말이 떠올랐다.
도혁은 물그릇을 놓고, 간식을 꺼냈다. 손에 쥐고 흔들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놓고, 한 발 물러섰다.
하루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 간식을 물었다. 물고는 돌아서서, 담요 위에 다시 앉아 씹었다.
도혁은 그 모습을 보고 알았다. 하루는 ‘먹는순간’에도 경계를 놓지 않는다. 먹는 건 생존이니까.
밤이 오자, 집 안의 소리들은 더 크게 들렸다. 냉장고 모터가 돌 때의 웅— 하는 소리, 멀리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의 진동, 창밖에서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날카로운 엔진음.
하루는 그때마다 귀를 세웠다. 눈꺼풀이 내려가려다가도, 작은 소리에 다시 번쩍 떠졌다.
도혁은 TV를 켜지 않았다. 음악도 틀지 않았다. 대신 주방등만 켜고, 작은 스탠드 불빛으로 거실을 덮었다.
“하루야.여기선…아무도너를찾아오지않아.”
말을 하는 자신이 낯설었지만, 도혁은 계속 말했다. 길게, 조용히, 마치 스스로에게도 말하듯이.
새벽 두 시쯤, 도혁이 물 한 모금을 마시러 일어났을 때, 하루는 담요 위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그런데도 완전히 잠들지는 못했다. 눈이 반쯤 떠 있었다.
도혁은 담요 옆 바닥에 앉아, 손바닥을 바닥에 댔다.
“내가여기있어.”
하루의 눈이 잠깐 도혁의 손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눈꺼풀이 내려갔다.
그 순간 도혁은 가슴 한쪽이 살짝 내려앉는 걸 느꼈다. 오래된 긴장도, 사람에게서 도망치던 습관도, 잠깐 숨을 쉬는 느낌.
아침 산책은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도혁은 가장 조용한 시간대를 골랐다. 해가 완전히 뜨기 전, 사람도 차도 적은 시간. 하루의 목줄은 새로 샀다. 너무 튀지 않는 회색. 하네스는 몸을 조이지 않는 걸로.
하루는 처음엔 줄을 싫어했다. 하네스를 채우려는 순간 몸을 굳혔고, 숨이 빨라졌다. 도혁은 멈췄다.
“미안.천천히.”
손을 내려놓고, 간식을 하나 바닥에 두었다. 하루가 간식을 먹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 다시 하네스를 들었다. ‘급하지않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방식.
몇 번의 시도 끝에 하루는 하네스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목 주변에 무엇인가 닿는 감각을 여전히 싫어하는 듯했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뺨을 때렸다. 하루는 잠깐 주춤했지만, 도혁의 옆에 붙어 걸었다.
그렇게 두 사람(과 한 마리)은 동네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때였다.
하루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더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은 평범한 골목이었다. 오래된 벽돌 담장, 작은 문구점,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분식집.
그런데 하루는 그곳 앞에서 멈췄다.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도혁이 줄을 느슨하게 풀었다. “왜?쉬고싶어?”
하루는 쉬지 않았다. 대신 바닥 냄새를 맡았다. 아주 집요하게, 같은 지점을 여러 번. 그리고 담장 아래 틈으로 코를 들이밀었다.
도혁은 쪼그려 앉아 그 틈을 보았다.
거기엔 먼지와 낙엽 사이에, 작은 노란색 조각이 박혀 있었다.
플라스틱이 아니라 천. 목줄처럼 보이는 천 조각. 안쪽에 아주 희미한 무늬가 있었다. 구겨져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반복되는 작은 별무늬.
도혁이 손가락으로 조심히 집어 올리자, 하루의 몸이 순간 굳었다. 숨이 멎는 듯했다. 그리고 도혁의 손을 향해 코를 갖다 대더니, 그 조각을 향해 작은 숨을 뿜었다.
확인하는 숨.
도혁은 무언가가 목 뒤로 서늘하게 내려가는 걸 느꼈다.
이건 그냥 버려진 목줄조각이 아니다. 하루가 기억하는 ‘무언가’다.
도혁은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하루를 보며 말했다.
“하루야.여기…너랑관련있는곳이야?”
하루는 대답하지 못하지만, 도혁의 질문에 답하듯, 아주 느리게 그 담장을 한 번 더 바라봤다.
그때 골목 끝에서 차 한 대가 지나갔다.
엔진소리. 낮고 거친 울림.
하루의 귀가 번쩍 섰다.
도혁은 반사적으로 하루의 몸을 자기 다리 쪽으로 당기지 않고, 대신 자신의 몸을 하루와 차 사이에 세웠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괜찮아.여기엔…내가있어.”
하루가 도혁의 다리 뒤로 한 걸음 숨었다.
노란목줄조각이 주머니 속에서, 마치 작은 심장처럼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