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시작
1화.
도혁은 한동안 휴대폰을 보지 않았다. 알림이 울리면 심장이 먼저 움찔했고, 손끝은 아무것도 하지않았는데도 저려왔다. ‘마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숨이 얇아졌다. 그래서 그는 가장 안전한 선택을 했다. 아무도 기대하지않는 곳으로 가기. 누구도 나에게 결과를 요구하지않는 곳으로.
유기견센터의 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철문을 여는 순간, 오래된 세제냄새와 희미한 사료냄새, 그리고 따뜻한 바닥열이 섞여 올라왔다. 안쪽에서는 여러 개의 꼬리가 바닥을 쓸며 낼 수 있는 소리의 총합이 울렸다. 설레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소리였다.
“처음 오셨어요?”
직원은 마스크 위로 눈웃음을 지었다. 이름표엔 ‘정민’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움켜쥐었다. “네.봉사는처음이에요.”
정민은 한장짜리 안내문을 내밀었다. “겁먹은 아이들 많아요.천천히.눈높이맞추고,무리하지말고요.”
도혁은 안내문을 받으며 ‘천천히’라는 단어에 잠깐 멈췄다. 요즘 그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견사 사이를 지나며 도혁은 하나씩 이름을 들었다. ‘코코’,‘보리’,‘초코’… 이름들은 모두 귀여웠지만, 그 안의 눈빛들은 각자 다른 계절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조용한 칸에 도혁의 발이 멈췄다.
하얀 개 한마리가 앉아 있었다. 몸집은 중형이지만 자세는 바르게 접혀 있었고, 꼬리는 흔들지도 않았다. 눈은 크지 않았으나 또렷했다. 마치 “여기서무슨일이일어나는지나는안다”는표정.
“얘가 하루예요.” 정민이 말끝을 낮췄다. “임시보호가급해요.이아이…사람을싫어하진않는데,특정상황에서확…무너져요.”
도혁은 천천히 무릎을 굽혀 앉았다. 손바닥을 보이되, 가까이 들이밀지 않았다. 안내문이 말했던 대로.
“하루야.”
하루의 귀끝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시선이 도혁의 손을 한 번, 얼굴을 한 번 훑었다.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도망가지도 않았다.
도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괜찮아.나도…여기처음이야.”
그 말이 끝나기 전에, 견사 밖 복도에서 누군가가 지나가며 자동차키를 흔들었다.
짤랑.짤랑.
금속소리가 작게 튀는 순간, 하루의 몸이 갑자기 딱 굳었다. 눈동자가 확 커졌다.
“하루야?” 도혁이 더 낮게 불렀다.
그다음은 소리였다.
센터 밖 도로에서, 엔진이 한 번 크게 울렸다. 오래된 디젤차가 출발할 때 내는, 낮고 거친 울림.
그 순간 하루는 마치 땅에서 튀어오르듯 몸을 뒤로 빼며 견사 벽에 등을 박았다. 숨이 가빠졌고, 발이 바닥을 긁었다. 입에서 낯선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짖음도 아니고, 울음도 아닌, 목이 막힌 듯한 소리.
정민이 급히 다가왔다. “괜찮아,괜찮아.하루야,여기야.”
도혁은 놀라서 손을 거둬야 할지, 더 다가가야 할지 몰라 잠깐 굳었다. 하지만 정민의 손짓이 보였다. ‘가만히.’
도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호흡을 낮췄다.
“하루야,나여기있어.”
하루의 눈이 도혁을 향했다. 그 눈에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위험 속에도 아주 희미하게, 의심과 기대가 함께 섞여 있었다.
엔진소리는 멀어졌다. 금속소리도 사라졌다.
하루의 호흡이 한 박자,두 박자,세 박자…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하루는 고개를 숙여 도혁의 손끝을 향해 코를 가져왔다.
짧은 숨. 확인하는 숨.
도혁은 그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가뭔가를해냈다’가 아니었다. 그저, 이 작은 생명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소리와 냄새와 순간들을 견뎌왔는지, 그 무게가 손끝으로 전해져서.
정민이 작게 말했다. “도혁님…혹시임시보호가능하세요?하루는…오늘처럼이상태가되면밤새잠을못자요.”
도혁은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올라왔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숨이 트였다.
“제가…해볼게요.”
그때, 하루가 아주 작게 꼬리를 한 번 쓸었다.
그리고 도혁은 몰랐다. 오늘의 엔진소리가, 앞으로 그의 삶을 어떻게 움직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