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
동주 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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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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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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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만 바라보던 형, 동주〉
묵은 연필 끝에 쥐고
기침보다 조용히 슬픔을 꿰던 동주형은
날마다 별을 심었다, 감옥의 벽에서도
나는 동주 형의 어깨에서
한글 자음을 배웠다
‘ㄱ’은 겨울의 입김 같고
‘ㅁ’은 마루 밑에서 불던 바람 같다 했지.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형의 심장에서 태어났고
참회라는 말은
형이 먼저 살아낸 이름이었다.
형은 죽음보다 삶을 더 사랑했지만
죽음조차 떳떳하게 맞을 줄 아는
성서 같은 눈빛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맑음을
형의 눈동자에서 잊지 못한다
형은 끝내,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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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심은 언어, 침묵의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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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의 「동주 형의 추억」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제(師弟)의 기록이며, 동주라는 ‘형’이 문익환에게 남긴 정신적 유산을 증언하는 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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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단지 시인이 아니었다. 그는 “성서가 언어의 뼈가 된 사람”이며, 시대의 총구 앞에서 ‘부끄러움’을 노래한 유일한 사람이다. 문익환은 그를 통해 한민족의 양심을 배웠고, 비폭력과 시의 힘을 체화했다. 두 사람 모두 기독교와 민족주의, 그리고 시의 경계에서 불꽃처럼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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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헌시는, 그 깊이를 이어받아 윤동주의 “침묵의 시학”을 문익환의 “참여의 시학”으로 확장시킨다. “기침보다 조용히 슬픔을 꿰던 형”이라는 구절은 윤동주의 언어의 본질이 곧 ‘말 없는 시’였음을 상기시킨다. 언어는 고발이 아니라 증언이어야 하며,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 진실을 향해 깊게 가 닿는다는 진리를 이 시는 품고 있다.
특히 ‘나는 동주 형의 어깨에서 / 한글 자음을 배웠다’는 대목은 윤동주가 문자 이전에 먼저 삶의 태도로서의 시를 가르쳤음을 말한다. 박성진 시인의 시는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성서와 시를 가슴에 품었던 두 사람의 순결한 형제를 다시 세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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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인용 — 문익환의 산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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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는 말이 없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헤던 사람이다.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말이 넘쳐서 입을 열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침묵의 시인이다. 나는 그 침묵을, 아직도 따라잡지 못했다.”
— 문익환, 「동주 형의 추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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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별의 거리, 시와 순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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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윤동주와 문익환이라는 두 시대의 별을 연결하는 정신적 다리다. 윤동주는 시로 죽음을 넘었고, 문익환은 윤동주의 침묵에서 혁명의 언어를 건져 올렸다. 박성진 시인은 그 두 별의 거리에서 새로운 빛을 심는다.
그의 시는 고요하지만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동주의 별빛은 문익환의 길 위에 내려앉았고, 문익환의 추억은 다시 박성진 시인의 언어로 교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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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와 글이 독자에게 ‘말이 없는 말’, ‘별이 되는 말’의 힘을 일깨우길 바란다. 윤동주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서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문익환 시인의 심장 속에서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