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박성진 -부부시인 김은심 시인의 신기루

by 박성진

신기루



〈신기루〉

씨앗보석 김은심 시인


사막을 걷던 낙타가

수평선 너머를 응시한다


반짝이는 물결,

허공 위의 그림자


헛된 것에 이끌리는

생명의 오래된 본능


나는 너라는 신기루를

오아시스로 착각했을까


이미 가슴은

말라버린 지 오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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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론


박성진 문학평론가


김은심 시인의 〈신기루〉는 짧은 시편 안에 생명의 본능, 인식의 허상, 사랑의 착시, 자아의 붕괴를 담아낸 응축된 명상 시다. 시 전체는 ‘보이는 것’과 ‘믿는 것’, 그리고 ‘실재하는 것’ 사이의 틈을 언어로 탐사하고 있다.


사막과 낙타는 고통과 인내의 상징이며, 물이 없는 공간에서 갈망의 실체는 더욱 신기루처럼 빛난다. “수평선 너머를 응시한다”는 첫 장면은, 이미 인간이 육체가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는 지점에서 출발함을 암시한다.


“반짝이는 물결 / 허공 위의 그림자”는 감각적 실재가 아닌 환영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이 ‘허공의 물결’은 곧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구원이자 유혹이다. 시인은 그것을 “너라는 신기루”로 명명하며 사랑 혹은 한 존재에 대한 착각의 본질을 직면한다.


특히, “헛된 것에 이끌리는 생명의 오래된 본능”이라는 표현은 시 전체의 심층을 이루는 구절이다. 인간은 언제나 실재가 아닌 ‘희망’이라는 허상을 좇으며 살아간다. 그 허상은 사랑일 수도, 이상일 수도, 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끝에 도달한 시인은 마침내 자각한다 — 그것은 단지 ‘신기루’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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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총평


이 시의 정수는 마지막 두 행에 농축되어 있다.


> “이미 가슴은 / 말라버린 지 오래인데”




이 구절은 육체적 고갈이 아닌 정서적·정신적 고갈, 혹은 시인의 내면 붕괴를 선언하는 문장이다. 김은심 시인은 감정의 마지막 지점까지 걸어가 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랑은 실재가 아닌 허상이었음을, 혹은 삶 전체가 신기루였음을 스스로 고백한다. 하지만 그 고백조차 차분하다. 격정 없이 말라버린 가슴을 이야기하는 태도는 오히려 독자에게 더 큰 공명을 남긴다.


이 시는 허상과 실재 사이의 사유, 생존과 욕망의 역설,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기기만까지를 문장 밖에서 떠오르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시인은 신기루를 따라간 자로서, 그 끝에서 가슴이 말라버린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그 말라버린 가슴은 오히려 언어의 씨앗을 잉태하는 시인의 존재 조건일 수도 있다.


그는 말라야 쓸 수 있고, 버려져야 볼 수 있으며, 사라져야 언어가 남는 운명을 짊어진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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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말라버린 시인의 의미’ 조명


> “이미 가슴은 말라버린 지 오래인데”




이 한 구절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이 자신의 감정적 사막 위에 서서, 아직도 ‘너’를 응시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말라버린 가슴이란,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음, 더 이상 믿지 않음, 더 이상 갈망하지 않음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라버림의 깊이만큼 언어는 더욱 명징해진다.


시인은 말라야 시를 쓴다.

말라버린 가슴은 사랑에 실패한 자의 증표가 아니라, 진실을 견딘 자의 심장이다.


이러한 통찰 속에서, 김은심 시인의 〈신기루〉는 하나의 존재론적 선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인간은 늘 신기루를 좇고, 가슴은 말라가며, 그 안에서 시는 쓰인다. 시인이란 신기루 끝에서 사막을 돌아보는 사람이며, 그 사막은 곧 이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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