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를 읽으며
「만복사저포기」의 양생은 전라도 남원 사람이고,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홀로 살아가는 총각이다. 그도 배꽃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그 향기 은은한 달밤이면
한 그루 배꽃나무 / 외로움을 벗 삼으니 / 시름도 한 많은 / 달 밝은 이 밤에
외로운 창가에 / 홀로이 누웠으니 / 어느 곳 고운님이 / 퉁소를 불어오나
비취는 외로운 것 / 짝 잃고 나아가고 / 원앙새 한 마리가 / 많은 물에 노니는데
그 뉘 집 아가씨께 / 이 마음 붙여두고 / 시름없이 깊은 생각 / 바둑이나 둘이거나
등불 가물가물 / 이내 신세 점치는 듯......
시를 읊으며 자신의 붉은 청춘을 녹여내곤 했다. 그러다가 부처님과 저포를 던져 내기를 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된다.
운명적인 여인은 꽃같이 아름다운 화용월태(花容月態)의 아가씨로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검은 머리와 깨끗한 의복은 곱게 채운을 타고 내려온 월궁 선녀와 같은 모습이었다. 사랑이 아름다울수록 애절할수록 그 사연 역시 절절한 법인데 , 이 여인의 사연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아무 고을 아무 동리에 사옵는 소녀는 외람됨을 무릅쓰고 부처님 앞에 사뢰옵니다. 이즈음 변방(邊方)이 허물어져 왜적들이 쳐들어오니 싸움이 쉬일 날이 없사와 봉화불이 해마다 그칠 날이 없사옵니다. 그리하여 건물이 파괴되고 노략질을 하오니 친척과 종들은 동서 사방으로 피난하여 정처 없이 유리걸식하였나이다. 수양버들 같은 가냘픈 소녀의 몸이 오라 먼 길에 많은 고생을 겪었사온데 야속한 우리 부모 궁벽한 곳에 옮겨 두어 초야에 묻혀 사온 지가 속절없이 삼 년이 되온지라, 달 밝은 가을밤과 꽃 피는 봄철에 고단한 영혼 어이 위무할 길 있사오리까? 흐르는 흰 구름과 물결 소리를 들으며 무료한 세월을 보내옵노니, 그윽이 깊은 골짜기에서 평생의 박명 박행(薄命薄倖)함을 탄식하오며 홀로 공규(空閨)를 지키어 기막힌 밤을 보내오니 님 그리운 이내 정이 채란(彩鸞)의 외로운 춤을 홀로 슬퍼하나이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서러운 영혼 맘 둘 곳 없사옵고, 그러그러 날은 가고 밤은 와서 구곡간장 다 녹아 없어지나이다. 어지신 부처님이시여! 자비와 연민함을 베푸시옵소서. 인간의 한평생이 이미 정해져 있사옵고, 부부의 백년가약 또한 피할 길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하루 바삐 꽃다운 인연과 배필을 점지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맺어진 두 연인은 만복사 행랑채 끝에 남아 있던 매우 좁은 판자 방에서 운우(雲雨)의 즐거움을 나누고, 시녀가 차려온 주안상 앞에서 합환주를 마시게 된다. 양생은 기쁨이 넘치는 중에도 주안상에 놓인 그릇들에는 아무런 무늬도 없고, 술잔에는 기이한 향내가 풍기는 것이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닌 성싶은데... 의구심도 갖는다. 하지만 아가씨의 맑고 고운 음성과 몸가짐을 보면 아무래도 어느 명문집 따님이 한때의 정을 걷잡을 수 없어서 어두움 타고서 담을 뛰어나왔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속 헐거운 빗장을 열어버리게 된다.
봄 추위 쌀쌀한 바람에 / 명주적삼 팔랑이고 / 애닯아라 몇몇번이나 / 향로에 불이 꺼졌던고
검은 뫼 눈썹인 양 / 가물거리고 / 저녁 구름 / 양산모양 퍼졌는데 / 비단 장막 원앙 이불에
뉘로 더불어 노니는고 / 금비녀 반쯤 꽂은 채 / 퉁소 한 가락 불어볼거나. (중략)
기쁠시고 오늘의 이 밤 / 봄바람이 소식 전하여 / 중중 첩첩 쌓인 정한 / 봄눈 녹듯 녹았어라
금루곡 한 가락을 / 술잔에 기울여서 / 한 많은 옛일 / 느꺼워 하노매라.
양생이 시를 읊자, 아가씨는 “만일 당신께서 신첩을 버리지 않으신다면 평생토록 당신이 건즐 (수건과 빗)을 받겠나이다.” 고백을 하고, 양생은 “그대의 사랑을 내 어찌 버릴 수 있으리오?” 미더운 약속으로 백년해로를 다짐한다.
그러나 이들의 꿀 같은 사랑은 영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평생 건즐을 받들겠고, 사랑을 저버리지 않겠다던 황금 같은 맹약을 했지만 만복사에서 맺은 사랑 보련사에서 슬픈, 뜻밖의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양생은 아가씨에게서 받은 은잔을 들고, 보련사 가는 길에서 딸의 대상을 치르기 위해 보련사로 향하는 대갓집 행차를 보게 된다. 왜구의 난리통에 죽어 정식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개녕사 근처에 묻어 두고 머뭇거리다가 대상 날이라 보련사에서 시식이나 베풀려 간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아가씨를 만나 놀랍고 슬픈 사연을 듣게 된다.
아가씨는 아녀자로서 지켜야 할 예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하도 오랫동안 다북 속에 묻혀 있다 보니 풍정이 발하는 것을 이기지 못했다고 말한다. 뜻밖에 삼세(불교에서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인연을 만나 양생의 동정을 얻게 되어 백 년의 높은 절개를 바쳐 술을 빚고 옷을 기워 평생 지어미의 길을 닦으려 하였으나, ‘숙명적’인 이별을 위반할 수 없어 저승길을 떠나야겠다고 말한다.
결국 양생은 떠나가는 이의 슬픈 곡성을 듣고, 보내는 이들의 애통한 곡성을 듣고서야 아가씨가 현생의 사람이 아닌 귀신이었음을 알게 되고, 슬프게 통곡을 하고 만다.
이후 양생은 처음 만났던 곳을 찾아가 음식을 차려놓고 지전을 불사르며, 조문을 지어 읽으며 그녀를 추모한다. 그리고 아가씨가 다시 윤회를 통해 다른 나라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선몽을 하였으나, 그는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살았다고 한다. 양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뒷일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로 끝을 맺는다.
「만복사저포기」는「이생규장전」이 그러하듯 「조신 설화」와 같은 환몽 구조는 아니다. 조신이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태수 김흔의 여식과 결혼하게 해 달라 애원하고, 꿈속에서 이미 약혼자가 있는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 부부는 자식을 다섯을 낳아 기르며 살아가지만 매번 아가씨의 약혼자에게 쫓기고, 벗어날 길 없는 가난으로 구걸을 하며 살면서 큰아들 미륵을 잃고, 결국 헤어지자 결정하면서 꿈에서 깨어난다.
이 설화는 소설이 탄생하기 이전 시대의 이야기 문학으로 그 의의가 크다 하겠지만, 결국 일장춘몽(一場春夢) 인생사 모든 부귀공명은 하룻밤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구조의 이야기이다.
환몽 구조 식의 이야기는 분명 한계였다. 깨달음과 종교 귀의 라는 표면적 주제 말고도 신분적 초월, 사회적 금기 초월의 한계였다. 그러나 「만복사저포기」의 만남과 사랑, 이별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순행 구조이며, 현실의 이야기이다. 이승의 인물과 저승의 인물이 간절한 소원으로 맺어져 사랑을 하게 되고,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명혼 소설은 당시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고려시대와는 다른 철저한 유교국가로의 전환과 그 기반이 착실히 이루어져 가는 조선 사회에서 차별과 억압은 정당한 것일 수밖에 없었고, 지조와 절개를 지켜 수절하는 것, 역시 남성이 아닌 여성의 것인 시대에 ‘은장도’가 강요되지 않은 남성의 수절이 결말을 이루는, 그야말로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조선 중기 이전까지만 해도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남녀평등 사상으로 인한 여성의 인권이 다분히 인정되었지만 당시 천재 유학자 김시습에게서 나온 소설로는 파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결말이 설화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양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뒷일을 아는 이가 없었다는 설화적 마무리는 한계일 수 있으나, 어쩌면 그래서 지고지순한 사랑이 더욱 아릿하게 다가서는지도 모른다. 잘 먹고 잘 사는(입신양명, 부귀공명) 것도 그녀와의 이별 후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실존적’ 삶의 모습까지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종의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은 살아남은 자, ‘생육신’이라는 멍에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매월당 김시습이 붓을 놓았을 때, 그의 마음속엔 어떤 감정이 어떤 느낌으로 흐르고 있었을까? 마침표를 찍고 붓을 놓았을 때, 날씨는 어땠을까? 그를 둘러싼 금오산의 정취는 어떠했을까? 문득 그를 만나고 싶어 진다. 그는 거문고를 탈 줄 알았을까?
아, 이러매 눈을 감고 상상해 볼 밖에... 아마도 작가와 독자는 오작교를 건너야만 만날 수 있는 견우와 직녀 같은, 운명 지어진 존재들인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