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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Jan 05. 2023

4화. 뜻먹고 맘먹은 대로 소원성취하사

제2부. 떠나가는 배 꿈꾸는 다락

   오늘같이 좋은 날에  

   일상생기는 이중천이 삼화절채 사중유언

   오상화에 육점복덕 칠화절맥 팔중귀혼 ~~~

   멀고 궂은날 다 버리고 가직하고 생기복덕일날

   남생기 여복덕 이 날을 맞이하여~~

   금일 모년 모월 모씨연의 조상님들 모셔놓고

   야락하고 공드릴적에~~

   안두지 헐어다가 고두약밥 지어놓고

   겉두지는 시루공맥이요~~~

   기름진 남새 장든채소 깊이든건 더덕채

   얕이든건 도라지채 기름진 나물 장든채소

   맛좋은 사마주 빛좋은 강화주~~~

   어동육서 홍동백서 조율이시 좌포우혜로 차려놓고

   양촛대 불밝히고 향로 향합 꽂아놓고

   지극정성 드릴 적에~~~


   뜻먹고 맘먹고 맘먹고 뜻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게 소원성취해 주시고

   칠성바람 조상바람 선산바람 무왕바람 용왕바람 다 잠재워서

   가화만사성으로 이룰성자로 이루어 주시자고 이 정성을 드리니

   오늘 오신 금일 망자씨들 선망조상 오방조상님네

   잠시잠깐 모셔다가 원당 한당 모셔다가 풀어드리고 가봅시다. 그려이~~    

 

  이제 징은 석구네의 손에 들려지고 마당은 한결 엄숙해진 가운데 소희의 씻김이 진행되고 있다. 쪽진 머리가 정갈하여 곱다. 백동비녀 호사로울 리 없지만 땅거미 지며 어스름이 이는 마당을 비추는 백열등 불빛이 그네의 비녀를 금빛으로 물들게 한다. 하얀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창백한 얼굴로 모씨 선영조상들 앞에 서서 후손들 사는 곳의 주소와 이름들을 낱낱이 불러가며 축원을 하는데, 얼마나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가슴에 일던 불안감이 아주 먼 옛날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노 저어 오는 집착선에 실려 망망대해를 헤매다가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한 것인가. 옆자리에 앉아 아쟁을 켜 올리던 천수가 허벅지를 툭 친다. 장구의 바라지 장단이 야물지 못한 모양이다. 

  ‘오늘같이 좋은 날’이라는 말이 앞을 선다. 점바치 석구네의 굿마당에 불려 나와 가슴을 치며 미안해하던 조상들이 저마다 가슴에 묻어 놓았던 말들을 풀어놓으며 흥에 겨워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더니 이제는 후손들의 소원을 듣는 거리로 나와 제각기 자리에 좌정을 한다. 이미 흥은 공수의 파도를 넘어 씻기는 자리에 들어서면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몸은 자꾸만 따라주는 술에 취해 건들거리고 있다. 

  좌중이 조용해진 가운데 술술 발려 나오는 소희의 사설이 ‘오늘같이 좋은 날’에 이르게 되면서 아쟁이 끄으 끄으윽 끄 끄으으으으 애 애 애앵앵 앵 애앵 ~~ 시나위 구음의 초성을 틀어 올린다. 산 사람과 불려 나온 혼령들의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감정의 앙금을 휘휘 저어 놓는다. 노인의 오래된 천식이 기관지의 벽을 마르게 하고 간질거리게 하는 통에 밭은기침을 해대는 모양으로 왼손으로는 줄을 누르고 조율하면서 오른손으로는 활을 낮게 밀착시켜 아래에서 위로 올리고, 가운데 줄의 중동에서 활의 배면을 최대한 밀착시켜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는 점을 찍듯이 가볍게 묵직하게 활을 움직인다. 그 가운데쯤에 천문이의 장구가 끼어들어 딱 따그르르르 더덩 덩 더덩 덩 딱 – 떠덩 덩 덩 떠덩 떠 더덩 ~ ~ 가볍게 음향을 띄운다. 지징 지이이이잉 장단의 끝을 맺는 석구네의 징이 가볍게 울음을 울고 굿판은 또다시 생(生)의 바다로 돛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대나무가지 한 가지를 잘라다가 꽂아놓은 손대백이 그릇에 쌀은 수북하고, 액그릇에도 넘치도록 수북한 쌀 위에는 초를 꽂아 불을 밝혔다. 석구네 공수굿에서부터 바람에 꿈틀거리면서도 활활 타오르던 촛불이 여전히 바람에 일렁이며 불을 밝히고 있다. 

  ‘멀고 궂은날 다 버리고 가까우면서도 생기가 일어 복이 가득한 날’을 골라 안에 있는 뒤주를 헐고 밖에 있는 뒤주를 헐어 밥을 짓고, 시루에 쌀을 안쳐 떡을 지어 놓고 조상 공덕을 기린다고 왼다. 소희는 입고 있는 옷만큼이나 하얀 빛깔의 지전을 땅을 향해 흔들고는 양손에 받쳐 든다. 공손한 마음이 지극함을 보이며, 더덕채, 도라지채, 갖가지 나물을 차려 사마주, 강화주를 올리고, 배, 사과, 밤, 대추 같은 과일을 잘 익힌 고기, 생선들과 곁들여 올렸으니, 마음껏 흠향하시고, 한참을 즐기시라고 아뢰며 조상신들의 비위를 맞춘다. 그러니 이번 굿잔치로 인하여 자라나는 후손들이 아무쪼록 건강하고, 뜻 먹고 맘먹은 일 모두 막힌 데 없이 술술 잘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비는 말을 한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와 음전한 몸가짐으로 공손하게 아뢰며 정성을 기울인다. 

  가화만사성으로 이룰 성자로 이루어 주시자고 ~~ 축원 축수의 말자락 끝을 쳐올리는 소희의 목에서 소리가 올라온다. 배 밑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소리가 가슴을 거슬러 올라 목을 타고 흘러 사람들 귓전으로 오른다.     

   굿이로구나

   신이로구나

   에헤에 에해에 허어야 어나야냐

   신이여~~ 어어허 어

   모씨 명의 선영조상

   굿이로구나


   맞으러 가세 맞으러를 가세

   선영조상님을 맞으러 가세

   한 손에다 저마포(苧麻布)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 취타를 들고 

   너도 가고 나도 가세

   뉘 집이라고 아니를 오시며

   뉘 집 선영이라고 아니를 오시리오

   차례 차례로 오시는구나

   세명장 죽장 우에 

   왕자진은 봉피리 소리를

   새복 받아서 오시는구나

   에헤에 에해에 허어야 어나야냐

   마야장천~ 오날이로구나~

   에헤에 에해에 허어야 어나야냐

   신이여~~ 어어허 어~ 신이로구나~


   성황당 그늘 밑에 

   슬피우난 저 두견아

   너는 어이 슬피를 우느냐

   나도야 괴아니다 도령 죽은 넋이 아니냐

   처자 죽은 몸패를 만나서 

   낡은집은 잦아지고

   새 잎 나기로만

   슬피를 운단다


   갈매기는 어디를 가고 

   물드난 줄을 모르난고

   사공은 어디를 가고

   배 떠난 줄을 모르신가

   오늘날 모씨 선영조상님네 

   어디 어디를 가셨는고

   다시 오실 줄을 모르네 그리여~


   통일천황 진시왕도

   몇 고개 재왕을 받아 메고

   염라국을 모사와서

   염라축사를 하려는가

   화월요초로 인생이야

   죽음을 면할소냐

   한 번 죽음을 못 면하고

   원통하신 요내 청춘

   원통한 사연으로

   이리 내왕 천도를 하여서

   왕생 극락으로 천인도를 합시다


   에헤에 히이야 허어~ 허어어~

   마야장천 오날이로구나

   에에에 ~~ 에에에 ~~

   허어~ 허어어~ 에헤에 히이야

   선영 신이여 

   신이로구나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사     


  소리는 강을 건너 모씨네 선영조상들을 낱낱이 찾아 모시고 오는 소희의 가슴이 떠밀어오는 경계의 나루에서 올라온다. 진양조의 설운 곡조가 흥겨운 축원의 중모리로 풀리는 성주풀이대목으로 돌아드는 모퉁이에 선다. 휘갈기는 장구소리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성대하게 맞아들이는 대활연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마당 안으로 들어서며 껄껄껄 웃는 조상신들의 소리와 황급히 달려 나와 고개 조아리는 승룡이 권속들이 저마다의 자리에 앉으며 신들의 잔에 술을 따르느라 한바탕 소동이 이는데, 소희는 이번에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대문사진: 진도 씻김굿의 한 장면(진도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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