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을 가진 환자와의 짧은 기록

by 아련

저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의사입니다. 진료실에서는 참 다양한 삶을 만납니다

스트레스, 상처, 두려움이 각자의 방식으로 몸에 흔적을 남기며 나타나지요.

높은 불안, 타인의 시선에 대한 예민함, 과거의 상처, 조현병의 환청과 망상…

사람들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고 이곳을 찾습니다.

오늘은 ‘강박’을 가진 한 환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강박을 갖습니다. 주변 정리가 되어야 편안해지는 사람, 타인의 평가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 장소나 목소리까지 특정 자극에 예민한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조금 신경 쓰인다” 정도로 넘기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 감정이 삶 전체를 조이기도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 환자분은 불안도가 높았고, 타인의 시선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불면으로 오랜 기간 고통을 겪고 계셨습니다.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현재를 흔드는 분이었지요. 수많은 환자 분들 중 유독 그분을 떠올리는 이유는, 그분이 스스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면서도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려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강박이 심한 것 같아요. 뭘 해야만 할 것 같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스스로를 계속 다그쳐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거든요.

저는 왜 저한테만 이렇게 엄격할까요?”


말투와 분위기, 눈빛에서 이미 그분은 스스로 무엇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엄격할까요?’라는 질문 속에는 오래 눌러온 자기 비난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고,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이미 첫걸음을 떼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남의 실수에는 너그러웠습니다. “그들은 타인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에게는 작은 잘못에도 궁지에 몰릴 때까지 매섭게 몰아붙였습니다.

감정에는 논리가 다 설명하지 못하는 층위가 있는데도, 그는 모든 감정에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레 말씀드렸습니다.


“환자분은 늘 스스로 재판을 여시는 분 같아요. 하루를 버티는 것도 힘든 날에 ‘이 정도 힘들면 약한 거야’ 하고 스스로를 꾸짖는 데 너무 성실하셨거든요.”


몇 년 동안 함께 진료해 온 관계였기에, 나아지는 모습을 지켜본 시간까지 더해져서 비로소 전할 수 있었던 말이었습니다.

그분은 제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동안 말을 잇지 않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인정하기 싫었어요. 인정하면 제가 정말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이제는 그 모습도 사랑해 보려고요.

마음이 힘든 날엔 애써 밝은 척하지 않을 거예요. 두려워하지도 않겠어요. 그냥… 오늘은 좀 그런 날이구나, 하고 제 마음을 위로해 주려고요.”


그 말을 끝으로, 그분은 더 이상 진료실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이따금씩 잘 지내고 계신지 생각납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픈 모든 분들께 조용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날엔, 그 흔들림을 잠시 바라봐 주세요. 그 모습까지도 사랑해 주세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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