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by 양마리

최근 남편이 이직을 했다. 주변에서는 이직 소식을 듣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축하 인사를 보냈다. 이직이라면 모름지기 더 나은 조건을 갖춘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말이다. 나는 멋쩍게 감사 인사를 하면서도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꼈다. 우리집 분위기는 초상집이니까.


남편이 이직을 하게 된 건 그에게 번아웃이 왔기 때문이다. 그는 말 그대로 불 타올라서 재만 남을 때까지 일을 했다. 새벽 5시에 울리는 전화 진동소리에 벌떡 일어나 잠을 깨기 일수였고, 퇴근이 한두 시간씩 늦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었다. 연차를 쓴 날에도 갑작스러운 전화에 다시 노트북을 켜곤 했고, 짧은 휴가를 받아 강원도 양떼 목장에 갔을 때는 그가 업무를 보느라 나 혼자 양을 따라다닌 아픈 일도 있었다. 그는 훗날 양떼 목장에 간 사진을 보다가, 우리가 거기에 갔었냐며 황당해했다. 너무 정신이 없어 양떼 목장에 갔던 기억이 없단다.

그럼에도 그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는 자부심 하나로 하루 하루를 버텼다. 그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보일 때의 으쓱함은 나 역시 꽤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어디 내놓을 만한’ 이름을 지키기 위해 보낸 삼 년의 시간은 무척이나 길고 쓴 시간이었다. 지쳐서 나가 떨어지고 싶을 때마다 우리는 노동의 대가로 많은 것들을 사고, 쓰고, 누렸다. 목이 메어 죽어버릴 것 같을 때마다 만족의 우물을 찾아가 꿀꺽 꿀꺽, 급히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만족의 우물도 점차 동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내성이 생기고 만 것이다. 우물 속 물은 점점 줄어드는데, 우리는 더 갈증이 났다. 이제 그 어떤 것도 처음만큼의 만족을 주지 못했다. 남은 건 마른 우물 앞에 주저 앉아 있는 우리였다. 그는 ‘여길 떠나야 돼. 여긴 사람이 살 곳이 아냐.’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좀처럼 큰 우물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남편에게 알맞은 경력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지역도, 경력도, 업무도 그를 위해 준비된 자리인 듯 모든 것이 적당했다. 안정성이 있는, 꽤 좋은 자리였다. 단 한 가지! 연봉만 빼면. 그는 나에게 공고를 보여주며, 이곳으로 떠나도 되겠냐고 장난스레 물었다. 장난스런 말투에도 그의 고뇌는 숨겨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본인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그렇지만 내 의사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차. 우린 연인이 아니라 배우자였다. 그때서야 나는 우리가 배우자라는 것을 불현듯 느꼈다. 일상을 살 때는 와 닿지 않았던 그 단어가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나 자신을 위한 선택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운명 공동체가 되었구나. 그의 처지에 눈물이 찔끔 났다. 이런 게 결혼이구나. 이렇게나 좋으면서도 무거운 것이.

결국 남편은 직장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그가 전 직장에서 보낸 치열한 삼 년의 시간과, 합격 후 이직을 결정하기 까지의 고통스러운 일주일을 지켜본 나로서는 그의 모든 선택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난 꽤 만족스러웠다. 새 직장에서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건강도 좋아질 것이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도 꽤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상상만으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반대였다. 항상 가슴에 사표를 품고 살았다던 그는, 막상 사표를 낼 때가 되니 무척 아쉬워했다. 마지막까지 미련이 남았던 것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와서도 선택을 망설이는 그였다.

망설임 끝에 작성한 사표가 수리되던 날, 그는 새벽 1시까지 인수인계 작업을 했다. 대상포진이 올라왔음에도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삼 년 동안 해온 일은 그런 일이었다. 그는 홍수처럼 밀려오는 일을 정신없이 해냈다. -남편은 종종 쳐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마지막 업무까지 마치고 나서야 텅 빈 사무실에서 깊은 한숨을 뱉었다. 자리에 있는 짐을 모두 박스에 담고 출입구에 사원증을 찍어 문단속을 했다. 그의 마지막 퇴근이었다. 그는 어둡고 고요한 집에 숨 죽인 채 들어와 무거운 겨울 옷을 허물 벗듯 벗어 던졌다. 그리고 사원증을 곱게 정리해 서재의 책꽂이에 올려 두었다. 다시 쓸 일이 없는, 온 군데에 흠집이 가득한 낡은 사원증은 그의 열정을 치하하는 훈장으로 남게 되었다.

“새 회사는 좀 어때? 지낼 만 해?”
“그냥… 괜찮아. 몸은 편해.”

야근도 없고 진상 거래처도 없는 새 직장에서 남편은 전보다 더 힘들어했다. 적응을 못해서 그런 건지, 사람들이 안 맞는 건지 걱정이 멈추질 않았다. 남편도 이렇게 걱정되는데 자식을 초등학교에 처음 보내면 얼마나 가슴이 떨릴지, 처음으로 학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살얼음판 걷듯 위태로운 일주일이 지났다. 주말 아침에 나는 빨래를 개고 남편은 딸기를 씻고 있었는데, 남편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인생의 최저점을 찍은 것 같다고. 선택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되는데, 버티지 못하고 도망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우리가 더 이상 큰 만족의 우물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조그마한 우물로 나를 데려왔다는 게 본인은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고지식함에 기절할 뻔했다. 둘이 벌어 사는 우리집에서 본인이 가장인 척하고 있으니 기가 찰 수밖에! 충격 받은 나는 그와의 심층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를 괴롭히는 정체가 ‘책임감’과 ‘상실감’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가세를 일으켜야 한다는 아주 구식의 책임감과, 성취했던 모든 것을 떠나보낸 것에 대한 상실감.

이제 그건 알겠다. 그런데 그를 위해 내가 뭘 해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이럴 때 훌륭한 배우자는 어떻게 하지? 나는 이상적인 배우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건 바로 현모양처였다. 그러니까 어질고 착한 아내라면… ‘서방님의 선택을 받들겠어요.’ 웁스. 이건 더 구식이야…. 내가 받은 구식의 성교육은 언제나 도움이 되질 않았다.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연인이 아닌 배우자로서의 자세는 조금 달라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배우자로서 건네는 위로의 생김새를 몰랐다. 얼마나 부드러워야 하고, 또 가끔은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지 그 질감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별 수 없이 아무 이야기나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말 중 무언가는 그에게 가 닿으리라는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 우리가 한 번도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나눈 적 없다는 걸 깨닫았다. 그는 내 삶의 우선순위를 아주 잘못 알고 있었다. 내가 큰 만족의 우물이 없어져서 슬퍼할 까봐, 그 죄책감에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하늘을 빙빙 돌고 있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큰 우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 찢어질 듯한 갈증이 없는 곳이라면 큰 우물도 필요 없다고 말이다. 너무도 당연해서 직접 하지 않은 말이 그에게는 꼭 필요한 말이었다. 그게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말이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해방구가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는 작은 우물을 가지고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이 말이 마치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어서 남편을 단숨에 행복하게 해 줬으면, 하고 바랐다. 다행히 남편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결국 그에게 책임감이라는 짐을 덜어줄 순 있어도, 그가 느끼는 상실감까지는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체감했다. 그걸 인정하니 마음에 비질을 한 듯 훨씬 가뿐한 마음이 들었다. 부부이면서도 개인인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나의 해방구였다. 내가 마음을 비우니 그도 조금은 나은 듯, 이전보다 밝아진 모습으로 출근길에 나섰다.

배우자는 ‘부부의 한쪽에서 본 다른 쪽’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내가 바라본 남편의 모습, 남편이 바라본 나의 모습을 서로의 전부라고 생각해도 될까. 더없이 불완전한 그 모습을 배우자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 배우자라는 이름은 달처럼 한쪽에서만 보면 안 되는 것이다. 납작한 원으로 보여지는 서로를 둥그렇고 커다란 구의 모양으로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그림자가 진 모습을 원래 그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않고, 그림자에 숨은 윤곽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그 윤곽을 따라, 가장자리를 따라 뒤로 돌아가서 햇볕이 닿지 않는 어두운 부분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을 더 이상 어둡게 내버려 두지 않아야, 그래야 우리는 서로의 배우자가 될 수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배우자가 된다.


요즘 나의 배우자는 칼퇴를 한다. 그래서 저녁을 함께 차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제대로 된 메뉴를 만들겠다고 일을 벌이다보니 8시가 다 돼서야 식사가 끝났다. 늦은 식사 후 배가 빵빵해진 우리는 함께 밤산책을 나왔다. 바람이 차다며 내 손을 쥐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그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있다. 팀장님은…, 구내식당 밥은… 조잘거리는 그의 뒤로 밝은 달이 보인다. 오빠, 벌써 보름달 떴다. 엄청 동그래. 추석에는 보름달 뜨는데, 구정에는 안 뜨나 보네. 그치. 구정 때는 보름달 아니야. 우리는 중얼거리며 달빛 아래를 걸었다. 오늘은 하늘에도, 우리의 조그맣고 단단한 우물에도 보름달이 떠 올랐다.

작가의 이전글단단함이라는 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