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건 2022년 새해 다짐이었어요. 그때의 나는 군산 바다가 보이는 외진 도로 위에 남편과 서 있었어요. 두 손을 그러모으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작지만 원대한 소원을 빌었어요. 올해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꼭이요.
단단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편안함을 아시나요? 저는 단단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불안하던 마음이 사그라들고 공중을 부유하던 먼지조차 차분히 자리 잡는 기분을 느껴요. 저는 몸도 마음도 아주 약한 사람이에요. 장대한 기골과 어울리지 않게 잔병부터 굵직한 병까지 두루 섭렵하고, 여린 마음 때문에 상처도 잘 받곤 해요. 어릴 때 점을 보러 갔더니 ‘마음이 여려서 어떡하냐’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결핍 때문일까요? 저에게 단단함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그래서 2022년 만은 정말로 단단한 사람이 되고 말리라 다짐했어요. 단단한 갑옷을 두르고, 단단한 무기로 나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자 했어요. 그러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독서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인가요? 제게 단단함이란 그런 의미니까요. 요즘 말로 유리멘탈인 제게는 강철체력과 강철멘탈이 필요했어요.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땐 내가 단단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일기 한편에 ‘이만하면 많이 단단해졌다. 대견하다.’라고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스스로 쌓아 올린 단단함은 쉽사리 무너지기도 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단단해지자’라고 다짐하면 단숨에 단단해질 수가 있겠습니까. 제게 단단함이라는 목표는 끝없는 도전과 좌절의 반복이었어요. ‘이만하면 꽤 단단한데.’라고 생각하다가도 때로는 ‘난 단단해질 수 없는 걸지도 몰라.’라고 낙담하기도 했어요. 어쩌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과정을 통해 단단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단단함을 향한 제 짝사랑은 꽤 오랜 시간, 무려 1년을 지속하게 되었어요.
마침 오늘은 상담 날이에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던 저는 단단함이라는 키워드를 꺼내 들었어요. ‘선생님, 저는 왜 이리 단단해질 수가 없을까요?’ 선생님이라고 답을 아실까요. 그래도 전, 짝사랑을 그만두는 법을 묻는 사춘기 소녀처럼 간절한 마음이었어요. 선생님은 ‘단단함이라는 가치가 마리 씨에게 왜 중요하냐’고 물었어요.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던 의문이었어요. 잠시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 흔들리고 싶지 않아요. 누가 뭐래도 괘념치 않고 나의 길을 가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어요. 선생님은 ‘단단한 사람에는 누가 있죠?’라고 물었고 저는 ‘김연아’라고 답했어요. 아주 찰나동안 조금 부끄러웠죠. 위인을 말했어야 했나, 그러나 김연아는 제게 위인인 걸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저는 이 인물이 떠올라요.’라며 종이에 이름 세 글자를 적었어요. 그 이름은 바로 전광훈이었어요.
누구였더라- 하던 찰나 그가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맞아요. 그는 코로나 펜데믹 속 집회를 강행했던 목사죠. 잠시 멍한 채로 있다가 웃음이 비실비실 튀어나왔어요. 그러고 보니 그는 정말 단단한 사람이죠.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을 가는, 제가 묘사한 단단함에 걸맞은 인물 아니겠어요? 그 외에도 입에 담기 싫은 여러 단단한 인물들도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단단함이라는 가치가 더 이상 멋져 보이지 않는 거 있죠. 너무 가볍나요? 그래도 사는 데 꽤 도움이 되는 가벼움이랍니다.
이어서 선생님은 가치에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는 것이라 말했어요. 근면 성실이라는 가치에는 융통성 없는 답답함이라는 이면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제가 그토록 선망하던 단단함이라는 가치에는 어떤 이면이 있을까요? 휘어질지 언정 부러지고 말겠다는 아집, 한 마디로 내 말이 다 맞는 꼰대가 되기 최상의 조건일 수도 있겠죠. 선생님과 저는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 위치를 바꾸는, 가치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어요.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단단함이라는 가치를 좇다가 마리 씨가 가진 다른 보석들을 잃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어요.
상담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상담이 끝나고 나면 개운하면서도 숙제를 받은 기분이 든 달까요. 마음의 자세를 바꾸는 건, 몸의 자세를 바꾸는 것보다 에너지가 곱절로 드는 일 같아요. 게다가 단단함이라는 덫에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까요. 거울 속의 저는 조금 지쳐 보였어요. 그래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선생님이 알려준 보석들이 보이는지 찬찬히 살펴봤어요. 내가 가진 떡이 작아 보이는 건 불변의 진리인가 봅니다. 제가 가진 반짝임은 왜 이리 작고 소박해 보이는 걸까요? 그래도 덫이 가리고 있던 작은 반짝임을 다시 마주할 수 있어 행복했어요.
차를 끌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골목길은 여전히 눈으로 얼어붙어 있었어요. 얼마 전 전주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려 온 도로가 꽁꽁 얼었거든요. 차가 미끄러질까 봐 조심해서 엑셀을 밟았어요. 어찌나 단단하게 얼었는지 벌써 6일이나 지났는데 녹을 기미가 없는 거 있죠. 덕분에 크고 작은 사고들도 끊이지 않고 있어요. 온 세상을 덮은 눈을 보니 세상의 모든 것이 단단해질 필요가 있나 싶어요. 때로는 단단해서 더 위태롭기도 하네요.
이제 단단함을 향한 짝사랑도 슬슬 저물겠다는 예감이 들어요. 내년에는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요? 이왕이면 제게 잘 어울리는 가치를 만나고 싶어요. 그게 무엇이든 우위를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