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장에 가도 못 산다

3학년 가을 소풍 동행기

by 양마리

[선생님, 저는 어떤 반 버스에 타면 될까요?] 업무용 메신저로 짧은 쪽지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3학년의 소풍이 벌써 이번 주 목요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3학년 학생들의 영어 전담교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소풍에 동행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담임교사에 비하면 아주 사소하고 쉬운 일이다. 맨 뒤에 서서 낙오되는 어린이가 없는지 확인하거나, 중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어린이를 데리고 화장실을 찾아 나서는 것 정도. 담임교사로서 임했던 소풍들은 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멀미하는 어린이가 불편하지 않은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화장실에 갔다 온다던 어린이들이 모두 돌아왔는지 머릿수를 세 번이나 세어보고, 뛰어놀다가 넘어진 어린이를 일으켜 상처를 치료하고, 말 그대로 ‘어린’ 이들이 무사히 소풍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모든 일이 나의 몫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소풍은 나에게 남다른 기대감으로 다가왔다. 무거운 책임감을 훌훌 벗어던지고 가을 공기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첫 소풍이었다.


우리의 행선지는 작은 농촌체험 학교였다. 버스에 올라탄 어린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앉았다. 버스 내 거리두기가 사라진 후의 첫 소풍이라 다소 낯선 풍경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안전벨트가 꼬여 있어 찰 수가 없다며 여기저기 삐약 대기 시작했다. 역시 요즘 어린이들은 안전 의식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바람같이 출동했다. 꼬아진 안전벨트를 푸는 일은 어른에게도 쉽지 않았지만 꾸역꾸역 풀어내 안전벨트를 든든하게 채웠다. 네가 제 기능을 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어린이들을 잘 지켜주길 바란다. 협박성 주문도 함께 채워뒀다. 알록달록 모자와 무엇이 그리 많이 들었는지 몸보다 큰 가방들, 캐릭터가 그려진 음료수(나 때는 헬로 팬돌이와 깜찍이 소다가 대세였는데 요즘은 뽀로로다.)까지 모든 것이 소풍의 경쾌함을 그리고 있었다.


버스는 출발하고 어린이들은 갖가지 모습으로 여정을 즐겼다. 한 어린이는 카메라로 친구들을 찍어주며 깔깔 웃었다. 나에게도 카메라를 들이밀며 포즈를 취하라 강요해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른 어린이는 헤드폰으로 음악을 감상하며 흥얼거렸고, 또 다른 어린이는 창밖의 풍경을 샅샅이 살폈다. 사회 교과서에 나왔던 친환경 수소버스가 지나간다며 눈을 반짝이기도 했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예상보다 10분 더 달리고 나서야 소풍 장소에 도착했다. 기사님은 버스 계단이 가파르다며 먼저 내려 어린이들의 손을 한 명도 빠짐없이 잡아주셨다. 기사님은 마지막에 내리는 나에게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도 잡아줘요?!’라고 말하시더니 대답도 듣기 전에 허허 웃으며 떠나셨다. 어린이들의 소풍에 어른들이 더 들뜬 것 같아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곳은 탁 트인 시골 마을에 있는 농촌체험학교. 뒤로는 작은 천이 흐르고 앞으로는 아담한 산들에 둘러싸인 소담한 곳이었다. 어린이들은 천 앞에 마련된 여러 개의 평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운동장으로 줄지어 이동했다. 걸어가는 길에 작은 다람쥐도 만났다. 너도 나도 다람쥐를 보겠다며 눈을 크게 떠봤지만 이미 바람처럼 사라진 뒤였다. 자연에 취해 걷던 우리가 도착한 곳은 고구마 밭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고구마 밭을 처음 봤는데, 황무지처럼 마른 흙 밭이 달콤한 고구마를 키워낸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린이들은 3열 횡대로 서서 고구마 캐는 법을 들었다. 선생님은 1학년이 체험을 하러 왔다가 호미로 친구만 찍고 갔다고 말하며 ‘여러분은 3학년이니까 더 잘할 수 있겠죠?’라고 어린이들을 자극했다. 호미를 손에 쥔 어린이들의 눈에는 호기심과 열의가 콸콸 차오르기 시작했다.



각자 자리를 배정받고 빼쭉 올라온 고구마 줄기 앞에 선 어린이들은 ‘선생님 지금 캐도 돼요?’라고 물은 뒤, 허락이 떨어지자 무지막지한 호미질을 시작했다. 나는 3학년 어린이들이 이렇게 강인한지 몰랐다. 아까 나한테 음료수 병을 따달라고 했던 어린이는 자기 얼굴만 한 고구마를 힘으로 뽑고 있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위대한 K-호미가 주어졌는데도 말이다. 다양한 포즈로 고구마를 캐거나 고구마에 매달려있는 10살 어린이들은 매우 조급해 보였다. 조금이라도 더 담아 살림에 보탬이 되려는 걸까? 평소 급식에 고구마 맛탕이 나오면 먹지도 않으면서 어린이들의 광기는 점점 커져갔다. 이미 가로가 15cm, 세로가 25cm 정도 되는 비닐봉지가 가득 찼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고구마를 욱여넣고 있었다. 조그만 어린이들 육십여 명이 합심해 고구마 씨를 말리려는 게 분명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그만 담아도 되겠다며 만류했지만, 체험 학교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쇠스랑으로 밭을 더 파주셨다. 어린이들은 한참 더 두더지 놀이를 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험이 끝나고 줄을 선 어린이들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전사처럼 사뭇 비장해 보였다. 자신이 캔 고구마를 품에 꼭 안고 있었고, 옷이 전부 흙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어린이들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다음 체험을 위해 이동하는 어린이들의 뒤를 따라 가는데 고구마가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좁은 봉투에 넘치게 담았던 고구마들이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한 걸음 걷고 줍고, 또 한 걸음 걷고 줍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지쳤는지 작은 고구마는 줍지 않았다. 헨젤과 그레텔이 된 어린이들이 지나간 길에는 빵조각 대신 고구마가 놓여 있었다.


내년까지 먹을 고구마를 잔뜩 수확한 어린이들은 천연염색을 하러 조그만 오두막집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천연 염색의 유래를 설명해주셨다. 『아주 먼 옛날, 개똥이가 포도를 따러 갔다가 옷에 온통 포도 물을 묻혀 돌아온 거야. 개똥이는 ‘에이씨! 뭐가 이렇게 안 지워져’라고 불평했지만 개똥이의 친구 똥개는 그 색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개똥이에게 물었지. ‘네 옷 색깔 어떻게 만든 거니?’ 개똥이는 포도밭에 가면 옷을 온통 물들일 수 있다며 알려줬어. 똥개는 신이 나서 포도밭에 가 떼굴떼굴 구르고 또 굴렀어. 그렇게 똥개는 맑은 보랏빛의 옷을 가질 수 있게 됐어.』 선생님의 재치 있는 설명에 오목조목 작은 눈들이 반짝였다. 어서 해보고 싶은 눈치였다. 선생님은 어린이들에게 손수건을 한 장씩 나눠주고 그림을 마음껏 그리라고 했다. 어떤 어린이는 순식간에 손수건 가득 자기 얼굴을 그렸고, 어떤 어린이는 손 한 마디만 한 그림을 그리는 데도 몹시 망설였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림을 다 그린 어린이들이 쫑알쫑알 떠들기 시작했다.



떠드는 어린이들을 염색하는 곳으로 데리고 나왔다. 선생님은 어렸을 적 목욕하던 빨간 대야에 양파 껍질 삶은 물을 가득 가져오셨다. 이곳에 손수건을 넣고 조물조물- 염색물을 깊이 넣으라고 하셨다. 어린이들은 대야 앞에 옹기종기 잼잼이를 시작했다. ‘선생님 이거 몇 번 주물러요?’ 역시나 어린이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선생님은 백 번 주무르라고 하셨다. 순수한 어린이들은 ‘지금까지 몇 번 주물렀는지 안 셌는데!!’라며 억울해했다. 쭈그려 앉아있는 작은 등이 들썩들썩 열심히 움직였다. 염색을 끝낸 어린이들은 손수건을 돌돌 말아 물기를 쭉 뺀 다음, 나무에 걸린 빨랫줄에 손수건을 널었다. 울긋불긋 낙엽 속에 나란히 걸려있는 손수건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어린이들의 손도 손수건 따라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어린이들에게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고구마를 캐고 손수건을 염색하면서도 자꾸 떠오르던 운동장의 놀이시설. 드디어 어린이들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어린이들은 잔디가 깔린 운동장으로 뛰어 나가 처음 산책을 나온 아기 백구처럼 여기저기를 탐색했다. 운동장에는 그네, 축구 골대, 짚라인과 방방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못 뛰었던 한을 풀려는 듯 최선을 다해 뛰어놀았다. 한 어린이는 뒤통수에 낙엽 한 장을 붙이고 숨을 헥헥 거리며 달렸다. 사랑스러운 헤어핀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방방을 타고 있는 어린이들도 보였다. 어린이들의 뽀얀 얼굴과 발그레한 볼, 위아래로 들썩이는 고운 머리카락, 바닥을 짚고 도약하는 조그만 발과 공중을 부유하는 더 조그만 먼지들. 작은 존재들은 가을의 정취를 아낌없이 누렸다. 그들에게서는 경쾌함과 자유로움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왔다.


행복한 어린이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내가 품었던 작은 존재들이 떠올랐다. 가족 간의 불화로 엄마와 헤어지고, 보호자의 방임으로 겨울에도 여름옷을 입으며, 중학교 선행 학원 숙제를 하다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무리와의 갈등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친구를 잃은 아주 작은 존재들. 어린이들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로 쉽게 불행해졌다. 어린이들의 아픔을 살피다가 나도 함께 눈물짓던 순간들이 참 많았다. 새내기 교사 시절에는 함부로 그 삶을 동정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동정하는 나의 뺨을 찰싹- 때리며 정신 차리게 만들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내 기대보다 자주 웃었고, 자주 행복했다. 마치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무정한 어른들은 이런 어린이들에게 ‘뭐가 그리 좋아서 웃냐?’고 딴지를 걸기도 했다. 그 말 앞에 ‘너는 행복할 자격도 없는데’라는 가시 돋친 말을 숨긴 채로. 그때마다 어린이들은 ‘역시 어른들은 뭘 몰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순식간에 행복해질 수 있는 건 어린이들이 가진 특별한 재주다. 언제든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마법 같은 재주. 어린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꺄르르’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는 건 이 재주 덕분이다. 어린이들만 가지고 있다고 시샘할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 탄생과 동시에 이미 선물 받은 재주이니 말이다. 서서히 잃어버리다가 이제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말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특별한 재주를 간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재주는 더 귀한 법이다.


무성한 잡초 속에 올망졸망 피어난 네 잎의 클로버처럼 소중한 재주. 어린이들이 재주를 네 잎 클로버처럼 코팅해 평생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든 필요할 때 부적처럼 꺼내 쓸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즐거운 상상에 빠져 글을 쓰고 있던 내가 현실로 돌아온 건 누군가 복도에서 ‘꽥!’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잠에서 번뜩 깨어난 미어캣처럼 일어나 문 언저리를 내다보았다. 문 밖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복도가 떠나가라 웃는 어린이들이 보였다. 이런 글을 쓰고 나니 ‘복도는 공공장소잖아. 조용히 다녀야지!’라고 훈계하던 과거의 내가 옹졸하게 느껴졌다. 수업 시간도 아닌데 좀 떠들면 어떤가. 재주는 장에 가도 못 산다는데 재주꾼들이 신나게 놀 수 있도록 내가 좀 참아야지. 나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려 정신없이 글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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