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행 급행열차

by 양마리

지난해 가을, 나에게 뜨거운 감자가 하나 있었다. 나를 고민에 빠뜨린 그 감자는 바로 종교이다. 나의 정체성을 먼저 밝히자면 나는 불교에 가까운 무교인(?)이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나도 쓰면서 헷갈린다. 그래도 정의해보자면 [일요일마다 하는 거 없이 집에서 놀고먹으며 기도도 따로 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인터넷에서 불교 글귀를 보고 감동받고 캡처해둔다.] 정도로 정리하고 싶다. 한 마디로 종교랑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왜 종교 이야기를 꺼내느냐면.


나는 꽤 오래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사춘기조차 겪지 않은, 흔히 말하는 ‘순둥이’로 자라온 내게 세상은 매 순간이 보스몹이었다. 무고한 나를 향해 불을 쏴대는 다혈질 몬스터, 은근슬쩍 내게 붙어 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몬스터,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 나를 조종하려 드는 가스라이팅 몬스터, 듣기 싫은 소리를 멈추지 않는 꼰대 몬스터까지… 어릴 적 나는 가족과, 때로는 친구와 팀을 이뤄 몬스터들을 물리쳐왔다. 내 역할은 멀리서 힐(Heal)을 쏘는 것 정도. 사는 내내 운 좋게도 나를 대신해 싸워주는 사람들이 많았다.(지금 생각해보니 운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어른이 되니 지금부터는 혼자 모든 몬스터를 잡으라는 것이다. 심지어 사회 속 몬스터들은 훨씬 레벨이 높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홀로 세상에 맞서야 했다. 그렇게 맞선 세상 앞에서 나는 생각보다 더 나약했고, 쉽게 넘어졌다.


넘어질 때마다 남은 상처들이 점점 늘어나자 나는 몹시 울적해졌다. ‘나에겐 그들을 물리칠 힘이 없어.’라는 생각이 나를 더 무력하게 만들었다. 하루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영조’라는 친구를 만났다. ‘영조’는 ‘영혼의 조각’의 줄임말이다. 그녀와 나는 가장 안쪽의 마음까지 닮아 있어 서로를 영혼의 조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마음이 힘들 땐 영조를 만나 치유받곤 했다. 내가 삶의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자 영조는 한참 동안 나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다 끝나갈 무렵, 영조는 ‘누구나 마음에 신경 쓰이는 구멍 하나 있잖아.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지독한 구멍 말이야. 나는 종교가 그걸 채워준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나는 영조의 귀여운 전도에 12년 동안 노출되었기 때문에 면역이 아주 높은 상태였다. 또 장난을 치는구나 싶어 그날도 ‘웃겨 증말!’ 콧방귀를 뀌며 넘겼다. 그러나 그날은 조금 달랐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영조의 말이 둥실둥실 머릿속에 떠올랐다. 꼭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종교의 힘을 믿어보라는 다른 방향의 ‘전도’였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말은 꽤 오랜 시간 마음에 맴돌며 내내 나를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다.


나는 영조의 조언을 일부 받아들이기로 했다. 종교를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된다면 굳이 밀어낼 것도 없겠다는 심정이었다. 나는 천주교 미션스쿨을 졸업한 터라 성당이 가장 익숙했다. 고등학생 때 신부님, 수녀님께 수업을 듣고 강당에서 미사를 드린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왕 종교를 가진다면 친숙한 천주교가 가장 낫겠다는 판단이 들자 나는 용기 내 성당 문턱을 넘었다. 봉사자님은 마침 10분 뒤에 저녁 미사가 있으니 직접 보고 가라고 하셨다. 가장 뒷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미션스쿨이 향후 종교 선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얼렁뚱땅 상상 논문을 하나 써냈다. 그렇게 영양가 없는 상상을 하다 보니 성가가 울리며 미사가 시작됐고 나는 희뿌연 기억을 더듬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호경을 그었다. 미사는 여전히 경건하고 엄숙했다. 그곳에 앉아 미사보를 쓴 사람들을 바라보니 우습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웅웅 울리는 마이크 속 신부님의 음성은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각종 성인들의 이름이 등장하자 살짝 나른하기도 했다. 다른 신자들을 구경하며 ‘저 사람들은 뭘 바라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품은 채로 멍을 때리다가 짧은 미사가 끝났다.


미사 후에는 성경 공부가 이어졌다. 성경에는 하느님이 귀가 멀고 말을 못 하는 사람을 만지자 귀가 트이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쓰여있었다. 삐용- 삐용- 경보가 울렸다. 나의 고장 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성경의 속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자꾸만 물어보고 싶어졌다. ‘이게 진짜라고 믿는 걸까요?’라고. 간신히 물음표를 쫙쫙 찢어버린 후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그러나 친절한 선생님은 궁금한 게 있냐고 물으며 다시 한번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선생님, 이게 진짜일까요?”라고 물었다. 내뱉고도 후회한 질문이었으나 선생님은 상징적인 의미라고 다정하게 말씀해주셨다. 간절히 원하는, 불쌍한 자들을 품으시는 하느님이라고 하셨다. 그러자 ‘나는 불쌍한 자일까?’라는 의문이 또다시 머리를 들이밀며 등장했다. 개운하지 않은 모습으로 짐을 챙기는 나에게 선생님이 말했다. ‘그냥 아무런 희망도 없을 때 기댈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다가 희망이 보이게 되면 좋은 거죠.’


내가 마음을 달리 먹은 건 10월의 어느 날. 금요일에 백신을 맞고 주말을 푹 쉬고 출근한 월요일이었다. 큰 걱정 없이 출근했는데, 오전 내내 심장이 빠르게 뛰는 증상이 있었다. 쿵쿵 울리던 심장은 오후가 되자 조금씩 아파오더니 급기야 조여오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조퇴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프긴 한데 구급차를 부르기엔 좀 멀쩡해서 자가용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정신없이 운전을 해 병원에서 3분 거리까지 도착했을 무렵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갓길에 엉망으로 차를 던져놓고 택시를 불러 병원에 도착했다. 당시는 백신 부작용에 대해 온 국민이 들썩이던 때였다. 혹시나 하는 불안이 나를 압도해 대기하는 내내 심장이 두 배로 뛰었다. 그래도 다행히 중환자가 많지 않아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온몸에 달렸고 코에 산소 관을 꽂았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산소 관을 내가 끼고 있다니… 아직 죽기엔 너무 어리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보호자 언제 오냐는 말만 반복했다. 엄마가 도착하자마자 의사 선생님은 엄마를 데려가 아주 다급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내가 급성 백혈병일 수도 있다고 했다.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에 온 주변 환자들이 토끼 눈이 되어 나를 바라봤다. 옆 침대의 보호자가 조심스레 무슨 백신을 맞았냐고 물어봤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안정을 찾으려 애썼다. 엄마는 굳은 표정이지만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와 나를 달랬다. 그때 갑자기 의료진들이 나를 침대 째 옮기기 시작했다. 덜컹덜컹 움직이는 침대, 날카로운 쇠바퀴 소리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난 어디로 가는 거지…’ 생각에 잠겨 천장을 바라보는데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병원 천장에 새파란 하늘 시트지가 붙어있었다.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달리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 바라본 하늘은 내가 마치 천국행 급행열차에 타있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열차는 바쁘게 달렸다.


그때 번뜩 ‘그냥 아무런 희망도 없을 때 기댈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세요.’라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나는 성당에 갔다.], [나는 백신 부작용으로 백혈병에 걸렸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두 사건이지만 나를 지배하고 있는 비이성의 힘은 강했다. 머리에 지지직 스파크가 일며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성당에 가고 싶어 졌던 건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어! 지금이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잖아, 이거 맞다!’라고 말이다.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나는 무척 진지했다. 이 모든 일은 신이 만든 Big event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때부터 간절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저 데려가지 마세요. 제발요.’ 모든 치료와 검사가 끝날 때까지 나의 기도는 멈추지 못했다. 왠지 중간에 멈추면 벌주듯 내 명을 끝내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흐르니 기도가 무색할 만큼 나는 금세 회복했다.


기도로 백혈병을 낫게 한 놀라운 결말은 아니다. 백혈병은 혈액을 담는 병을 잘못 사용해 발생한 오진이었다. 오진이라는 말에 잠시 화도 났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퇴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집에 도착해 숨을 크게 들이쉬며 침대에 누웠다. 후-하-후-하 숨을 깊이 내쉬며 이제 심장이 아프지 않은지 다시 살폈다. 침대에 누워 익숙한 천장의 벽지를 보고 있자, 병원 천장에 붙어있던 하늘 시트지가 떠올랐다. 천국행 급행열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내가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신. 필요할 때만 찾는 것도 신앙인가. 그러면서도 옅은 경계선을 넘은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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