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셈법으로 아이는 아빠 따라 해외에서 공부를 하며 얻는 '득'이 '실'보다 클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그렇게 우리는 큰 망설임 없이 짐을 싸서 익숙했던 한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의 출발을 하게 되었다.
여행도 아닌데 마냥 설렘만 가지고 있다간 앞으로의 일상이 더 힘들어질게 뻔하다는 건 이미 눈감고도 알만한 나이이고, 또 원래 성격상 걱정만 한가득이고 끌어안고 있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매우 담백하게, 단순하고 담담하게 "그래, 가보자"를 외치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익숙한 주변과 쿨한 안녕을 고한 채...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나의 배움을 활용한 결혼 전 직업,
그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내 이름 앞에 붙던 첫 번째 타이틀.
출산 후 "OO맘" 으로써의 두 번째 타이틀을 거쳐,
이제 나는 낯선 곳에서 나의 세 번째 직업을 성실히 수행하는 중이다.
나의 성실함이란, 어쩜 슬프게도 요즘 같은 세상에 남들이 보기엔 매우 별 것 없고, 매우 비생산적으로 보일 수 있는 남편 뒷바라지, 아이 뒷바라지가 메인이 된다. 남편과 아이가 메인이 되고, 나는 그들의 서포터로써 존재하게 될 테니까. 그럼 누군가 묻겠지?! 한국에서의 주부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거 아니냐고, 어차피 밥하고 살림하는 주부의 삶은 똑같은 거 아니냐고...
다르다, 엄연히 다르다.
주재원 와이프의 홈그라운드였던 한국에서는 상향평준화 된 요즘 여성상에 꽤나 어울리게 육아와 교육을 능숙(?)하게 해내기도 했지만, 때론 본인만의 역량을 활용한 사회생활도 겸하며 '나'라는 사람의 영역이 분명 존재했다. 절대로 전업주부의 일상을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하다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사회생활이 가능했던 곳이 홈그라운드였다는 뜻일 뿐이다.
하지만, 홈그라운드를 떠나 주재국으로 온 순간부터 나는 가족, 친지, 미운 친구, 고운 친구 하나도 없는 새로운 커뮤니티 속에서 인간관계를 새롭게 형성해나가야 한다.
인생 흑역사가 있는 경우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새 삶을 꾸린다는 면에서는 좋을 수 있겠지만, 그 새롭게 맺은 대부분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나와 상대의 관계 사이에 남편이, 또는 아이가 존재하는 그런 관계이다.
나의 행동 하나에 남편과 아이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가깝다면 가깝고, 불편할 수 있다면 불편한 사회생활을 하며 이제 나는 'OO와이프'로 'OO엄마'로 존재하게 된다. 특히나 주재국 내의 한인 커뮤니티가 좁을수록 더 많이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이미 성장과정을 수십 년 거쳐가며 비슷한 가치관, 비슷한 동네, 비슷한 커뮤니티, 비슷한 백그라운드 위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다름'으로 인한 불편함보단 '익숙함'으로 인한 편안함이 우선이었는데, 주재국에서는 각자의 백그라운드가 다르고, 단지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쉽게 어우러지다 보니 상대에 대한 이해도도 많이, 생각보다 많이 높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끌어안겠다는 마인드의 포용력쯤은 갖추고 있어야 내 삶이 편해진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고 나를 바꿔야 한다는 세상의 진리는 여기서도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낯선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넘어서면 이젠 언어로 인한 불편함을 마주해야 한다.
주재국이 비영어권이라면, 영어도 현지어도 한국어도 아닌 또는 세 가지 언어가 대화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긴 일상다반사이고, 때론 손짓, 발짓하며 언어 수준이 유아기로 돌아간 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웃기기도 하지만 진지하게 현타가 오면 자괴감이 들 때도 생기게 된다.
학교에서 보내주는 텍스트 연락은 요즘 필수품인 번역기도 활용하고 어려움이 없으나, 학부모 모임, 학교 상담 등의 라이브 상황은 눈치코치 껏 잘 넘겨야 하는 센스도 장착해야 한다.
아이 학교 관련해서 영어가 네이티브인 학부모들이라도 만나면, 지난 세월 영어공부에 대한 게으름을 자책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좀 더 부지런히 영어 공부 좀 더해놓을껄,껄,껄 무한 후회를 하며 다시 세련된 척 정신줄을 붙들어 메고 있어야지.
그래도 만국의 공용어인 영어는 눈치코치를 살려 그 벽을 넘긴다고 해도, 이제 마지막으로아이의 학업 현실을 분명하게 바라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주어진다. 자녀가 유아기가 아닌 이상 한국 엄마의 대부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의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 생각할 것이다.
조금 더 어려서 올걸, 조금 더 커서 오면 좋았을걸 등등..
어리면 어린 대로 영어 익히느냐 한국어가 부족해서,
조금 크면 한국 아이들의 고도화된 사교육을 어찌 따라갈지 등등..
주재기간의 학업적 공백에 대한 걱정이 각자마다 크게 자리하고 있다.
저학년은 저학년대로 귀임 후 한국 교육을 걱정하고, 고학년은 고학년대로 부모도 겪어보지 못한 글로벌 입시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게다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엄마, 아빠는 모르는, 누군가는 미국의 교육과정을, 누군가는 영국의 교육과정과 입시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과정을 잘 헤쳐갈 수 있을까?
가족 뒷바라지에, 교육과정 공부에... 주재원 와이프는 전천 후 능력자여야 하나보다.
재밌든 어렵든 정해진 기간 동안 나는 이곳에서의 삶을 살아내야 할테고, 이제부터 내 삶은 한 곳에서의 꾸준하고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의 형태가 아닐 것이다.
늘 변화무쌍할 테고 시작과 끝이 존재할 인생의 사이클을 겪는 주재원 생활.
주재기간이 끝나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곳이 익숙한 곳이든, 새로운 곳이든, 늘 새로 시작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지만, 늘 그렇듯 혼자서 긍정회로를 돌려본다.
어디서 새 출발을 얼마나 하든, 눈에 보이는 성장과 결실이 적더라도 내 인생에는 쉼표가 많이 찍히는 거라 생각하자. 그 속에서 좀 더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들여다보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