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외국엄마들 또는 현지인과 사회생활을 이뤄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인 커뮤니티에 완전 배제되지는 않고 어느 정도 연결은 있기 때문에 양쪽으로 친구들을 겸하며 지내는 경우가 더 많다.
보통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더 필요하고 유용한 정보가 많이 오고 가기 때문에 이 사회 적응을 위한 꿀팁은 영어도, 현지어도 아닌 한국어로 전달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요즘은 해외살이도 카페, 밴드, 카톡 등 SNS 정보교류가 워낙 활발하다 보니 사실 비대면으로도 정보는 찾을 수도 있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 아닌가!
네이버 지식인에 난무하는 부정확한 정보의 홍수처럼 여러 채널의 SNS 보다는 신뢰할 만한 인간관계에서 오고 가는 정보들이야 말로 현지에서의 내 삶을 업그레이드시켜 준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인간관계를 얼마나 '적극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임하느냐에 따라 해외생활,
특히 해외살이 초기의 삶이 좌우되는 것 같다.
적당히 독립적이지만, 적당히 적극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어디든 그렇겠지만, 해외에서 한국 사회는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주변에서 알아서 '어머나,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하며 두 팔 벌려 손 흔들어주는 커뮤니티가 아니다. 물론 첫인사는 진심으로 환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수년차 이곳에서의 삶을 살고 저마다의 바쁜 생활을 이뤄가시는 분들은 새로운 풋내기를 나서서 반겨주거나 가이드해 주기가 조심스러운 곳이 또 주재원 와이프들의 커뮤니티이다.
이 말이 결코 고인 물인 사람들이 야박하고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니, 그리고 그 상대가 불편해할 수 있고, 남편과 아이와 어떻게 엮여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상대에서 호의의 제스처를 보일 때까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스러워하는 것일 뿐이다.
첫인사는 시작일 뿐이니... 그렇다면 본격적인 방법은?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적극성이란 내가 움직이는 것이다.
상대가 부담 느끼지 않게끔 내가 먼저 움직여서 연락하고, 내가 먼저 움직여서 물어보고, 내가 먼저 움직여서 다가가기.
더 친밀해지기까진 '시간'이라는 물리적 개념이 필요하지만, 적당한 교양을 갖춘 지성인이라면 해외에서 같은 동포끼리 처음부터 관계를 밀어낼 분은 많지 않다.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하면 따뜻하게 받아주시는 분들이 훨씬 훨씬 많다.
다만, 이 썸은 쌍방이어야 한다.
내가 다가간 만큼 상대도 거리를 좁혀주는 분이라면 다행이다.나의 시그널을 읽어주는 분, 코드가 맞는 분, 그런 분들과 함께 함으로써 해외살이의 만족도는 배가 된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해외생활의 만족도를 가른다.
결국 해외 생활은 '사람'에 의해서 만족도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극성' 다음으로 이방인의 빠른 사회적응을 위한 도구는 누가 뭐래도 '언어'이다.
여기는 생전 처음 와서 사는 남의 나라 아닌가?!
여행으로 와서 관광객에게 최적화된 어떠한 것들만 골라 접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내가 집에서만 밥먹고, 자면서 지낼게 아니라면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는 이 사회를 알아야 한다.
이 사회와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언어공부를 해야 한다.
언어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알파벳같은 기본 문자 보다 '숫자'를 먼저 익히라고 추천하고 싶다. 문자도 필요 없고, 쓰거나 읽지 않아도 되니 1~100까지라도 숫자를 익히고 외우라는 건 아마도 내가 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 전공자인 나의 입에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기본 문자부터가 아닌 다짜고짜 숫자를 익히라는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웃프다.
나의 웃펐던 에피소드를 풀자면...
도착 이튿날, 유명한 카페에 갔다.
사람들은 많았고, 멋지게 주문은 영어로 끝냈지만, 나의 최애 '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 기다리길 20분...
너무 안 나와서 뚜벅뚜벅 다가가 영수증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이미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나의 식어버린 라떼.
37이라는 숫자로 나를 불러도 나는 못 알아들을 뿐..
심지어 혹여라도 놓칠까 봐 카운터 바로 코 앞에 앉아서 픽업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또 얼마 후, 슈퍼에 갔다.
다진 고기 250g을 사고 싶다.
투 헌드레드 핍티 그램을 알아들어주면 좋으련만..
현지인만 오는 슈퍼의 직원이 마스크를 낀 채로 말하는 어리버리한 동양 아줌마의 말을 알아듣겠는가..
수화처럼 손가락을 동원해서 투 헌드레드를 표현하거나, 핸드폰 계산기를 꺼내 보여줘야 한다.
어떻게든 뜻은 통한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몇 번 같은 방법을 사용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현타가 왔다.
내가 말 못 하는 바보가 되었구나...
이것쯤은 또박또박 제대로 주문해야 하는데!
이 두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기본 문자와 단어, 기초 회화보다 급한 것은 현지어의 숫자 익히기였음을.
기초부터 배우려던 나의 계획은 고이 접어 간직하고, 그때부터 시작된 서바이벌 현지어 익히기!
눈만 돌리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하루 종일 둘러 쌓여있는 환경.
뭘 알아야 읽을 수가 있는데 읽을 수 조차 없는 자괴감이란....
기초문자 익혀 글을 읽는 거는 그래도 금방 이루어지겠지만, 단어를 익혀가고 폭을 넓혀가는 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다. 하지만 그렇게 단어와 언어를 알아야 이 사회를 읽어가며 파악할 수 있다.
이 사회를 이해하고 시스템을 익히는 순간 나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10년도 넘게 손 놓은 영어이니 큰 기대는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영어 베이스에 무대뽀 현지어 구성으로 이 사회를 슬슬 탐험해 보기로 했다.
두려움보단 호기심이 큰 상태지만, 한 가지 장벽이 있다면 현지어의 벽인데.. 까짓것 21세기의 혁명템 번역기가 있으니 세상 무서울 게 없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
(tip. 한국어-현지어로 바로 번역하면 어색하기 그지없는 표현으로 나오게 되니, 꼭!! 영어-현지어로 번역해서 사용하자. 그러면 꽤나 쓸만하다.)
나는 아직 현지어에 능통하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 이곳의 이방인이다.
현지 언어와 현지 문화를 잘 알지도 못하고,
잘 알지 못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낮은 자세로 뭐든 존중하는 마음을 유지하고 조심하는 것이다.
학생 때는 체계적으로 외국어들과 그 나라의 문화들을 배웠다면, 이젠 나는 뭐든지 몸으로 배운다.
하나를 실수하면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참 슬프게도 실수나 손해가 동반돼야 배움을 얻는 신기한 인생의 진리다. 웃픈 현실.
다행히 생존과 직결되는 단어들은 금세 기억된다.
단지언제까지 유아기 현지어를 구사해야 하는지 나도 나를 모를 뿐.
몇몇 생존과 관련된 단어를 좀 익히고, 숫자를 익히고 나니 솔직히 말하면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
약간의 익숙해짐과 숫자와 간단한 영어 회화로 사실 너무 편안(?)하게 살고 있어서 언어 공부의 동기부여가 안되고 있는 게 큰일이긴 하다.
이 정도에 눈치코치 더해서 살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 이긴 하다. 역시 사람은 편안함 속에서는 성장을 꿈꾸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