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일리 프로방스 May 15. 2023

장미꽃 필 무렵, 장미와 가시 그 아름다운 부조화.

                             장미꽃 필 무렵


벌들에게만 여왕이 있는 게 아니다. 꽃들에게도 있다. 봄의 끝자락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갈 즈음 자연은 화려한 대관식을 준비한다.


꽃의 여왕 장미의 대관식 말이다. 사방에 핀 꽃들은 이제 여왕을 향해 경배를 드려야 한다.


장미꽃이 필 무렵 만물은 날개를 활짝 편다. 오월의 순풍이 새싹을 만지며 지나갈 때 꽃의 여왕은 가벼이 몸을 떨고 있다.


지금 이 시간 지상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의 축복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다.


장미꽃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꽃은 흔치 않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쐐기 문자에도 등장할 정도니까.


무려 오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미는 시인들과 작가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말이다. 그들이 스토리를 전개할 때마다 장미를 귀한 소재로 사용했던 것이다. 약방의 감초만큼이나 필수재료였다고 할까.


만일 제우스 신이 꽃들에게

왕을 만들어 준다면

그 이름을 장미라 했을 것이다

장미야말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제 이세기 로마 작가

   아킬레스 타티우스


                     장미꽃 히스토리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 이야기에는 슬픔의 이슬방울이 맺혀 있다. 연인 아도니스가 죽어가는 동안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발을 찔렀다.


여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흰 장미꽃을 붉게 물들였다. 붉은 장미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는데.


장미꽃이 필 무렵 쉽게 볼 수 있는 건  화려함을 두른 붉은색 장미다. 신화 속 이야기의 사실여부를 떠나 붉은색 장미는 서양에서 유입된 것 같다. 그것도 이십 세기가 시작되면서의 일이다.


전통적으로 동양의 장미는 그리 화려한 꽃이 아니었다. 다만 여러 가지 색으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미꽃은 노란색이 대다수였다.


동서양 모두 서식지에 따라 장미의 주된 색상이 다르다 보니 관점도 달라졌다.


장미에게는 사람을 유혹하는 치명적 매력이 있다. 이는 서양권에서 보는 시각이었다. 반면 동양권에서는 우아하고도 매력적인 아름다움이 크게 부각되었다.


요염한 꽃송이 짙은 초록 사이에서 빛나니

금가루로 곱게 꾸미고 교태 부리네

가시 돋았다고 꽃의 허물로 여기지 않기는

꺾으려는 손길을 막으려 함이리라

      고려시대 이규보


미풍이 건듯 불자

수정주렴 움직이고

한 시렁 장미꽃에

집안 온통 향기롭네.

    작자 미상

   당나라 시인



무엇보다 장미의 매력은 짙은 향기를 떠나 말할 수 없다. 여기에 정열적으로 타오르는 붉은 색깔의 장미를 더해 보라.


이 보다 더한 화려함의 극치가 있을까. 장미가 진정한 꽃의 여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름다움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존재한다. 아름다움은 절대권력을 넘어선다. 무소불휘의 권력이란 아름다움의 왕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절대권력을 넘어서는 아름다움


당나라가 최전성기를 지나던 시절에 절대권력자는 현종황제였다. 그는 황궁에 수많은 미녀들을 두고 살았다.


당시에 왕을 만나려면 절세미인이라도 짙은 화장을 해야 했단다. 일종의 불문율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만 예외를 두었으니 그가 양귀비였다. 양귀비의 출현은 다른 여인의 미모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태양이 떠오르면 촛불은 필요 없어진다. 양귀비가 아름다움을 통해 절대권력을 넘어선 건 이 순간이었다.


 당나라 황제 현종은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어 자발적으로 권력을 이양한 물이 되고 말았다. 어떤 역사에서도 찾기 어려운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들의 애정행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이 시인 이백이었다. 칼칼한 성미를 참지 못한 그는 왕궁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더러워 못해 먹겠다면서.


사정이 어떠하든 장미와 양귀비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대표하는 여왕들이 분명하다.


경국지색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한 여인의 아름다움이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뜻의 경고문이다. 아름다움 속에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가시가 숨겨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장미는 가시를 품고 있다. 양귀비의 아름다움은 장미꽃에 돋아난 가시와 같았다.


결국  그 가시가 임금을 찔러 거대 제국 당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았던가. 이런 일은 지금 여기저기서 되풀이되고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에 홀린 후 가시에 찔려 패가망신하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아름다운 부조화


장미의 뾰족한 가시는 연인에 주는 사랑의 상처를 뜻하기도 한다. 짙은 초록잎 사이로 붉은색의 장미가 곱게 피어오르면 가지마다 가시가 돋쳐 나는 것이다.


이름다운 꽃을 꺾으려는 유혹의 손길은 언제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자연은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시가 있어야 한다. 이 또한 장미가 지닌 매력 아닐까.


꽃의 가장 좋은 면을 살펴보라

당신은 장미의 가시를 불평하지만

나는 장미에 가시가 돋쳤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신에게 감사한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카


장미와 가시는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동반한다. 둘은 불협화음을 일으키지만 동시에 멋진 조화를 아니 아름다운 부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동양에 양귀비가 있다면 서양에는 클레오파트라가 있다. 그들을 제쳐두고 미인을 논하기 어렵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명장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장미꽃들을 준비했다.


꼬드김에 넘어간 안토니우스는 훗날 클레오파트라에게 보란 듯이 배신당하고 말았다. 아름다움의 여왕이 숨겨놓은 가시에 찔리고 만 것이다.


자살을 택한 그가 죽어가면서 다음의 유언을 남겼다던데. '내가 죽으면 무덤을 장미꽃으로 덮어 주시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용사의 유언치 고는 꽤나 낭만적이다.


그가 진작 셰익스피어에게 한 수 배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시대가 달라 아쉽다.


여자는

장미와 같아서

한 때는

그 아름다운 꽃송이를

보여주지만

어느 틈에

시들어 버린다네.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가의 이전글 작약꽃 이야기, 이등이라 말하지 마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