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으로 시작되는 나의 새해
간절히 그분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마음, 크리스마스를 의미 있게 기대하는 본질적인 기다림.
나에게 새해는 언제나 대림절에서부터 시작된다.
대림절이 품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사야 선지자가 외쳤던 것처럼 높은 곳은 낮아지고, 낮은 곳은 높아져 마침내 모든 것이 평평해지는 세상이다.
그 나라가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라며 나의 작은 소망도 그분 앞에 조용히 내려놓는다.
11월 30일, 대림절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소망 (Hope)의 촛불을 밝힌다.
이어 평화 (Peace), 기쁨 (Joy), 사랑 (Love)의 촛불이 한 주, 또 한 주, 어둠 속에 천천히 더해진다.
촛불 네 개가 완성되는 동안 고난과 가난, 질병과 슬픔, 폭력과 혼란을 견디는 이 세상 가운데 희망과 평화와 기쁨과 사랑이신 그분을 기다리는 마음도
조금씩 깊어진다.
이 시기가 되면 가족과 이웃, 그리고 더 먼 곳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떠올리며
삶의 예산과 마음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 본다.
누군가에게 조용히 건네질 작은 온기를 준비하며
말 그대로, 빵을 물에 던지는 계절이다.
기다림에 얽힌 평생 잊지 못할 나만의 순애보(殉愛譜) 한 장이 떠오른다.
젊은 날, 기차역에서의 기다림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안양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그는
다행히도 편한 보직 덕에
두세 주에 한 번은 휴가를 나올 수 있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니, 부대에 전화해
TMO 타고 오는 그를 대구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특별히 치마 정장을 차려입고, 평소 잘 신지 않던 높은 구두까지 신고 의성에서 대구역까지 마중을 나갔다.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개찰구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시작된 기다림.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세 시간, 네 시간…
혹시라도 엇갈릴까 봐 화장실도 못 가고
꼿꼿이 그 자리를 지키며 기다렸다.
다섯 시간이 훌쩍 넘는 기다림 끝에
그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타려던 기차를 놓치고,
다음 TMO 열차까지 연착되면서
그렇게 늦어진 것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의성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우리는 급히 찻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종이 가방에서 신문지에 둘둘만 모과를 꺼내 내밀었다.
부대 근처에서 나 주려고 직접 따왔다고.
짧디 짧은 한 시간가량의 데이트가 전부였지만, 퉁퉁 부르튼 종아리도 아랑곳없이 그를 만났다는 사실만이 벅찼던 기억, 다섯 시간 넘는 나의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었었다.
그가 ‘꼭 온다’는 확신 하나로 버틸 수 있었던 기 다 림 이었다.
기다림에는 늘 과정이 담겨 있다. 돌아보면 결과만큼이나, 그 과정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진료를 받고, 검사를 하고, 마음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고, 수술과 회복의 시간을 지나며 견디는 그 모든 과정에 간절한 마음을 얹어 쾌유를 소망하게 된다.
해마다 유난히 치유를 소망하는 기도가 깊어지는 한 해의 끝자락, 나는 간절한 마음을 얹어 새해를 대망한다.
나의 진짜 새해는 화려한 폭죽이나 달력의 첫 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어둠을 뚫고 작은 촛불 하나가 켜지는 그 순간,
대림절에서 조용히 열린다.
빛을 기다리는 이 고요한 계절에 나는 다시 한번
그분을 소망하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