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크리스마스 풍경
북미의 크리스마스 문화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분명 같은 12월이지만 마음에 와닿는 결은 예전 같지 않다.
1. 무엇보다 종교적 의미가 희미해졌다.
교회에서 대강절을 지키고,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이 무대에서 성극을 하던 때가 있었다. 카드에도 ‘Merry Christmas’를 적고, 그 한 줄의 인사 안에 기쁨과 감사가 담겼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종교적 표현 대신 중립적인 문구들이 앞서게 되었다. Season’s Greeting, Happy Holiday 같은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서, 카드에서 ‘Jesus’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밀려났다.
스무 해 전쯤, 수요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성공회 교회 간판에 적혀 있던 글이 마음을 찌른 적이 있다.
“Keep the Jesus Christ in the Christmas.”크리스마스 안에 예수님을 잃지 말라는 짧지만 강한 한 줄이었다.
2. 선물을 주고받는 방식도 바뀌었다.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집집마다 선물을 전해주던 그 상상 속 풍경도 사라지고, 북미의 크리스마스는 어느새 ‘아마존 시대’가 되었다. 창가에 놓인 반짝이는 선물 상자 대신 갈색 박스가 쌓여가는 모습이 더 익숙하고, 클릭 한 번이면 다음 날 문 앞에 선물이 놓인다. 마음을 담아 카드에 적던 긴 글 대신 e-카드나 기프트카드 한 장이 메시지처럼 도착하는 풍경도 흔해졌다.
나도 한때는 직접 만든 우동소스와 레몬·사과청을 병에 담아 지인들에게 전하곤 했다.
병을 소독하고 얇게 저민 레몬과 사과 위에 달콤한 꿀을 듬뿍 담아 넣었던 수고와 정성,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함께 선물하던 시절.
그 따뜻한 온기를 오래 붙들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3. 거리의 풍경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집 지붕 끝까지 랜턴을 달아 올리던 풍경이 흔했다.
집집마다 콘센트를 이어 붙여 장식한 라이트가 골목 전체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우리 가족도 아이들이 어릴 때 랭리에 있는 커다란 집 네 채를 이어 장식한 거대한 크리스마스 라이트를 구경하러 가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화려한 장식은 드물고, 소박한 트리 하나, 창문 가장자리의 조명 정도가 일반적이다. 전기료도, 외부 장식 비용도 만만치 않은 시대가 되었다.
4. 크리스마스 음악도 들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길을 걷기만 해도 캐럴이 울려 퍼졌다. 커피숍에서도, 슈퍼에서도, 쇼핑몰에서도 ‘Silent Night’, ‘Joy to the World’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밴쿠버에서는 크리스마스 음악을 찾아 듣지 않으면 들을 일이 없다. 상업적 공간에서 종교적 메시지가 담긴 노래는 점점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11월 말부터 12월 한 달 내내 일을 하며 ‘12월의 찬양’을 틀어놓고 마음속 빈자리를 채워본다.
5. 다문화 속의 크리스마스
밴쿠버의 학교들은 크리스마스 며칠 전이면 학예회 같은 콘서트를 연다.
예전에는 캐럴송과 성극이 중심이었고, 무대 위의 아이들은 아기 예수님을 향한 노래를 부르고 목자와 천사로 분장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종교적 언어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 한다.
여러 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이니 각 사람이 가진 종교적 배경을 고려한 배려라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본래의 의미가 서서히 흐려지는 듯해, 그 배려가 양날의 검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크리스마스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선물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한 선물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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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이 주고 간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
늦가을부터 시작되는 밴쿠버의 우기.
겨우내 내리는 비와 습기로 안개가 짙게 깔린 도시에서, 우리는 서양식당을 개조한 작은 공간을 예배처소 삼아 소박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 해 겨울, 모처럼 내린 눈 덕분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았지만, 부풀어 오른 마음과 달리 현실은 팍팍했다.
다음 달 렌트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성탄의 기쁨으로 예배를 드렸다.
예배 중간, 캐나다 친구 Ron이 예배실로 들어왔다.
한국전쟁 참전 경험이 있던 그는 한국말을 모르지만 한국사람을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영어 이름 ‘Doreen’도 그가 지어준 것이었다 (따뜻한 뜻을 담아지어 준 나의 영어 이름이 참 좋다). 전쟁 후유증으로 오랜 시간 정신병력을 앓았던 그는 복지 혜택과 작은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대인관계가 힘겨운 그였지만 남편에게만큼은 늘 마음을 열었다. 남편은 그에게 상담도 해주고, 때로는 말동무도 되어주곤 했다.
“예배 후 그는 우리 집에서 차와 다과를 나누며 한참을 웃고 담소를 나누었다. 언어는 달랐지만 마음이 통했기에, 이방 땅의 겨울이 낯설지 않았고 성탄의 기쁨을 나누기에는 충분했다.”
그가 떠난 뒤, 문 앞에 놓인 낡은 007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되고 손때 묻은 가방 속엔 뜻밖의 선물이 들어 있었다.
꼬깃꼬깃 접힌 500불,
중고 가게에서 구입했을 남편을 위한 조끼 한 벌,
그리고 그의 name card (명함)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맥도널드와 버거킹, KFC에서 할인쿠폰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그의 빠듯하고 소박한 일상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에게 내어준 500불,
중고 가게에서 사 온 조끼,
그리고 작은 네임카드 한 장—
그 선물은 가난하고 메마른 우리의 성탄 한복판으로 작은 예수처럼 걸어 들어와 진짜 사랑과 나눔이 무엇인지 보여 준 표징이었다.
그날 밤, 안개가 걷히고 오랜만에 맞는 와이트 크리스마스 속에서 찾아온 뜻밖의 선물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대림절의 촛불처럼 그분의 사랑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우리 마음 한가운데를 밝혀 주었다.
세상의 크리스마스가 여러 모습 속에 묻히는 때에도 작은 예수께서 여전히 우리 곁에 오셨음을 기억하며 나는 다시 한번 그분을 소망하며 새해의 첫 장을 펼친다.
"My children, strive to share what you have with your neighbors. Just as I obeyed the Father and gave Myself for you, you also open your hand and cast your bread upon the waters. In a few days, it will return to you, overflowing and abundant."
Ron의 네임카드 뒷면에 적혀있던 글귀,
산책하다 찍은 우리 동네 가장 화려하게 꾸민 크리스마스 장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