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의 퇴근길
화요일과 수요일, 일주일에 두 번 일을 마친 나는 둘째와 함께 퇴근을 한다.
하루의 수고를 서로 격려하고 다독이며, 그날그날의 분위기와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직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요즘 이슈가 되는 뉴스, 남자 친구 이야기 등을 나누다 보면 금세 집에 도착하게 된다.
작년 크리스마스 점심 식사에 처음으로 남자 친구를 초대했고 올 4월에는 그 친구 부모님께 인사차 한국을 다녀온 뒤,
내년 가을쯤 계획하고 있는 결혼식을 위해 이리저리 궁리 중인 것도 요즘 퇴근길 차 안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이야기 중 하나다.
한국과 달리 예식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웨딩플래너가 전담해 주는 시스템도 아니다 보니
장소, 음식, 초대장, 꽃장식 하나하나 까지 손발로 부딪혀야 하는 고충을 털어놓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부모가 코치하거나 낄 자리를 선뜻 허락하지도 않는 딸. 캐나다에서 오래 자란 여기식이라 해두자.
지켜보고, 믿어주고, 기다리는 것.
엄마 된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다.
금전적으로 넉넉하게 도와줄 만큼의 재력은 없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영 없지는 않다는 걸 보여주고, 뭐라도 보태 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본다.
"엄마, 제가 알아서 할게요". 늘 그렇듯 던지는 말에 살짝 서운해질 때도 있지만, 이젠 그 말이 당연하고 고맙게 들리는 건 나도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자라고 있는 까닭이라 우기고 싶다.
스스로 설 자리를 만들어가는 딸,
그 홀로서기의 여정을 바라보며, 도움이 아닌 짐이 되지 않기를, 믿음의 기도로 묵묵히 응원할 수 있기를 매 순간 나도 연습 중이다.
정해진 시간은 또 얼마나 빨리 흘러갈까.
삼십 년을 함께한 분신 같은 존재가, 엄마 눈엔 여전히 아가 같은데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준비한다니
대견하면서도, 곧 사라질 둘만의 퇴근 시간이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딸은 딸이다』에 이런 대사가 있다.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
딸과 엄마, 엄마와 딸의 관계는
특별하고, 각별하고, 애틋하며, 때로는 살벌하다.
남편과의 대화보다
때론 성인이 된 딸과의 대화가 훨씬 더 깊이 있으며, 서로 공감하고 잘 통하는 것은 물론, 센스 넘치는 말로 지친 삶에 생기와 웃음을 피우게도 해주고
뜻밖의 위로로 우울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존재.
그러나 가끔
엄마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며 무심할 때도 있고,
저것만은 고쳤으면 하는 습관이 여전해 속 끓이게 하는가 하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똑 부러지게 말하며 누가 엄마이고 딸인지 헷갈릴 정도의
충고 섞인 가르침을 던질 때도 있는 발칙한 너!
내게 딸로 와 준 지 삼십 년!
이제 곧 네 곁엔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기겠지.
일과 친구들, 그리고 연인으로 바쁘게 채워가는 일상 속에 축복처럼 주어진 일주일에 두 번의 시간,
퇴근길에 너와 함께 나누는 이 시간이 벌써부터 아쉽구나, 조이야.
내게 기쁨인 너.
Joy brings 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