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산책》에서 수인의 삶을 한 걸음씩 내딛는 외로운 보행에 비유한다. 그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인식과 실천이라는 두 다리 중 실천의 다리가 잘려 나간 상태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사람이 실천을 통해 외계를 접촉하며 인식을 얻고, 다시 그 인식을 실천 속에서 검증한다고 말한다. 실천이야말로 인식의 원천이자 진리의 기준이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오래전, 1999년 1월 16일에 김혜정 씨에게 선물 받은 책이다. 그즈음 나는 시간이 나면 피정을 다니곤 했고 그때는 봉쇄수녀원에서 일주일간 머무르고 있었다. 우리는 침묵 규정을 어긴 채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날 그녀는 좋아하는 작가라며 이 책을 건넸다. 속지에 적힌 시원한 글씨의 날짜와 이름 덕분에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도 피정의 몇 장면은 오버랩되듯 남아 있다.
신영복 선생님을 잘 알지 못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사유와 문장에 깊이 끌렸다. 자기 세계를 이토록 깊이 바라보고 실천해 나가는 그 태도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어떤 강인함이 필요한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 특히 마음에 깊이 박힌 말이 ‘한 걸음’이었다.
‘한 걸음’이라는 세 글자는 내 안으로 강하게 응집되어 들어왔다. ‘인식과 실천’. 그때의 나는 실천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감추고 싶던 부분이 드러나는 듯해 당황스러웠다. 여러 핑계를 대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 항변했지만, 실제로는 남 보기 좋은 모양만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인식과 실천이라는 두 다리 중 하나를 잃은 상태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인식과 실천이라는 ‘두 발걸음’을 걸어보려 노력했다.
물론 처음의 두 발걸음은 절뚝거리거나 멈춰 설 수도 있다. 그래도 천천히, 꾸준히 몸을 익히다 보면 제법 걸음 모양새가 갖춰진다. 나는 ‘이제 잘 걷겠지?’ 하며 방심한 순간에 주저앉기 일쑤였다. 때로는 오만함을 부리다 누군가에게 다리를 툭 걸린 듯, 그대로 나뒹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집중하며 조심히 걸을 때는 잘 넘어지지 않는다. 넘어져도 무릎만 살짝 까질 뿐이다. 그러나 타성에 젖으면 실천은 사라지고, 허황된 인식만 가득해지거나 굳어진 생각 속에서 제자리만 맴돈다. 그래서 늘 조심하며 걸어야 한다.
나는 이런 서툰 나를 “그래도 사랑스럽다”고 다독이며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두 발걸음을 다시 시작한다. 아직 완벽한 걸음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단단한 실천과 산뜻한 인식이 균형을 이루는 걸음으로 보이지 않는 너른 세계를 호기심 가득하게 탐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믿으며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또렷하게 한 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