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면 앞에서

by 에우름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순재 선생이 대상을 받고 남긴 마지막 말이다. 인기나 나이가 아니라 연기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는 긴 시간 진심으로 몰두해 온 배우의 철학이 드러났다.


나의 아버지는 이미 몇 해 전, 아흔을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이순재 선생의 손에는 닳아 헤진 대본이 있었고, 아버지 곁에는 치매에 도움이 된다는 컬러북이 놓여 있었다. 그는 무대 위로 스스로 걸어 올라가 박수를 받았고, 아버지는 한밤중 요양원 거실에서 쓰러져 홀로 응급실 침대에 누워 계셨다. 그 밤이 마지막이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의 삶을 마지막 장면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쓸쓸히 떠난 아버지 역시, 해외여행 자율화가 풀리기도 전 미국 출장에서 내 청바지를 사다 줄 만큼 치열하게 살아온 분이었다. 아버지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냈고, 뿌듯한 날도 있었고 벅찬 순간도 남겼다. 그런데 왜 두 삶은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끝을 맞게 되었을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이기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두 어른의 삶은 몰입할 대상이 있었는가에서 갈라진 듯하다. 이순재 선생은 마지막까지도 대본을 붙잡았지만, 아버지의 노년은 ‘그저 오늘만 잘 지나면 되지’라는 말로 수렴했다. 아마 그 차이는 마음속에서 오래 지켜온 열정의 불씨, 그 심지가 얼마나 단단했는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서서히 삶의 크기를 줄여 갔다.


이순재 선생은 사랑하는 일을 끝까지 해냈고, 그다운 마지막 인사도 남겼다. 그를 배웅하던 후배들은 슬퍼 보였다. 그러나 내게 그의 마지막은 큰 어른이 남긴 축복처럼 느껴졌다. 나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내 앞의 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까. 젊은 시절의 설렘은 어느새 두려움이 되어 앞서 나간다. 아버지의 서글픈 마무리를 오랫동안 지켜봐서일까. 나는 그저 연기처럼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예술에는 완성이 없다는 이순재 선생의 말 아래 ‘90세의 미생’이라는 자막이 달렸다. 마지막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 남은 이는 종종 두려움과 깊은 사유 앞에 선다. 떠난 이를 기억하는 마음이 있는 한, 인생도 끝내 완성에 닫히지 않은 채 미생으로 계속 이어지는 시간인지 모른다.


온종일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