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과 서랍을 열고 신발장과 팬트리를 훑었다. 지난 1년 동안 한 번도 손길이 닿지 않았던 물건들을 현관 앞으로 옮겼다. 선물로 받았지만 그대로 묶여 있던 스카프들, 지난 겨울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은 스웨터, 언젠가 입겠지 하며 남겨 두었던 짧은 정장 스커트와 구두. 몇 해째 모아만 둔 화장품 샘플과 버리지 못한 예쁜 종이 상자들, 혹시 모를 손님을 위해 쟁여 두었던 담요들까지. 그 목록은 지난 1년 동안 단 한 번도 호출되지 않았던 잊힌 존재들이었다.
선택적 미니멀리즘이 되었다. 책이나 여행의 기념품처럼 내가 사랑하는 것들까지 덜어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애정하는 영역은 남기고 그 외의 공간에서는 철저히 비우는 것. 이것이 내가 정의한 ‘선택적 비움’이다. 봉투를 들고 집구석구석을 파헤친다. 머릿속에 박혀 있던 잡초를 뽑아내는 듯한 쾌감이 있다. 옷과 화장품부터 과감히 솎아내면서도 책장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남길 것과 비울 것이 분명해졌다.
미니멀리스트를 선언했음에도 오늘 아침 유난히 예쁜 찻잔 앞에서 결제 버튼을 누를 뻔했다. 한 해 동안 애쓴 나에게 이 정도 선물은 괜찮지 않겠느냐는 속삭임이 집요했다. 새해를 맞아 스스로를 응원하라는 명분도 설득력이 있었다. 다행히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져 버렸다.
뽑혀 나간 잡초 덕분에 마음이 한결 선선하고 개운해졌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네 집 가서 책장 정리라도 해줄까?” 친구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관둬. 네가 하면 우리 집 책장에 아무것도 안 남을 것 같아.” 나의 맥시멀한 친절은 단칼에 거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