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아버지로부터 걸려온 전화.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만으로도 다급함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업무로 사람을 상대하고 있어,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곧 신호가 끊기고,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빨리 와야겠다.”
순간, 세상이 얼어붙은 듯 멈췄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장 뛰쳐나가야 했지만, 눈앞의 업무 상대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절규했다.
“지금 이게 뭐라고… 왜 하필 지금…!”
그는 서둘러 대화를 끝내려 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꼬여만 갔다.
순간, 원망스러운 이 현실에 자신이 삼켜져 버린 듯했다.
그저 당장 모든 걸 내려놓고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반항할 힘조차 남지 않은 채, 그는 무기력하게 그 자리에 갇혀 있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옆 동료에게 상황을 부탁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길, 그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저 발걸음만이 앞을 향했을 뿐이다.
병원1층에 도착했을 때, 엘리베이터마저 꼭대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에게 가는 길마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놓여 있는 듯했다.
마치 세상이 그를 시험하듯, 그녀 곁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집요하게 붙잡는 것 같았다.
그는 저항할 기력이 없었다.
다만, 무너지는 마음을 끌어안은 채 오직 그녀에게 닿기만을 바랐다.
겨우 병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눈이 거의 감긴상태로 누워 있었다.
숨결은 가늘었고, 힘겹게 누워 있는 모습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의사는 조용히 말했다.
“아직 들을 수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해 주세요.”
그는 떨리는 입술로 속삭였다.
“너무 사랑해. 이제 편히 쉬어. 나중에 꼭, 너에게 찾아갈게.”
이상하게도 그는 오히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안도했다.
이제 그녀가 더는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 편히 쉴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가 관에 들어가기 전,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러 모였다.
그의 어머니가 신기해하며 말했다.
“지금 웃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어.”
그는 믿기지 않아 다시 바라보았다.
그 미소는 세상의 고통을 다 내려놓은 듯 평온했고,
그가 기억하는 천사의 얼굴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확신했다.
그녀는 천국으로 갔다고.
신이 천사를 곁에 두고 싶어 너무 일찍 데려간 것었다.
시립승화원에 그녀가 들어가던 날,
그는 처음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흐느끼는 모습을 보았다.
딸이 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병이 없던 시절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딸을 대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큰 병에 걸린 딸이라면 더 세심히 챙기고, 괜찮냐고 묻고,
늘 곁에서 보살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일 없는 듯 담담히 딸을 대했다.
그때는 무심한 건 아닐까, 차가운 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오히려 그렇게 평온하게 대하는 것이야말로
끝까지 그녀를 위한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는 느꼈다.
아버지처럼, 상대방이 아픔이 없는 듯 평소처럼 평온하게 대하는 것이
아픔이 있는 상대방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 된다는 것을.
이제 그는 혼자가 된 집에 돌아왔다.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길,
그의 오토바이 위에는 낯선 장미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낯설고 의아한 풍경.
처음엔 누군가 두고 간 걸 깜빡 잊은 줄만 알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꽃.
그는 생각했다.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겨준 선물이구나.”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그녀를 잊지 못했다.
병원에서 그녀에게 화내던 일, 사소한 말로 그녀를 상처 입히던 순간들,
늘 먼저 사과해야 했던 그녀의 모습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러나 그는 이제 안다.
그녀는 원망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그저 고마워하며, 그가 행복하길 바랐을 거라는 것을.
마치 장미꽃다발처럼, 그녀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에게 사랑과 용서를 남겼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그녀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절대 그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잊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훗날, 그는 영화를 보다가 위로의 대사를 들었다.
“사랑했던 그녀를 잊은 게 아니라, 마음속에 묻은 겁니다.”
마치 천국에 있는 그녀가 그런 그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는 천국으로 떠난 그녀를 가슴 깊이 묻으며 이제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와 함께했던 날들,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이제 그는 그녀를 가슴 깊이 마음 속에 품은 채, 하루하루를 감사로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