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보다 남들을 우선시 했던 그의 삶은 외롭고 쓸쓸하기만 했다.
"제발 그놈의 사업좀 그만하면 안되나?! 맨날 그러고 살고 싶나 아빠는!!
세상천지에 아빠같이 호구잡힌 사장도 없을끼다! 돈벌라고 사업하지, 돈떼일라고 사업하는 등신이
세상천지에 어디있냐 말이다!!! 아빠, 우리는 안보이나? 재야랑 나는 안보이냐고! 빚을 질라면 혼자지지,
재야앞으로 진 빚, 내앞으로 진 빚은 이거 다 우짤낀데!! 생각이 있으면 말을 해보라고!!"
오랜만에 고향집 마산에 내려가 아빠를 만나면 꼭 한번은 저렇게 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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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39살, 결혼도 했고 뱃속에 아이도 있고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던 나는 그 '평범함'이 왜이리도 힘든건지, 고향에 계시는 친정아버지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화부터 나기만 했다.
그런 나의 아버지가 올해 2월달 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결국 2025년 7월 말,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허망한 사망소식에 눈물도 잠깐,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그동안 사업하면서 벌려놓은 아빠 빚은 다 어떻게 해야하지?'
'상속포기 및 한정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조카와 내 배속에 있는 아이는 상속되지 않겠지?'
시험관으로 힘들게 가지게 된 나의 아이의 안전도 중요했지만,
딸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싶었기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서울에서 마산까지 2주의 1번씩 남편과 꼭 내려갔었다.
밉고 원망만했던 나의 아버지였지만
병상에 누워 매마른 몸으로 나를 바라보며 '착한 우리딸 우리딸' 거리던 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아 내었다.
그렇게 미웠던 아빠였는데.
그렇게 원망하던 아빠였는데.
그렇게 돌아가시길 바라고 바라던 나의 아빠였는데.
눈물이 이렇게나 나다니.
막상 곧 돌아가실거라 생각하니
애처로웠고 안쓰러웠고 불쌍하기도 했다.
'그렇게 죽을거라면 좀.. 잘 살지. 잘 좀 살아보지.. 그렇게 밖에 못살았어 왜..'
2월달 갑자기 쓰러지게 되면서 알게된 아버지의 병명은 '식도암말기'
14년전 엄마를 위암으로 보내드렸는데 아버지까지 암이라니.
엄마때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병이였고 엄마의 병환으로 우리 집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그 후 14년동안 매일 술과 담배로 쪄들어 살던 아버지.
결국 그는 그렇게 죽을때까지도 술을 마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엄마부재때문이라는
어이없는 핑계를 대면서 그는 그렇게 쓸쓸하고 외롭게 눈을 감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