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버지'를 원했던 딸의 이야기 (2)

돌아가신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며.

by 다소니Rino

"동생분은 조카분과 같이 상속포기를 진행하시면 되고 누님분은 한정승인으로 마무리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두분 다 상속포기를 하실 경우 고인의 빚은 고인의 형제분들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아버지 장례를 끝 마치자마자 로펌에 연락해 필요한 서류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원스톱안심상속서비스'


로펌에서 가장 중요하다 말씀 하신 부분이 바로 원슽톱안심상속서비스 신청이였다.

신청 후 3주 뒤에야 확인 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고인이 돌아가신 후 3개월 안에 한정승인 및 상속포기를 하려면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원스톱안심상속서비스 신청부터 빨리 해야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슬픔은 내게 사치였다.

더군다나 난 그때 임신 6개월에 접어 들고 있었고 배속에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목놓아 울기는 커녕, 잘 먹어야했고 잘 자야만 했다.


임신중인 나를 가장 많이 걱정하셨던건 바로 시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내 남은 가족인 남동생뿐이였다.

이들만이 진정한 나의 가족이자 나의 편이였다는 걸 7월말 ,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뼈저리게 알게되었다.


왜 그런말이 있지 않나.

내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주변을 돌아보면 피가 섞였던 안섞였던,

진정한 나의 사람과 아닌 사람이 나뉜다고.


동생과 나는 장례중 지독하게도 그 경험을 정말 해버리고 말았다.


피가 섞인 가족들었던 '고모' '큰아버지'. 40년을 따랐던 나의 아버지의 형제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그들 실속 챙기기 바빴고

임신중에 있는 조카인 나를 걱정하는 척 하면서도 자신들은 바닥에 못자니 푹신한 침대를 원했고, 기름진 수육고기를 더 가져오라 말했고, 술과 반찬들을 마구 시키기길 원했다.


마치 소풍이나 잔치라도 온 사람들처럼.


동생과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례비며, 상조비며, 장지며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동생과 내가 미리 계획해둔 곳이 있었는데

갑작스런 임종을 마치자마자 내가 없는 틈을 타 장례식장이며 상조며 자기들 입맛에 맞는 곳을 골라

나의 허락도 없이 옮기더니 결국 천만원이 넘는 장례비를 고스란히 우리가 다 감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10원 한장도 부의금에 넣지 않았다.


발인을 앞둔 전 날, 나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앞에서 얘기했다.


"아빠가 원했던 가족이 이런거였어? 아빠 형제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큰아버지가 다해줄거라고? 힘들면 큰아버지를 찾으라고? 웃기시네.

아빠 형제들 중 가장 독하고 지독하고 악마같은 인간이 바로 큰아버지야.

막내동생을 잃은 슬픔보다 자기 실속챙기기 바쁜 인간이 바로 저 인간이였다고.

지금 다 보고있잖아? 안그래?"


주저리주저리 그 양반들이 듣던 말던 나는 내 할 말을 다 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내앞에서 아양떨고 걱정하는 척 하던 모습들은 온데간데 없고

내 눈치를 살피기 바빴고 화장이 끝나고 장지로 옮기는 과정에도 내 곁에는 그 누구도 오지 않았다.

나이만 먹은 한심한 인간들.


아버지의 장지는 엄마가 계시는 수목장이였다.

엄마옆에 모셔야 엄마보러갈때 아빠도 보고 아빠보러갈때 엄마도 볼 수 있으니까.

온전히 우리의 욕심으로 정해진 자리였다.


그리고 마지막 아버지를 모시는 자리에 함께한건 아버지 형제들이 아닌

엄마의 형제들과 우리뿐이였다.

외삼촌들, 숙모는 우리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리 고왔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마지막 가는 길, 예의는 갖춰야 한다며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엄마의 형제들이 함께해주셨다.

참 아이러니한 일 아닌가?


결국 남좋은 일, 자기 형제들 좋은 일은 본인이 피해를 입어도 상관없다는 듯 다해놓고

정작 챙겨야 할 피붙이였던 우리와 엄마는 챙기지 않았던 댓가가 이리도 참혹했다.

아니, 너무나 하찮고 쓸쓸하고 외로웠다.

평범하길 바라고 바랬던 우리의 바램과 달리

평범하지 않았던 나의 아버지는 아마 남모를 눈물을 흘리며 깊은 잠에 들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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