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버지' 를 원했던 딸의 이야기 (3)

아버지의 여자

by 다소니Rino

"여사님. 아버지 장례식에 쓸 사진이 필요한데, 혹시 아버지 사진 찍어 놓으신 거 있으십니까?'

"예? 아버지 사진예?! 지한테는 없습니더! 아버지 사진 없습니더! "


동생이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와 3년간 교제해온 여사님께.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차갑고 매정한 한마디였다.

나는 아버지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배경화면, 사진첩, 심지어 삭제된 폴더까지—온통 그녀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3년을 교제해 온 사람인데, 아빠 사진 한 장 없다니. 그게 말이 되나? 그러면서 아빠 폰엔 온통 그 사람 사진이네. 하... 짜증 나.’


어쩌면 연애마저도 끌려 다니며 하셨던 걸까.
왜 그렇게까지 바보처럼, 그렇게까지 외롭게 살아오신 걸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임신한 내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 걱정되었고,

깊은 숨을 내쉬며 겨우 진정시켜야만 했다.


아버지는 병상에서도 그 여사님을 감쌌다.
"미워하지 마라. 나 잘 챙겨줬던 사람이야."
그렇게 힘겹게 말하셨다. 혹여나 내가 상처를 줄까 걱정하신 듯.


‘죽음이 목전에 있어도 우리 걱정보다는 그 사람 걱정뿐이셨네.’


요양원에 계시는 동안, 그 여사님이 얼마나 자주 다녀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 말씀으론,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그다음엔 격주로,

마지막엔 돌아가시기 보름 전부터는 오지도 않았다고 하셨다.


‘그래. 혼인 관계도 아니고, 법적 책임도 없는 사람이었으니…
오히려 그 정도라도 다녀간 걸 감사해야 하나. 그 사람 입장에선 그게 최선이었겠지.’



3년 전, 아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제 중인 여성을 내게 소개하셨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셨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소개하고 싶다 말씀하신 적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보자. 어떤 점이 그렇게 끌렸길래… 아빠가 직접 소개까지 하시나.’


유치하게도, 나는 그런 생각으로 마산까지 내려갔다.
당시 곧 결혼을 앞둔 내 남자친구, 지금의 남편과 함께.


그날은 아버지 생신이었고, 내 남편이 아버지를 처음 뵙는 날이었으며,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연인을 처음 만나는 날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누굴 위한 자리였는지, 기억해보면 '잘 섞인 개밥 같은 하루'였다.


모두가 서로 눈치를 보며 긴장한 그 자리에서
나는 웃는 입매에, 차가운 눈빛으로 아줌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의 나를 남편은 이렇게 회상한다.


“자기…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오고 있었어.”


그래도 나름 큰딸로서 예의를 갖춘답시고 웃고 있었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꽤 기괴한 모습이다. 웃으며 노려보는 얼굴이라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드리고자, 남편은 최고급 한우 선물세트와 디저트 케이크를 준비해갔다.
여사님은 손을 떨며 연신 사양했지만, 아버지는 내심 흐뭇해 보이셨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이후 매년 아버지 생신, 기념일마다 반복되었다.
나는 여사님께 작은 선물을 챙겨드렸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게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었다.




그리고 3년 후. 장례식장에서 그 여사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임신한 내 배를 본 그녀는 말없이 멀찍이서 눈인사를 건넸고,
아버지께 인사를 드린 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다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떠나갔다.
‘잘들 지내세요.’ 라는 무언의 인사처럼.



아버지의 휴대폰 사진첩은 아직도 그녀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지워버리고 싶지만, 그 옆엔 늘 아버지가 웃고 계신다.

그 사진들을 지우면, 아버지의 모습도 함께 지워지는 것 같아
손끝이 멈춘다.


아직은 그럴 용기가 없다.
아직은 아버지의 음성 파일을 삭제할 용기도 없다.

그렇게 미워하고, 원망하고,
차라리 죽어버리시길 바랐던 분이었는데…

막상 고아가 되고 보니,
사고만 치고 걱정만 끼치는 아버지라도
차라리 지금 곁에 살아 계셨다면—
이 끈적한 감정의 늪에 빠지진 않았을 텐데.

지금 이 감정들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그저 믿는다.
버티고 또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씩 무뎌질 거라는 것을.

이제는 사랑이든 미움이든,

그 모든 감정마저도 추억이 되어버린 그 사람.
남겨진 우리는 그 흔적 앞에서 묵묵히 하루를 견뎌간다.

작가의 이전글'평범한 아버지'를 원했던 딸의 이야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