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버지'를 원했던 딸의 이야기 (4)

엄마. 아빠랑 이혼해 제발.

by 다소니Rino

"엄마. 내도 이제 성인이고 재아도 성인이 되었으니까 이제 그만 이혼해라 아빠랑."


내 나이 21살.

서울로 상경한 지 1년이 지나고 오랜만에 고향 마산으로 내려가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엄마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씀하셨다.


"좀 더 있다가. 더 나중에. 니들 시집장가는 보내놓고. 그때해도 안늦다. "


엄마의 대답에 마음 한편이 아렸다.

딸이 직접 부모의 이혼을 권하는 상황. 그 말을 듣는 엄마의 가슴은 얼마나 따끔거렸을까.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오로지 엄마의 자유와 평안을 바랐다.


"나는 결혼 안 할 거다. 엄마의 행복과 평안이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제발 그냥 이혼해라. 남은 인생, 이제 엄마를 위해 살아.

우리가 돈 열심히 벌어서 엄마 편안하게 해줄게 응? 엄마 제발."


그 말을 들을 엄마는 쓴 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저녁에 뭘 먹고 싶은지만 물어보셨다.


"저녁에 뭐해줄꼬 우리딸? ^^"


서울에서 마산 내려가기 전이면 항상 엄마는 같은 질문을 하셨고

나는 늘 "고등어김치조림" 이나 " 고구마줄거리된장찌개"를 부탁했다.

된장찌개에 호박잎쌈을 먹는걸 무척 좋아했던 나는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더이상 맛볼 수 없는 , 엄마표 음식.

내 삶에서 가장 그리운 맛이 되어버렸다.




나는 왜 엄마의 이혼을 권했을까.

아버지는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자신의 역활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10년 넘게 택시 운전을 하셨다.

하지반 번 돈은 온전히 술과 도박, 친구들과의 흥청망청한 유흥에 탕진 했을뿐

단 한번도 엄마에게 생활비를 준적이 없었고,

엄마가 벌어온 돈으로 네 식구의 삶을 꾸리고, 자식들을 하굑에 보내고,

심지어 아버지의 빚까지 갚아야 했다.

그나마 꼬깃꼬깃 숨겨둔 돈까지 남편에게 갈취당하면서 까지도

엄마는 가녀린 몸으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자 애쓰셨다.


새벽 2시 3시,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는

항상 잠든 엄마를 깨워 밥을 달라 했다.

엄마는 그 시간에도 일어나 식사를 차렸고,

뒷정리를 마친 뒤엔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이고 출근해야했다.

그런 삶을 엄마는 무려 27년동안 반복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사랑이나 존중이 아닌

"수발"만 들며 살았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그저 아버지의 그림자처럼.


그리고 엄마의 결혼생활 27년 후.

엄마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만 49세에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창 고울 나이에, 엄마는 외롭게 고생만 하다가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날, 엄마의 영정사진을 붙들고 목놓아 우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너무나 역겨워 몸서리쳤다.

그리고 끝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빠, 엄마를 죽인건 아빠야"





그날 이후, 아버지는 나와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나역시 필요하지 않을 때는 연락하지 않았다.

길게는 두 달 넘게 연락 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나에게도 남편이 생겼고,

곧 아이까지 낳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엄마가 더 그리워졌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엄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이 , 존중받지 못한 다는 것이 ,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괴로웠을까.

그런 엄마가 끝까지 두발을 딛고 버티고 서있었던 이유가

정말 우리 남매때문이었구나를.


나는 드라마속 다정한 아버지를 보면,

다큐멘터리에서 성실한 가장을 볼 때면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 아버지는 저분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지 못했을까?"


'아버지'라는 단어는

보호자, 책임감, 희생, 헌신, 삶의 본보기같은 말로 설명되곤 한다.


하지만 내게 '아버지'는

피해만 주는 존재, 피하고 싶은 존재,

그리고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엄마가 남긴 삶의 흔적은 고통이기도 했지만

동시의 나의 '방향'이 되어 주었다.


엄마는 그 어려운 상황과 불안함 가득한 삶 속에서도

화를 내거나 불평을 늘어놓기 보다 늘 책을 가까이 하셨고,

사회초년생의 어리숙한 내게 좋은 스승이자, 선배가 되어주셨다.


27년동안 나의 엄마로

늘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왔던 나의 엄마.

너무나 그립고 감사하다.

내 추억 상자속 한켠 가득히

엄마같은 사람이 자리해주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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