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두 배우 김혜수, 이정은 씨가 나오는 영화 <내가 죽던 날>을 봤습니다. 다양한 기사를 접하면서 그러지 않아도 궁금하던 차였는데, 개인적으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2020년을 딱 한 달 남겨둔 지금 죽음에 관한 영화를 본 건 시간상으로도 절묘한 매칭이었어요. 산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연기에 대한 철학과 다양한 경험을 영화에 잘 녹여내는 모습이 얼굴만 예쁜 배우가 아닌 진짜 연기를 하는 배우로 느껴져서 오래간만에 몰입하며 봤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니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멈칫거려지는 순간도 있고 스르륵 눈물이 나는 장면도 있고, 눈은 울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살짝 지어지는 장면도 있더군요. 누군가 단 한 명 만이라도 내 손을 잡고 힘들어도 같이 살아내자고 그렇게 뭉근하고 묵묵하게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살만한 세상이겠죠?
상대의 감정을 완벽하게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일 겁니다. 내 슬픔과 상대의 슬픔에 경중을 두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죠. 어쨌든 인간은 자신의 슬픔과 상실이 가장 아픈 법이니까요. 그런데 각각 입장이 다른 세 배우의 눈빛과 침묵이 서로를 응원하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엄청난 멜로도 심장 쫄깃해지는 스릴러도 아니고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전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끝났지만 이 여운을 바로 접고 싶진 않았어요. 영화를 보면서 선명하게 떠올랐던 음악, 고민의 여지가 없이 바로 이 음악을 틀었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토마소 비탈리의 샤콘느입니다.
슬픔으로 위로를 건네는 음악
이 곡은 그야말로 슬픔으로 위로를 건네는 음악이에요. 토마소 비탈리(Tomaso Vitali 1663~1745 이탈리아)는 샤콘느로 유명한 작곡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계의 작곡가 비발디와 이름이 좀 비슷한데요, 그 역시 비발디처럼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동시에 작곡가였습니다. 원래 샤콘느(Chaconne)는 17, 18 세기에 유행하던 기악곡의 형식으로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춤곡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샤콘느라고 하면 22년 뒤 태어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독일)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샤콘느도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곡을 훨씬 즐겨 듣습니다. 비탈리는 이 샤콘느 이외에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곡이 없지만, 이 한 곡만으로도 그는 음악가로서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비탈리의 샤콘느 하면 모든 게 설명이 되니까요.
바이올린의 처절하게 슬픈 음색으로 인해 비통함마저 느끼게 해 주는 명곡입니다. 곡 처음에 피아노 반주의 왼손이 묵직하게 솔, 파, 미, 레 한 음 한 음이 내려가는 시작부터가 심연으로 침잠되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뭔가 고민 많고 사연 많은 사람이 터벅터벅 무겁게 걷는 느낌이죠.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애써 삶의 무게를 견디는 기분도 들어요. 연주 시간 10분 정도 되는 이 짧은 곡 안에 인간의 희로애락 애오욕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검고 무채색인 음악이 진행하지만 짧게나마 빨갛고 노란 환한 음악도 등장해요. 길고 느린 음표로 지속하기도 했다가 짧고 빠른 음표로 요동을 치기도 합니다. 영상으로 보이는 음표를 보면 이 곡의 진행이 좀 더 느껴지실 거예요. 고요와 격정이 번갈아 등장합니다.
원래 이 곡은 비탈리가 그 시대 스타일을 따라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곡으로 작곡했지만 1867년에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도 다비드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멋진 곡이에요. 그 후에 오르간 반주로도 편곡이 됐고, 바이올리니스트 지노 프란체스카티에 의해 관현악 반주로 편곡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악기든 간에 바이올린의 격정적인 멜로디를 조심스레 받쳐주며 묵묵하게 함께 합니다. 이 곡 연주할 때는 절대 반주가 바이올린을 덮어선 안 돼요. 격정의 내면을 지닌 김혜수 배우가 바이올린으로, 목소리를 잃고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는 이정은 배우가 반주 악기로 느껴졌던 포인트가 바로 이런 구성 덕이었습니다.
청중 입장에선 정말 듣기 좋은 멋진 곡이지만 실제 연주하는 이에겐 고도의 음악적 기술을 요구하는 곡입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모든 기교와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야 완주할 수 있는 곡이에요. 저도 무대에서 여러 번 이 곡을 연주했지만 어떤 바이올린 연주자와 함께 했느냐에 따라 음악이 정말 달라집니다. 이런 면에서는 영화에서 합을 맞추는 배우들의 케미와 이치가 비슷합니다.
삶과 죽음을 소재로 이야기 나누니 그림도 생각납니다. 바로 뭉크의 ‘절규’ 예요.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 노르웨이)는 평생을 우울증과 허약 증세로 고통받은 사람입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5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그 뒤로 몇 년 뒤엔 누이마저 결핵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큰 충격은 가족의 죽음이라는데, 어린 뭉크에게 엄마와 누이의 죽음은 굉장한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였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죽음’이라는 화두와 마주한 뭉크는 불행히도 삶 자체를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일찍 죽지 않고 긴 생애를 살아내요. 영화 ‘내가 죽던 날’도, 비탈리의 음악도 뭉크의 그림도 모두 삶과 죽음에 관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냅니다.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장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참 멋지네요.
다시 음악으로 돌아와서요, 야샤 하이페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등 ‘샤콘느’의 명연주자들이 많지만 유난히 슬프게 울리는 지노 프란세스카티의 바이올린 연주를 전 제일 좋아합니다.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의 연주도 명연입니다. 다양한 연주자가 내는 슬픔의 위로를 여러분의 감성으로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