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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조현영 Mar 27. 2022

장중한 선율 속 디스토피아 미래사회에 대한 경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터'


   개인적으로 SF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데도 몇 번씩 보게 되는 ‘N차 관람’ 영화가 몇 개 있다. 공교롭게도 모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이다. ‘ET’부터 시작해서 ‘마이너리티 리포트’,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작품들은 아주 충격적이면서 신선했고 기억에 남는 내용이었다. 스필버그 감독은 과학적인 관심도, 지식도 전혀 없었던 나에게 영화 속 세상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오늘은 그중에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그 속에 흘렀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련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묵시록적 영화


   영화는 2054년 미국의 워싱턴 DC가 배경이다. 주인공 존 앤더튼(톰 쿠르즈)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 미리 범죄를 예측해서 범인을 잡는 미래형 최첨단 범죄 예방 시스템인 프리크라임의 팀장을 맡고 있는 경찰이다. 프리크라임을 통해서는 언제, 어느 장소에서, 누구에 의해 범죄가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범죄는 단순 살인만을 감지한다. 폭력이나 다른 범죄는 예견하지 못한 것이 또 하나의 맹점이다. 앤더튼은 일에 대한 능력이 뛰어나고 이 시스템을 통해 범죄를 막으려는 열정이 대단하다. 사실 그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이유는 6년 전 뜻하지 않게 아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 ‘션’을 잃은 슬픔으로 마약에 빠져 지내고, 설상가상으로 부인과 이혼까지 하게 된다. 혼자 집에 돌아오면 쓸쓸히 파일을 꺼내 아들을 마주하고 말을 거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는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명의식으로 지내던 앤더튼은 뜻하지 않게 본인 스스로가 프리크라임의 범죄자로 지명된다. 앤더튼은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죽인다는 미래의 예언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일단 프리크라임 팀이 자신을 추적하기 전에 빨리 도망가야 했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프리크라임 시스템에 뭔가 오류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더 깊이 시스템 안으로 파고들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인간으로 인해 만들어진 불완전한 시스템임을 인지한다. 그리고 모든 계략에는 프리크라임을 워싱턴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확대시켜 세력을 장악하려고 했던 프리크라임의 국장이자 창안자 라마 버지스의 짓임을 알게 된다. 결국 앤더튼을 죽이라고 시스템을 조정했던 것도 버지스 국장의 모략이었고, 이 미래 예측형 시스템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가장 불완전한 시스템임이 밝혀진다. 


   프리크라임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해 범죄를 예방하는 시스템이니 엄격하게 말하면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지만, 예측된 범죄자는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체포된다. 여기서 범죄를 예견하는 세 예언자는 마약 중독자의 자식들로, 뇌에 특별한 돌연변이가 생겨 예지 능력을 갖게 된 이들이다. 두 명의 남자 쌍둥이와 아가사라는 여자인데, 셋 중 한 명이라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소수의 의견은 무시된다. 앤더튼의 살인을 예고했던 두 쌍둥이 남자 형제의 의견은 메이저리티 리포트로 프리크라임에 전송되고 앤더튼은 범죄자로 지목되지만, 제일 예지력이 좋은 아가사는 살인을 예견하지 않았다. 아가사의 의견은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되어 폐기된다. 그래서 앤더튼은 폐기된 아가사의 의견을 찾아 헤매고, 그것을 증거 삼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여기서 영화 제목인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탄생한다. 정말 소수의견은 무시해도 되는 걸까?


   2054년 프리크라임은 폐기된다. 주범인 버지스 국장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앤더튼은 부인 라라와 다시 결혼생활을 이어가며 새로운 아이도 임신한다. 결국 영화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듯하지만, 마지막엔 우리가 모두 꿈꾸는 평범한 세상의 평화로운 삶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아마 다른 결말이었다면 상당히 보기 힘들었을 것 같다. 희망이 없는 곳은 지옥이니까.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영화화하기 전 이미 소설로 출간돼 많은 인기를 얻었다. SF의 전설 필립 K. 딕의 작품이 원작인데, 1954년에 발표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정확히 100년 후를 예지하고 쓴 글인데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온통 유토피아를 꿈꿨던 그 시대에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설정했다는 것도 독특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미래 예측의 정확도가 과연 얼마나 완벽하겠냐는 의문이 들었고, 범죄자로 지적된 사람은 상당히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생겨났다. 영화를 먼저 봤지만, 반드시 원작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사람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등의 존재론적 의문에 대한 그만의 답을 읽을 수 있다.


 메타버스는 이미 현재 진행 중


   처음 영화가 개봉됐던 2002년에는 이 영화의 설정이 머나먼 미래처럼 느껴졌고, 설마 이런 게 가능하겠어? 라는 의문이 가득했는데, 지금 벌써 2021년!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2054년이 그리 멀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메타버스 즉 가상현실 세계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다.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많았지만, 특히 앤더튼의 등장이 신기했다. 그가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움직이면 스크린에 잠시 후 일어날 프리크라임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화면을 움직일 수 있는 광마우스 장갑을 끼고 스크린을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경찰들이나 바퀴 없는 자동차들이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장면도 특별했다. 최첨단 기술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 시대를 넘나드는 음악이 있었으니 바로 클래식이다. 영화 내용은 미래지만 음악은 과거에서 소환했다. 바흐를 비롯하여 슈베르트, 차이콥스키까지. 음악 감독을 맡은 존 윌리암스는 자신의 음악뿐만 아니라 적재적소에 클래식을 사용하는 것에도 뛰어난 감각을 보여줬다. 앤더튼이 프리크라임에서 범인들을 찾을 때 흐르는 음악은 바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슈베르트 음악이 흐르며 멀티스크린을 움직이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며 대표 장면인 듯싶다.


   미완성이지만 미완이지 않은 작품

   슈베르트는 아주 단명한 작곡가다. 35살 이른 나이에 죽었다고 애달파하는 모차르트보다 4년이나 젊은 31살에 죽었다. 그는 평생 ‘가곡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그가 작곡한 장르는 실로 장대하다. 피아노 소나타도 23여 곡으로 아주 많이 작곡했고, 40곡에 가까운 네 손용 피아노 작품도 많다. 게다가 악기별로 독주 소나타와 3중주, 현악 4중주, 그리고 미완성 교향곡까지 합하면 교향곡도 9곡이나 된다. 그야말로 다작의 작곡가다. 슈베르트는 워낙 동시에 이 곡 저 곡 작곡하기를 좋아했다. 내키는 대로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악보에 옮기는 유형이었다. 한 곡을 진지하고 끈덕지게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작곡하는 형이 아니었다. 그는 이 곡 저 곡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작곡해 가며 곡을 완성하는 사람이다. 슈베르트가 600여 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한 것만 봐도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악상이 항상 표류하고 다녔음을 추측할 수 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이 전부 몇 곡인지 말하는 것에도 서로 의견이 분분하다. 1차 스케치한 교향곡들을 작품 목록에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작품 수는 달라진다. 첫 교향곡은 작품 번호 D 82로 기록된 라장조 교향곡이다. D 82란 82번째로 출판된 곡이라는 뜻이다. 슈베르트의 작품은 그에 관한 권위자이면서 작품을 정리한 학자 오토 에리히 도이치(Otto Deutsch 1883~1967)의 앞 글자 ‘D’를 따와 표기한다. 워낙 건망증도 심하고 정리하는 것을 싫어한 슈베르트인지라 오토가 정리가 한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현재는 대부분 슈베르트의 작품에 D 번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도이치의 정리에 의하면 슈베르트의 작품은 대략 998개 정도로 그중 600곡은 가곡이다. 교향곡 1번부터 7번까지는 완성작이고 유명한 8번 교향곡은 2악장으로 구성된 ‘미완성’ 나단조 곡이다(보통 교향곡은 전부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음). 뒤를 이은 9번째 곡은 ‘베토벤의 9번째 교향곡’ 징크스가 두려워 ‘9번’이라는 번호 대신 ‘대 교향곡(Great)’이라고 이름 붙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슈베르트 역시 ‘베토벤의 9번째 교향곡’ 징크스를 넘지 못하고 마지막 10번째 교향곡을 작곡하다가 세상과 이별한다.


   1악장에서는 장중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서주가 지나면 아름다우면서도 애수를 띠는 1주제가 흐른다. 슬픈 통속극에 나오는 배경음악 같다. 그리고 2악장은 우리가 어릴 때 자주 듣고 불렀던 동요 ‘옹달샘’의 ‘물만 먹고 가지요(솔시 레파 미레도)’ 선율이 중간중간 계속 흐른다. 처음 곡을 들으면서부터 ‘솔시레파미레도’의 위력으로 2악장은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뒷부분 3, 4악장을 마무리 짓지 못해 ‘unfinished’ 라는 부제가 붙었다지만 완성이면 어떻고 미완성이면 어떤가? 우리의 인생 자체가 모두 미완성이고 불완전한 것을. 음악학자도 일반 애호가들도 모두 하나같이 ‘미완이지만 절대 미완이 아닌 곡’이라고 좋아한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1822년에 작곡에 착수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슈베르트는 1악장과 2악장을 작곡하고 나서 3악장 ‘스케르초’ 악장의 작곡을 시작했지만, 다른 일이 있어 작곡이 흐지부지 미뤄진다. 그러고 나서 그가 죽은 후 1865년에 다시 발견됐으니 이 교향곡이야말로 40여 년 동안 아주 오랜 멈춤을 하고 있었다. 1악장은 아주 음습한 분위기로 주제가 시작된다. 여기서 만화 ‘스머프’에서 가가멜이 등장하는 장면에 흐르는 선율이 등장한다. 곧이어 우리가 잘아는 사장조의 멜로디가 흐르고, 마지막에는 다시 우울하고 슬픈 멜로디로 끝을 맺는다. ‘알레그로 모데라토(빠르지만 보통의 빠르기로)’의 빠르기말과 나단조 조성의 선정이 꽤 잘 어울리는 곡이다. 2악장은 ‘안단테 콘 모토(느리지만 생동감 있게)’라는 빠르기말이 듣는 이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한다. 호른과 오보에 그리고 클라리넷 등 금관과 목관이 적절히 어울리며 그 사이를 바이올린이 주제를 연주하며 유영한다. 그리고 조용히 끝을 맺는다. 웅장하고 큰 소리로 끝났으면 오히려 덜 궁금했을 텐데, 조용히 하던 말을 멈춰버린 그의 음악이 여운과 함께 남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마치 조용히 세상에 왔다가 조용히 사라진 슈베르트의 인생처럼 말이다. 


<추천음반>    

https://youtu.be/5zNI5FgGzjA

1965년 도이치 그라모폰 녹음/ 베를린 필하모니/ 카라얀 지휘

Schubert: Symphony No. 8 in B Minor, D. 759 "Unfinished" - 1. Allegro moderato ·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에 카라얀을 빠트릴 수 없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 작품을 오스트리아 최고의 지휘자인 카라얀의 연주로 듣는 기쁨을 놓쳐선 안 될 것이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과 함께했던 1965년 도이체 그라모폰 연주인데 요즘은 리마스터링되어 다시 나온다.


https://youtu.be/ZD_SRtFla-o

Schubert: Symphony No.8 In B Minor, D.759 - "Unfinished" - 2. Andante con moto (Live)


미국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과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Amsterdam Concertgebouw Orchestra)의 1987년 녹음이다. 그해 번스타인은 노장의 경력이 묻어나는 음악적 해석을 추구했다. 호불호가 나뉘는 음반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하는 음반이다. 그는 언제나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손에 든 지휘봉을 마치 마법사의 지팡이처럼 움직이며 어떤 비참한 음악도 희망적으로 들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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