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축구 우익 축구 - 니시베 겐지의 책에서부터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철학적 대립이 존재한다. 몇 년 전 좌익 축구 우익 축구라는 일본작가가 쓴 책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여기서 진보(좌익), 보수(우익) 축구를 스타일적으로 나누는데 굉장히 재미있다. 많은 패스와 공 점유를 통해 경기의 흐름을 통제하고, 상대를 서서히 압박하며 공격 기회를 만들고 화려하고 재밌는 공격 지향적 스타일을 진보(좌익) 축구라고 정의한다. 이 흐름의 대표적인 감독엔 펩 과르디올라, 아르센 벵거가 있다. 반대로 화려함보다는 질서, 공격보다 수비가 우선이 되고 점유를 포기하고 역습으로 공격하여 현실적인 승리를 하는 스타일을 보수(우익) 축구라고 정의한다. 이 철학의 중심에 서 있는 감독으로 주제 무리뉴, 디에고 시메오네가 있다. 이 책에서도 그렇고 현재 보수축구의 최정점은 디에고 시메오네라고 하지만 이 등장 이전에 주제 무리뉴가 보수 축구로 유럽축구계를 뒤흔들었다. 현재의 무리뉴는 이전처럼 빛나는 감독은 아니지만, 그의 발자취는 보수축구의 변천사와 확실한 결과물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굉장히 존경하고 좋아하는 축구 지도자이다. 그의 커리어는 이 보수축구의 철학이 어떻게 다양한 팀에서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긴 사례 연구라고 할 수 있다.
1. FC 포르투 (2002~2004) : 전술 혁명의 시작
무리뉴가 세계 축구의 주목을 받은 시기는 FC 포르투 감독 시절이었다. 당시 포르투는 유럽 최상위 클럽은 아니었지만, 무리뉴는 이 팀을 전술적으로 매우 조직적인 팀으로 만들었다. 그의 기본 시스템은 4-3-1-2였다. 이 전술의 핵심은 중원 압축과 통제 그리고 수비의 라인 컨트롤이었다. 미드필드에서는 코스티냐와 마니셰가 수비적인 역할을 맡으며 중앙 공간을 철저히 통제했다. 공격 전개의 중심에는 이후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스타 플레이메이커 데쿠가 있었다. 데쿠는 단순한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니었다. 그는 역습 상황에서 공을 전진시키는 핵심 연결 고리였다. 공을 탈취한 순간 그는 빠르게 전방으로 패스를 공급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수비에서는 이후에 첼시, 레알마드리드에서 함께하는 스타 수비수 히카르두 카르발류가 라인을 지휘했다. 카르발류는 위치 선정과 빠른 발로 커버 능력이 뛰어난 수비수였고, 무리뉴는 그를 중심으로 매우 정교한 수비 라인을 구축했다. 포르투의 공격은 대개 짧았는데 수비 탈취 후 데쿠의 전진 패스 공격수 마무리 대개 3~4번의 패스로 공격이 끝났다. 이 공격 패턴은 이후 무리뉴의 보수축구에서 핵심적인 공격 루트로 자리 잡는다. 이 시스템은 2004년 챔피언스리그에서 16강 맨유, 8강 리옹, 4강 데포르티보 (그때는 AC밀란을 잡을 정도로 강팀이었다), 결승에서 AS 모나코를 잡고 우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포르투는 명문팀이지만 유럽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도전할 만한 1 티어 강팀으로 뽑히지는 않는다. 이 우승은 단순한 이변이 아니었다. 세계 축구는 이 순간 효율적인 보수 축구가 이상적인 축구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무리뉴는 유럽에서 가장 핫한 감독이 된다.
2. 첼시 1기 (2004~2007) : 완벽한 수비 시스템의 완성
무리뉴가 첼시에 부임했을 때 그는 첼시의 전술 풍경을 완전히 바꾸었다. 2004-05 시즌 첼시는 38경기에서 단 15 실점 그리고 1패만을 기록했다. 이는 여전히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소 실점 기록이다. 수비의 중심에는 존 테리와 히카르두 카르발류라는 센터백 듀오가 있었다. 존 테리는 공중볼과 몸싸움에서 압도적이고 수비 리딩 실력도 최고였으며 몸을 사리지 않고 몸을 던져서 육탄 방어하는 강철의 센터백이었다. 다만 존 테리는 달리기가 느렸는데 수비 파트너 카르발류가 스피드가 빨라 존 테리의 단점을 보완해 주었으며 라인을 조정하고 공간을 읽고 태클로 실점을 막아 주었다. 또한 이 시기에 첼시 풀백들은 지금과는 다르게 오버래핑보다 수비를 우선시했다. 무리뉴의 첼시시절 풀백 애슐리 콜, 파울루 페레이라, 윌리엄 갈라스 모두 풀백 중에서도 1대 1 돌파를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측면의 벽들이었다. 무리뉴의 첼시 수비는 중앙과 양쪽 측면 어느 곳에서 누가 와도 뚫기 어려운 성벽이었다. 특히 애슐리 콜의 빠른 발과 돌파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 수비력은 그를 호날두의 천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 수비의 핵심은 사실 미드필더에 있었는데 레알마드리드에서 데려온 전설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클로드 마케렐레가 있었다. 마케렐레는 수비 라인 앞에서 포백을 보호해 주고 상대편의 공간을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상대 공격수들이 중앙에서 볼을 받는 순간 그는 즉시 압박을 가했고, 마케렐레에게 밀려 상대 공격은 자연스럽게 측면으로 밀려나 미드필더 진영에 공간이 열렸다. 그 공간을 다른 미드필더 동료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어 발 빠른 아르옌 로번, 데미언 더프, 조 콜 같은 드리블러가 측면을 공략하고 미들라이커의 최강자 램파드가 침투하여 치명적인 골로 상대팀에게 비수를 꽂았다. 마케렐레의 대체자로 후에 마이클 에시앙을 데려왔는데, 에시앙은 수비뿐 아니라 공격적 재능도 폭발하며 무리뉴의 보수축구를 빛내주었다. 공격에서는 디디에 드록바, 에르난 크레스포가 전방에서 중심을 잡았다. 이들은 단순한 골잡이가 아니라 전방에서 공을 지키는 포스트 플레이 가능한 단단함이 있는 믿을 수 있는 스트라이커였다. 이 팀의 전술은 단순했는데 점유율을 내주더라도 수비로 중앙을 통제하고 볼을 뺏는 순간 빠른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승리를 만들었다.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하는 이 시기의 첼시는 알렉스 퍼거슨의 맨유와 아르센 벵거의 아스널이 지배하던 프리미어리그에서 2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양강 구도를 멋지게 깨버렸다. 첼시는 무리뉴의 보수축구를 만나 프리미어리그의 다크호스가 아니라 이 시기부터 진정한 강팀 레벨에 올라서게 되었다. 무리뉴는 이때부터 스페셜 원이라는 그 유명한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포르투에서는 빅이어를 들었지만 아쉽게도 첼시 시절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에서 리버풀을 2번이나 만나 결승에 가지 못하였고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첼시 1기 마지막에는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선수 영입에 대한 이견으로 갈등을 겪었고 무리뉴 스타일에 맞지 않는 선수에 거액을 투자하면서 사이가 파탄이 나버렸다. 결국 2007-08 시즌이 시작하고 얼마뒤 무리뉴는 첼시를 떠나게 된다.
3. 인테르 (2008~2010) : 유럽을 제패한 트레블 시절
무리뉴 전술의 정점은 인테르 시절이었다. 무리뉴의 2년 차 2010년 인테르는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우승하며 트레블을 달성한다. 이 팀의 전술 구조는 매우 균형 잡혀 있었다. 기본적으로 4-2-3-1 형태를 썼는데 특이한 점은 측면에 사무엘 에투와 고란 판데프를 세웠다. 그 시절 사무엘 에투를 잘 알던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에투는 바르셀로나 시절 세계 최강의 센터 포워드이면서 아프리카 역사상 최고의 킬러였지만, 무리뉴 아래에서는 수비 가담이 많은 측면 윙어 역할을 맡았다. 무리뉴에게 중요한 것은 스타 한 사람의 명성이 아니라 팀 구조였다. 에투의 뒤에는 매우 공격적인 롤을 가진 풀백 마이콘이 있었는데 마이콘이 오버래핑을 할 때, 에투가 마이콘의 자리를 커버하여 수비라인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에투의 가공할 득점력 활용보다 마이콘과 공존할 수 있도록 수비 우선의 보수주의 축구를 위한 롤을 부여하였고, 이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센터백과 반대쪽 풀백에는 루시우, 왈테르 사무엘, 크리스티안 키부가 있었고 이 셋다 수비력하나는 끝내주는 수비수였다. 이 세 철벽과 마이콘, 에투가 함께 어우러져 첼시 1기 때처럼 철의 포백을 만들어 주었다. 중앙 미드필드에는 에스테반 캄비아소와 티아구 모타가 있었고, 공격 전개는 웨슬리 스네이더가 담당했다. 스네이더는 중원에서 킬패스를 공급하여 역습의 핵심이 되었고 마무리는 공격수 디에고 밀리토가 담당했다. 스네이더는 피지컬이 약해 볼 키핑이 좋지 않았고 활동량이 많지 않아 단점도 명확한 선수였지만, 캄비아소와 모타 그리고 주장 하비에르 사네티가 중원에서 상대 미드진을 압박하고 활동량과 수비 보조를 해주어 스네이더가 월드클래스급의 플레이메이커 롤을 수행하도록 도와주었다. 무리뉴의 보수축구 철학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경기가 바로 FC 바르셀로나의 2010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이다. 1차전 홈에서 3대 1 승리를 하고 떠난 캄프 누 원정에서 인테르는 점유율 13%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남기며 수비 블록을 유지했고, 결국 결승에 진출한다. 이는 당시에 절정의 폼을 보여주던 리오넬 메시를 시스템의 수비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결승에서도 이어지는 스네이더의 킬패스와 밀리토의 득점으로 인테르는 바이에른 뮌헨을 2대 0으로 꺾으며 무리뉴는 두 번째 빅이어를 들게 되었다. 인테르 시기는 무리뉴에게 짧았지만 강렬했고 이 이후 인테르는 서서히 약해지더니 한동안은 이탈리아의 중위권 팀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무리뉴는 아무런 불화 없이 인테르를 명예롭게 떠나 더 큰 모험을 하게 된다.
4. 레알마드리드 (2010~2013) : 초고속 역습의 시대 보수축구가 역대 최다 골을 넣다
2010년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그의 가장 큰 목표는 분명했다. 그의 라이벌 펩 과르디올라가 지휘하는 당시 유럽 축구를 지배하던 FC 바르셀로나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는 점유율과 패스 플레이로 화려하게 경기를 지배하는 팀으로 지금까지의 무리뉴의 보수축구에 반대되는 좌파 진보축구 스타일이었다. 무리뉴는 이 철학에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축구를 선택했다. 그것은 바로 초고속 역습 축구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기본 전술은 4-2-3-1이었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는 수비 상황에서 라인을 압축하고, 공을 탈취하는 순간 폭발적인 속도로 공격을 전개하는 구조였다. 마르셀루, 페페, 세르히오 라모스, 알바로 아르벨로아 네 명의 포백은 중앙을 틀어막고 압축하여 수비하였고, 역습 시에 넓고 빠르게 퍼져 초고속 역습에 시작점이 되어주었다. 미드필드의 중심에는 사비 알론소와 사미 케디라가 있었다. 알론소는 수비 라인 앞에서 볼을 차단 후 동시에 정확한 롱패스로 공격 전환의 출발점 역할을 하고 케디라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정석 롤을 수행하며 활동량으로 상대편의 중원을 청소해 버렸다. 알론소의 정확한 롱패스는 레알의 역습을 시작하는 신호였다. 그 앞에는 당시 유럽 최고의 전환 플레이메이커 메수드 외질이 상대팀을 한 번에 무너뜨릴 킬패스를 준비하고 있었고, 수비 라인이 정비되기 전에 공격을 전개했다. 앙헬 디 마리아는 역습 상황에서 전력 질주하여 초고속으로 카운터를 도와주기도 하고 측면에서 수비에 가담하여 수비숫자 싸움에서 레알마드리드가 밀리지 않는 지원을 해주었다. 이 시기에 카카는 점점 주전에서 밀리고 있었지만, 출전할 때마다 볼 운반과 킬패스로 공격을 매끄럽게 만들어 주었다. 당연히 초고속 역습의 핵심은 발이 빠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속도였고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 곤잘로 이과인이 마무리 골을 넣어 상대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수비에서 볼을 탈취하면 알론소가 전진 패스를 넣고 외질이 공간을 향해 스루패스를 찔렀다. 그 순간 호날두와 디 마리아는 이미 수비 뒷공간으로 질주하고 벤제마와 이과인은 골을 넣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공격은 때로 단 몇 번의 패스만으로 완성되었으며 레알 마드리드는 2011-12 시즌 라리가에서 승점 100, 121골이라는 기록을 세우는데 이 기록은 단순히 공격력이 뛰어난 팀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역습 중심 축구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때부터 무리뉴의 보수축구가 수비만 우선하는 축구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초고속 역습으로 화려하게 승리하는 실리 축구로 진화해 가고 있었다. 다만 이때부터 무리뉴의 수난도 시작되는데 레알 마드리드 시절 막판에 호날두, 카시야스, 라모스 같은 선임들과의 불화로 해임되었다.
5. 첼시 2기 (2013~2015) : 조직적 승리의 축구와 마지막 전성기
무리뉴가 다시 첼시로 돌아왔을 때 프리미어리그의 환경은 이미 많이 변해 있었다. 과거보다 점유율 축구가 늘어났고, 전술도 훨씬 다양해졌다. 무리뉴는 이 환경에 맞춰 자신의 전술을 조금 수정했다. 첼시 2기의 전술 역시 4-2-3-1이었지만, 레알 마드리드처럼 극단적인 역습 축구는 아니었다. 대신 수비 안정과 창의적인 공격을 결합한 현실적 전술이었다. 포백은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존 테리, 게리 케이힐,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가 구성했고 이 네 수비수는 최상위 클래스의 선수들인데다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어 첼시 1기 만큼 뚫을 수 없는 철벽을 구성했다. 중원의 핵심은 네마냐 마티치, 세스크 파브레가스 두 선수였다. 마티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중앙에서 포백을 보호하고 많은 활동량을 가져갔으며, 파브레가스는 아스널 시절처럼 멋진 킬패스를 공급해 주어 공격 전개의 핵심이었다. 파브레가스의 숏패스, 롱패스는 첼시 공격의 가장 중요한 무기였다. 그 앞에는 첼시 공격의 중심인 에당 아자르가 있었다. 이 당시 아자르는 전형적인 윙어가 아니라 경기를 바꾸는 개인 능력의 선수였다. 그는 드리블로 수비를 무너뜨리고 공간을 만들어냈다. 반대편 측면에서는 윌리안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수비 가담과 역습을 동시에 수행했고 이 둘이 없을 때는 안드레 쉬얼레가 완전하게 백업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전방에는 디에고 코스타가 있었는데 단순한 스트라이커로 골만 넣는 것이 아니라 상대 수비를 끊임없이 괴롭게 하는 전방 압박의 중심이었다. 이 팀의 공격 패턴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파브레가스의 전환 패스였다. 볼을 탈취하는 순간 파브레가스가 전방으로 빠르게 패스를 공급하면 아자르나 코스타가 공격을 마무리했다. 두 번째는 아자르의 개인 돌파였다. 상대 수비가 밀집된 상황에서도 아자르는 드리블로 공간을 만들어냈다. 세 번째는 세트피스였다. 존 테리와 이바노비치 같은 강철 수비수들의 피지컬은 공중볼 상황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이 전술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안정적이었다. 2014-15 시즌 첼시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여 스페셜 원의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다만 이 영광도 오래가지 못했고 다음 2015-16 시즌 첼시 선수들이 감독에게 집단으로 반기를 들게 되고 선수들의 단체 태업으로 무리뉴는 첼시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이 시즌 첼시 1기 무리뉴의 전임자였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다른 형태의 보수축구를 보여주며 약체인 레스터시티를 이끌고 구단 창단 132년 만의 첫 우승을 이루게 된다. 또 첼시 2기 시절이 무리뉴 보수축구의 사실상 마지막 전성기였으며 이 시점부터 보수축구의 거장 역할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에게 서서히 넘어가게 된다.
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6~2018) : 무리뉴의 보수축구의 과도기 그리고 정점에서 내려오다
2016년 무리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알렉스 퍼거슨 시대 이후 팀은 과도기를 겪고 있었다. 선수 구성 역시 완전히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무리뉴는 이 팀을 완전히 공격적인 팀으로 만들려 하지 않고 역시 수비 구조를 안정시키는 데 집중했다. 맨유의 기본 포메이션은 4-2-3-1이었다. 그러나 수비 상황에서는 미드필더와 윙어들이 깊게 내려오면서 사실상 4-4-1-1 구조를 형성했다. 이 구조는 중앙 공간을 봉쇄하고 상대 공격을 측면으로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이 구조로 무리뉴답게 수비를 단단하게 구성했으나 추후에 전술적 결함으로 돌아온다. 수비 라인의 중심에는 안토니오 발렌시아, 에릭 바이, 크리스 스몰링, 데일리 블린트 등이 있었고 중원에서는 안데르 에레라와 마이클 캐릭이 균형을 잡았다. 양 측면 공격은 앙토니 마샬과 마커스 래스포드가 담당했다. 특히 센터백들이 부상당하자 벤치에 있던 마르코스 로호를 센터백으로 변신시켜 대성공시켰고 이전 체제에서 애매한 선수였던 에레라의 기량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만개하게 해 주었다. 이 팀의 공격 전술은 조금 달랐는데 맨유 공격의 중심에는 스웨덴의 베테랑 스트라이커 즐라탄이 있었다. 즐라탄은 역시 무리뉴가 즐겨 쓰던 이전 원톱들과 비슷하게 전방에서 공을 지키는 포스트 플레이의 중심이었다. 공이 전방으로 올라가면 그는 상대 수비를 등지고 볼을 지키며 2선 공격수들에게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 뒤에는 중원에서 공격을 연결하는 스타플레이어 폴 포그바가 있었다. 포그바는 중원에서 넓은 활동반경을 가지며 역습 상황에서 볼 운반과 전진 패스를 담당했다. 이 첫 시즌의 공격 전술은 수비에서 볼을 탈취하면 곧바로 즐라탄에게 공을 보내고, 즐라탄이 이를 지켜내며 공격을 전개했다. 첫 시즌 마지막에 노장 즐라탄이 부상을 당해버려 팀이 내리막을 걸었고 프리미어리그 6위에 그쳤지만 EFL컵 우승도 하고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아약스를 이기고 유로파 트로피를 들 수 있었다. 무리뉴는 이 우승을 통해 맨유를 챔피언스리그로 복귀시켰다. 다만 즐라탄의 이적 이후 2017-18 시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이전에 마샬과 래시포드가 지나친 수비 가담으로 역습 시작시점에 너무 낮은 위치에 있었고 이들의 창의성과 공격 패턴이 제한되었다. 또 미드필더 마루앙 펠라이니와 원톱 로멜로 루카쿠는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경기가 안 풀리는 날엔 공격 작업은 이 둘을 타겟으로한 단순 헤딩 뻥축구 패턴이 반복되어 버렸다. 이런 패턴은 무리뉴의 공격을 무디게 만들어 버렸다. 또한 겨울 이적시장에서 야심 차게 영입한 윙어 알렉시스 산체스는 완전히 망했다. 게다가 이전의 팀들처럼 확실한 수비의 리더와 센터백 조합이 없었고 빌드업의 핵심 수비수인 데일리 블린트는 피지컬과 스피드에서 한계를 보이며 영국 무대에 적응하지 못했다. 또한 전처럼 무리뉴는 선수들을 비판하거나 강하게 압박하고 질책하는 매니지먼트 지도 방식을 썼는데 시대가 변하여 이런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되었고 이런 스타일은 이전의 레알마드리드, 첼시 2기 시절처럼 자존심 센 선수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 시즌 맨시티에 밀려 프리미어리그 2위를 기록했지만 점점 팀은 한계에 부딪혔고 포그바를 중심으로 한 선수단과의 불화와 반란에 그다음 시즌 굴욕을 겪으며 경질당했다. 만약에 즐라탄이 계속 남아서 선수단의 기강을 잡았다면 무리뉴의 맨유는 어떤 결과를 만들었을까 궁금하다.
7. 토트넘 핫스퍼 (2019~2021) : 손케 듀오 활용으로 역습 보수축구의 궁극 진화 그러나 실패
2019년 무리뉴가 토트넘 핫스퍼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위대한 포체티노 감독의 지도력이 한계에 도달해 토트넘은 부진에 빠진 시기였다. 포체티노 후임 감독으로 아직까지 스타 반열에 있던 무리뉴의 부임은 빅이슈였다. 이 팀의 공격에는 이미 매우 독특한 조합이 존재했는데 바로 해리 케인과 손흥민이 있었다. 무리뉴는 이 두 선수의 특징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만들었고 이 두 선수를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공격 듀오 조합으로 만들었다. 우선 토트넘의 수비 구조는 깊은 블록 수비였다. 미드필더와 윙어가 수비 라인 근처까지 내려오며 공간을 압축했다. 상대 팀은 자연스럽게 점유율을 높였지만, 토트넘의 중앙 수비를 정면으로 뚫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수비 전술은 이전의 무리뉴의 보수축구 스타일을 계승했다. 중원에서는 포백을 보호하고 공격을 1차 저지해 주는 에밀 호이비에르, 피지컬과 스피드로 중원을 휘젓는 무사 시소코 그리고 든든한 백업 해리 윙크스가 버텨주어 수비를 탄탄하게 강화해 주었다. 토트넘의 공격은 공을 탈취하는 순간 매우 단순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센터포워드 케인이 내려와 볼을 받고 플레이메이커처럼 전방으로 패스를 넣는다. 그 순간 달리기가 빠른 손흥민은 이미 수비 뒷공간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손흥민의 양발 슈팅력이 폭발해 순식간에 득점을 했다. 반대로 스피드와 드리블에 장점이 있는 손흥민이 공은 먼저 잡으면 측면에서 공을 운반하고 그 순간 케인은 상대 중앙 수비를 파고든다. 이제 손흥민이 양발을 활용해 컷백 패스를 내주거나 크로스를 올려 공을 중앙으로 보내고 케인이 슛을 날려 득점을 했다. 손케 듀오의 이 패턴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역습 전술이었다. 특히 2020-21 시즌 초반 토트넘은 맨시티와 맨유를 상대로 이 전술을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심지어 친정팀 맨유를 6대 1이라는 스코어로 압살 해버렸다. 상대가 점유율을 높일수록 토트넘의 역습은 더 치명적으로 작동했다. 덕분에 시즌 초반에 1위 질주를 하며 무리뉴 2년 차에 또 트로피를 들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다만 호이비에르, 시소코, 윙크스는 안정적이었으나 공격적 창의성 기술 패스력이 떨어졌고 테크닉이 좋은 탕기 은돔벨레를 영입했으나 완전히 실패했다. 이 실패는 토트넘 공격의 창조성을 망가뜨렸고 시즌초반 손케 듀오의 득점으로 1위를 질주했으나 이 둘이 부진하거나 부상이라도 당하면 경기가 풀리지 않으며 추락했다. 이 시기에 토트넘의 수비수들도 문제들이 있었다. 수비의 핵심 토비 알더바이럴트는 에이징 커브가 시작되어 스피드가 떨어지고 있었고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이자 피지컬이 좋은 에릭 다이어는 센터백으로 위치 선정에 문제가 있었다. 다빈손 산체스는 기복이 심했고 실수도 많았으며 풀백의 세르주 오리에, 세르히오 레길론, 벤데이비스 모두 불안요소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막판 실점이 많았고 성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토트넘의 수비진은 완전히 내려앉아 버스축구를 하기엔 선수 한 명 한 명이 레벨이 낮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잘한다고 하기엔 뭔가 하나씩 부족했고 무리뉴의 토트넘은 맨유시절과 유사하게 이번에도 철벽의 수비를 보여주지 못했다. 무리뉴는 손흥민, 케인과의 사이는 좋았으나, 팀의 고참 알더바이럴트와 불화가 있었다는 소문이 있고 토트넘 시기에도 선수단과 불화가 생겼다고 한다. 토트넘에서 손케듀오를 완성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지만, 결국 카라바오컵 결승전을 앞두고 불명예스럽게 경질되었다. 만약 카라바오컵 결승전을 무리뉴가 지휘했다면 그의 영원한 라이벌 과르디올라의 맨시티를 잡고 우승컵을 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토트넘에서 오래 집권하며 더 큰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8. AS로마, 페네르바흐체, 벤피카 (2021 ~ )
토트넘 이후 무리뉴는 AS로마와 페네르바흐체를 거쳐 현재는 고향인 포르투갈로 돌아와 벤피카의 감독을 맡고 있다. 이탈리아의 명문 AS로마에서는 컨퍼런스리그 우승과 유로파리그 준우승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지만 전통의 이탈리아 강호 AS로마로 세리에 A 국내 무대에서는 우승 경쟁에서 계속 낙오되며 결과를 내지 못한다. AS로마 감독 시절은 애매하게 끝났다. 이후 터키의 명문이지만 국내 리그 우승컵을 계속 들지 못하던 페네르바흐체로 간다. 기대와 다르게 갈라타사라이에게 계속되는 패배로 우승권과 거리는 멀어졌다. 게다가 갈라타사라이, 베식타슈 이외의 터키 리그 팀들과는 전력차가 많이 났는데 약팀 상대로 역습중심 보수축구를 고수했으나 이것이 먹히지도 않았다. 두 번째 시즌 초에 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탈락해 버리며 터키에서 짧은 커리어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의 평생의 라이벌 펩 과르디올라는 아직도 유럽 최고의 명장이다. 커리어 초기에 자주 대결하던 알렉스 퍼거슨과 아르센벵거는 20년 이상 트러블 없이 장기 집권하였지만 무리뉴는 커리어 후반에 불화도 많았고 팀을 많이 옮겨 다녔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스페셜 원이 아니다. 그의 지도 방식은 요즘 선수들에게 먹히지 않으며 이제 그의 버스축구는 안티풋볼 그리고 재미없고 한물갔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럼에도 그는 FC 포르투로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며 유럽을 놀라게 했고 첼시에서 최소실점, 인테르에서 트레블, 레알마드리드에서 역대 최다 승점 우승 등 가는 곳마다 보수축구의 꽃을 피우고 하나의 전술 철학을 만든 무리뉴 감독은 위대하다. 그리고 보수주의 축구는 수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치명적이고 확실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을 증명했다. 이제는 빅클럽이 아니라 고향 무대에 있지만 무리뉴는 유럽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감독 중에 한 명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