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 뮤지컬로 읽는 미국 사회문화사

시카고, 멤피스, 미스 사이공

by 최인성


역사는 교과서 속 연도와 대통령 이름, 정책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만 배우면 역사가 재미없다. 어떤 시대는 법과 정책 정치보다 그 시대 사람들의 서사와 살아가는 스토리가 먼저 드러난다. 뮤지컬은 단순한 음악극 공연은 아니다. 어떨 때는 그 시대의 사회 문화사를 쉽게 보여주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을 감상해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세 작품을 통해 20세기 미국을 탐구해보려 한다.

Chicago : 1920년대의 광란과 미디어의 탄생

Memphis : 1950년대 인종의 벽과 로큰롤

Miss Saigon : 1960년대 베트남전의 시대


1. 시카고 Chicago

1920년대 자극을 만드는 미디어, 이걸 쫒고 쇼에 열광하는 대중들


1920년대 미국은 화려했다. 광란의 20년대 Roaring Twenties라고 불리며 대공황 전까지 미국은 호황과 행복을 누렸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재즈가 울려 퍼졌고, 자동차와 영화 산업이 번창했다. 도시의 밤은 네온과 음악으로 빛났다.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서 무언가 바뀌고 있었다. 시카고는 살인 사건으로 타락한 사회를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살인 범죄와 재판이 아니다. 그것은 범죄가 소비되는 방식을 그리고 대중은 진실과 거짓은 중요하지 않고 자극적인 스토리에만 집중한다는 것, 그 당시에도 미디어는 대중들을 열광하게 할 자극적인 것만 퍼 나른다는 사실을 다룬다. 주인공 록시 하트는 남편을 속이고 불륜 상대였던 애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이것은 분명 비극적인 살인 범죄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그녀는 잊히지 않고 오히려 시카고 사회의 스타가 된다. 그 중심에는 돈만 받으면 무엇이든지 변호해 주는 도덕적이지 않은 스타 변호사 빌리 플린이 있다. 그는 밖으로 정의를 말하지만, 진실과 정의 구현에는 관심이 없으며 돈만 받으면 어떤 악인도 변호해 준다. 그의 진짜 재능은 법 해석과 변호 실력이 아니라 연출이다. 그는 언론을 주무르고, 기자들에게 스토리를 흘리고, 대중이 좋아할 서사를 만들어내 록시를 치정에 휘말린 불쌍한 여성의 이미지로 포장한다. 여기에 기자들은 빌리의 연출에 놀아나며 신나서 자극적인 기사만 쓴다. 어쩌면 변호사보다 선동가나 허황된 소설가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괴짜 변호사와 기레기들의 이 환상적인 조합으로 이 사건은 사실이 아니라 극적인 줄거리로 다시 쓰인다. 황색 언론은 진실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선택했다. 사건은 뉴스가 아니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콘텐츠가 되었다. 시카고 속의 법정은 더 이상 정의를 수호하며 범죄자를 처벌하는 공간이 아니었고 그곳은 하나의 쇼 무대였다. 빌리는 판사와 배심원, 언론, 관객까지 모두를 상대로 록시 하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쇼를 펼친다. 록시의 무죄는 그녀가 옳아서 그런 것도 빌리 플린이 법적으로 변호를 잘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대중들에게 흥미로운 자극적인 이야기, 결말이 궁금해지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은 완전히 정의롭지도, 완전히 도덕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것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왜냐하면 대중은 진실보다 재밌는 스토리를 원했기 때문이다. 극 중 록시라는 넘버에서 표현하듯 '사기도 예술이고 이게 쇼 비즈니스라는 거예요'라는 가사처럼 이 작품은 쇼 비즈니스와 사기를 예술처럼 보여준다. 시카고 극 중 기자로 나오는 메리 선샤인은 여자인 것 같지만 마지막에 남자임이 드러난다. 메리 선샤인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기레기가 그 당시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주며 알고 보니 사실 남자라는 점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준다. 우리는 종종 21세기 정치를 쇼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인은 연설보다 장면을 만들고, 정책보다 이미지가 앞선다. 그 만들어진 이미지가 선거 결과를 바꾼다. 그래서 시카고를 보고 있으면 깨닫게 된다. 그 쇼의 시작은 이미 1920년대에 있었다는 것을, 얼마나 옳은가 보다 얼마나 주목받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당시 사회상. 빌리 플린은 부패한 변호사이며 록시 하트는 그저 관종이고 메리 선샤인은 기레기다. 이 캐릭터들은 시대와 미래를 정확히 읽은 인물들이기도 하다. 진실은 설득되지 않지만, 쇼는 팔린다. 시카고는 바로 그 시대를 노래한다. 진실은 중요치 않고 자극적인 콘텐츠와 쇼에만 몰두하는 우리의 지금은 시카고에서 표현한 100년 전의 미국과 닮았다.


2. 멤피스 Memphis

1950년대 인종의 벽을 넘는 음악 차별을 없애는 결과를 만들다.


1950년대 미국은 안정된 시대로 기억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는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성장했다. 교외의 단독주택, 텔레비전 앞에 앉은 가족, 웃고 있는 광고 속 모델들, 냉전 속에서도 미국은 번영과 질서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 질서는 안타깝게도 미국인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남부에는 여전히 흑인 전용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왜냐하면 미국 남부는 전통적으로 노예제도에 찬성하고 흑인 차별이 심한 곳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남부에서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은 흑백을 분리했고, 차별은 일상이었다. 심지어 버스, 학교, 식당, 극장 모든 공간이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다. 멤피스는 바로 그 보이지 않던 음악을 다루는 작품이다. 멤피스 작품 속 언더그라운드 빌 스트리트에서 울려 퍼지던 흑인들의 음악은 뜨거웠다. 리듬은 살아 있었고 노래에는 삶의 고통과 희망이 담겨 있었으며 백인들의 주류 음악보다 세련되었고 매력적이었다. 주인공 펠리샤와 그녀의 오빠 델레이는 그런 공간에서 노래하며 꿈을 꾸지만 그 음악은 그 시대의 메인 스트림인 라디오를 타지 못했다. 흑인의 소리는 존재했지만, 공적 공간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주인공 펠리샤는 재능이 있지만 클럽의 무대는 좁았다. 그녀는 오빠 델레이, 동료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래하며 버텼다. 그들의 음악은 뜨겁지만, 세상으로 그 음악이 나아갈 수 없었다. 그때 등장하는 인물이 남자 주인공 휴이다. 휴이는 차별에 무감각한 시대 속에서도 리듬과 음악에 먼저 반응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흑인 음악을 다르다, 틀리다고 보지 않고 그저 좋다고 느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가 라디오라는 매체와 연결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1950년대는 TV 이전에 라디오의 전성기였다. 라디오의 전파는 음악을 전달하고 벽은 사람을 막을 수 있지만 라디오에서 나온 음악은 막을 수 없었다. 휴이는 라디오를 통해 흑인 음악을 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작은 시도였지만, 백인 청년들이 그 리듬에 열광할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새로운 로큰롤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장르의 탄생이 아니라, 문화적인 흑인들의 정치적인 반란이었다. 정치는 여전히 흑백을 분리하고 있었지만, 음악은 섞고 있었다. 법은 차별을 유지했지만, 흑인들의 음악과 리듬은 라디오를 통해서 미국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이 과정으로 흑인들의 음악은 상업화되고, 산업은 그 열기를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 자본주의 음악 상품은 라디오와 힘을 합쳐 흑인들에게 새로운 무기를 제공했다. 보이지 않는 지하 클럽에서만 울리던 목소리가 이제는 도시 전체로 미국으로 더 넓게 퍼져나갔다. 1950년대까지 인종 차별은 여전히 강고했다. 그러나 그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도 이 시대였다. 정치는 느렸지만 음악은 빨랐고 그 결과 이들의 음악은 결국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후대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으로 이어졌고, 이후 1960년대 미국의 존 F 케네디와 린든 존슨 두 대통령 임기에 미국에서 민권법(Civil Rights Act)이 생기며 인종 차별이 완전히 폐지되며 결실을 맺었다.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떤 목소리가 공적 공간에 오를 수 있는가? 어떤 문화가 중심이 되는가? 그리고 이 문화는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멤피스는 단순히 과거를 그리는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이 어떻게 차별의 프레임을 뒤집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1950년대는 질서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흑인들의 음악을 통한 반란이 시작된 시대였다. 그리고 그 반란의 무기는 폭력이 아니라, 펠리샤의 노래였다. 이 작품의 가장 유명한 곡 Steal Your Rock n Roll의 가사처럼 '이제는 그런 때가 온 거야 맞서 싸워야만 하는 순간, 난 두려움 없이 내 맘을 따랐어 난 내 자리를 찾았지'처럼. 흑인들이 노래로 맞서 싸워서 흑인의 자리를 성공적으로 찾았다.


3. 미스 사이공 Miss Saigon

1960년대 베트남전 패배가 베트남에 남긴 상처


미국은 오랫동안 승리의 국가였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승리했고, 전후 세계 질서를 설계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했고, 강대국으로서의 자신감은 굳건해 보였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은 그 자신감에 균열을 냈다. 냉전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된 전쟁은 처음에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명분 있는 개입처럼 포장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은 길어졌고, 희생은 커졌으며, 그 명분은 미국 내부에서도 점점 설득력을 잃어갔다. 미디어 전쟁 시대가 개막하면서 베트남전의 참상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결국 미국은 철수를 결정하고 슬프게도 남베트남은 패배하여 적화통일 당한다. 미스 사이공에서 사이공이 함락되는 헬리콥터 장면은 단순한 스펙터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상징이다. 대사관 옥상 위로 떠오르는 헬리콥터, 남겨진 사람들, 닫혀버린 문. 그 장면은 남베트남의 몰락이자, 미국이 처음으로 경험한 패배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진짜로 보여주는 것은 전쟁의 패배가 아니라, 전쟁의 인간적 잔해다. 여자 주인공 킴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파는 인물이다. 조연 캐릭터 엔지니어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며 아메리칸드림에 중독되어 돈만 쫒고 킴 같은 여성들을 몸 파는 길로 이끄는 포주이다. 그 당시 전쟁 속에서 살기 위해 여주인공 킴이나 엔지니어나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킴은 미국에 아내가 있는 유부남 미군 크리스를 만난다. 그는 전쟁 한복판에서 킴과의 사랑을 말한다. 당연히 유부남인 크리스가 타국에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무책임하며 도덕적으로 그릇된 일이다. 전쟁은 사람을 고립시키고, 그 고립 속에서 순간의 사랑의 감정은 절대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니 크리스에게 본인의 현실이 다시 돌아왔다. 크리스는 본국으로 돌아가 아내를 만났고, 킴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베트남에 남겨진다. 이 아이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아이는 전쟁의 결과이자,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남겨진 상징이다. 극 중 부이 도이(Bui Doi)라는 넘버가 나오는데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 부이 도이는 베트남어로 먼지 같은 삶이란 뜻이며 베트남전에서 베트남여자와 미군 간에 태어난 전쟁고아를 뜻한다고 한다. 크리스는 아이의 존재를 외면하려 하고, 남겨진 킴과 그 아이의 삶은 비극적으로 흘러간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안정된 삶을 이어가고, 반면 킴은 모든 것을 잃는다. 포주 엔지니어는 남베트남의 패망 이후 공산 정권 밑에서도 살아남아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번다. 그리고 킴과 그 아이를 같은 남베트남 사람이 아니라 본인의 아메리칸드림을 이뤄줄 찬스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회주의자다. 이 작품의 의미는 단순히 크리스와 엔지니어가 나쁜 놈이다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책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으로 베트남, 미국 양국 사람들의 도덕성을 파괴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에 단순한 군사적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덕적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왜 싸웠는가? 그 전쟁은 무엇을 남겼는가?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누가 책임지는가? 전쟁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베트남 이후, 미국 사회는 정부를 더 이상 무조건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반전 운동은 거세졌고, 젊은 세대는 국가의 도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미스 사이공의 비극은 단순하게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 남긴 비극적 삶과 도덕성의 파괴, 그리고 강대국이 외면한 아이들에 대한 책임의 이야기다.


결론

화려한 커튼콜이 끝나고 조명이 꺼지면 관객은 극장을 나선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마주했던 시대의 질문들은 객석 밖까지 따라온다. 진실보다 자극적인 스토리에 열광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선택들은 누구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가?' 다음번에 이 글을 읽은 독자가 뮤지컬을 관람하게 된다면, 연기 연출과 음악 그 너머 그 시대의 스토리와 역사적 배경을 느끼고 무대 위에서 생긴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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