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명신고등학교를 가 보겠습니다.
<어른 김장하>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은 12월 12일입니다.
독재가 끝난 대한민국에 봄이오리라 기대한 많은 국민을 우롱한 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분노의 날이더라도 과거의 일이라면 좋았겠습니다. 역사가 반복됨을 보게 되는 씁쓸함만은, 없다면 어떨까요.
군인 독재가 검찰 독재로 바뀌었습니다.
국가 요직에 군인이 앉던, 검찰이 앉는.
군인 만능주의가 검찰 만능주의가 된.
국민을 총으로 제압하고도, 수많은 꽃 같은 젊은이의 죽음도 구경하듯 대할 수 있던(는) 자들이 대통령이었던(인) 나라.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젊은이였습니다. 살만큼 살았고 알만큼 아는 어른이 아니라. 행동하는 젊음이 바꾼 것 같습니다. 유관순의 목소리로. 전태일의 불로, 이한열의 피로 이루었지 않을까. 수많은 희생이 만든 서울, 대한민국. 그곳 오늘도 법이라는 미명하에 상대방을 처단합니다. 정적을 제거합니다. 법을 아는 자들이니 법을 이용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로 오늘을 대해야 하는 걸까요?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묻고만 싶어 집니다.
나이는 기득권인 저는 하염없을 걸음을 뗍니다. 부모님 탓을 할 수도 없는 나이죠. 내 잘못이 없다 단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 가리고 귀 막았기에 꽃 핀 독재일 테니까요.
제가 앞을 보고 걷듯 역사도 앞으로 나아가리라 믿습니다. 눈도 귀도 열고 보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손도 보태야죠. 가족 김장에 장갑 들고 가듯이요.
날씨가 좋지 않네요. 천천히 걸으며 얘기하실까요? 김장하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 명신고등학교로요.
제가 사는 곳에서 걸어가도 무리는 아닙니다. 지난번 자전거를 고치려 걸어갔던 그곳이 요기 큰길만 건너면 바로입니다. 차로 딱 10분. 면에 사는 저는 시내에 갈 때 꼭 지나는 길입니다. 사는 곳에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나오는 동네거든요. 그럼에도 영화를 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이 학교가 베풂의 상징적인 곳이란 걸요.
사진에서 보이는 곳은 초장동이라는 곳인데요. 명신고등학교가 지어질 때만 해도 허허벌판이던 곳입니다.
지금은 신축아파트가 많아 비싼 동네입니다.
주차에 자신이 없어 또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차를 댑니다. 길이 쭉 뻗어있어 <그냥 걸었어> 하면 됩니다.
명신고등학교 도착입니다. 버스도 바로 앞에 서네요.
밖에서 볼 때는 몰랐어요. 보이는 부분이 다가 아니라는 걸요.
혹시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물을까 쫄았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나왔습니다. 학교를 주변으로 크게 돌아보았습니다. 물론 공용 주차장도 아니고 학교 주차장은 더더욱 아니지만 커다랗고 자리 부족할 일 없는 주차장이 있네요. 다음에는 이곳에 주차해야겠습니다.
공원처럼 커다란 찻집이 있어 지날 때마다 "오~"만 했었는데요. 직접 보니 더 근사합니다. 주차장도 뭔가 멋진 공간을 예고해 주듯 색 다름이 있습니다.
사진이 꾸며놓은 정원을 잘 담지 못했습니다.
명신고등학교 옆집, 찻집입니다.
명신고 뒤로는 강이 흐릅니다. 저 사진 끝이 남강의 샛강입니다.
왼쪽에는 찻집. 오른쪽은 학교.
이리 보면 학교 저쪽으로 보면 찻집.
이곳 단풍이 참 이쁩니다.
눈길을 빼앗겼던 <그라운드 헤븐>은 규모가 크고 장소가 나누어져 있어 오붓한 장소를 찾는 사람에게도 모임장소를 찾는 사람에게도 소문이 난 곳이라네요. 저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만. 비싼 찻집에서 차 마시며 얘기할 친구가 없어요. 무인 카페 가서 차 한잔하기도 아까워하는 사람만 주변에 있어서요. 알뜰쟁이들만 있는데 저도 별 다를 것 없다 보니 갈 일이 없었네요. 먼 곳에서 찾아온 친구라도 있으면 가 보련만 글쎄요. 다음에 혼자 글 쓰러 노트북 갖고, 기분 내러 가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진주에 이사 와서 이런 곳을 흔하게 보고는 좀 놀랐어요. 경북이니 윗 지방 급류 타기 하는 곳에서나 볼 만한 절벽과 강이 있어서요. 자연이 참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흔하고 조용하고 사색하기 좋은 도시입니다. 그러면서 나름 편의성은 좋아요. 소도시중에 백화점 있는 곳이 많지 않으니까요. 일단 크기와 상관없이 '백화점' 있다. 주변 군지역에서 오는 도시인 거죠.
왜 이렇게 본론을 피하는 걸까요? 발자취를 잘 보여드리고 싶다는. 나눔의, 베풂의 정신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주인 자리를 차지했나 봅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주변만 돕니다. 가볍게 산책도 걸음도 하면 될 텐데요. 자 들어가 보겠습니다. 으싸!
아직 밖입니다. 출발합니다.
왼쪽으로 길을 꺾습니다. 혹시 외부인 출입금지 되면 어쩌나 겁을 좀 먹었습니다. 겁쟁이 아니랄까 봐요.
명덕신민. <참된 나를 찾아 ,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 이런 말을 알게 된 후 진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요. 이런 글귀는 그냥 글자였던 제 삶에서는요 그야말로 실천가이십니다.
학교 본관입니다. 밖에서는 이 건물의 옆면만 보입니다. 꼭 김장하 선생님을 닮았습니다. 결코 밖으로 보이는 면이 다가 아닌 사람. 품이 너무도 넓어 차마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분.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저~~~~~~~~~기 멀리에 도서관이 별관으로 있습니다. 대학교도 아닌데 학교에 별관 도서 <관>이라니요. 도서실도 교실 한 칸 겨우 있는 게 현실인데요. 돈이 모이는대로 도서관도 짓고 선생님들이 봉투를 받지 않도록 회식비까지 챙겨 주셨다하지요. 37살의 젊은 김장하는 이렇게 학교 이사장이 됩니다.
운동장을 한참 걸으면 도서관에 닿을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하지 않더군요. 물론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운동장이 작아 물리적으로 부족한 것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추측하여 봅니다. 하지만 이곳은 전 학년이 한 줄로 백 미터 달리기를 동시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 앞에는 족구장이니 운동을 할 수 있는 구획이 그어진 운동장이 또 있습니다. 키 낮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는 않습니다.
체육관. 청웅관
그 당시 진주지역에서만 매년 5,500여 명이 고교 연합고사에서 낙방하였어요. 그때 당시 주변 남해군이니 하동이니 하는 작은 지역에서도 고등학교를 위해 오던 곳입니다. 진주 내에서도 부족한 고등학교였는데 말이죠. 김장하 선생님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배움터를 마련해 주어야 하겠다'라고 결심을 하셔요.
1983년 7월 학교 신축 기공식을 거쳐 1984년 3월 2일 입학식을 했습니다. 그때 식수된 나무인지 오래되어 보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학교를 짓고 기념사를 하던 본관입니다.
그 당시 타 지역 이름난 선생님들을 모셔와 그야말로 명문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청탁에도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 있는 학교 운영으로 흔들림 없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에 진심인 훌륭한 선생님, 물심양면 옆에서 돕는 김장하 이사장님과 돈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을 학생. 삼박자가 어울린 결과였겠지요.
그 당시 학교가 정상 궤도에 오르고 나서 1991년 8월 17일 명신고 청웅관에서 학교 기증 선언과 함께 퇴임식을 열었습니다. 83년 신축 기공식에서 공언했던 "좋은 학교를 만들어 사회에 환원까지도 구상하고 있다"는 말을 직접 실천하는 자리였던거지요. 그 당시만 감정평가도 없이 과세시가 표준액, 공시지가 만으로 60억원 가까운 학교를 조건 없이 기증 하셨지요. 주변 땅까지 다 기증하신 거로 압니다. 지금 금액으로 환산하면 200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돈이 생기면 그 돈이 더 많은 돈을 끌어오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김장하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돈은 똥과 같다. 모아놓으면 악취가 나지만 뿌려놓으면 거름이 된다" 대한민국을 벗어나 해외에까지 그 씨들은 발아하였더군요. 진정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나가겠습니다. 온 것 같지않게 가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줬으면 그만이지> 뒤 돌아보지않고 걸어가고 싶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걸음으로요.
김주완 기자님의 <줬으면 그만이지>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습니다.